제목 없음
 

 




  송종호(2021-09-11 20:58:33, Hit : 32, Vote : 5
  토요 살롱 332회 " 세월을 묻으며 "

봄의 화단이 화려하지만 가을의 화단도 그에 못 지 않다.
주황색 천수국, 샛노란 만수국이 여전하고 붉은 색의 백일홍, 과꽃이 농염하며
보라색 천일홍도 꽃이 비록 손톱 만해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 할 지라도
군락을 이루어 꼿꼿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을장마가 물러간 후 낮에는 아직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20도 내외의
그야말로 최고의 쾌적한 날씨다. 무엇보다 대기가 너무나 깨끗하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이 높고 청명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금년 들어 비염으로 고생한 날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모기가 기승이다.
연일 비가 오고 기온이 크게 떨어졌을 때 잠시 사라졌던 모기가 세를 불려서 나타났다.

지난 8월 마지막 토요일인 8월 28일에 갑자기 예기치 못했던 그리고 거절하거나
다른 날로 일정을 늦추거나 당길 수 없었던 불가피한 일이 발생해
아무 예고도 없이 토요살롱을 올리지 못 했다,
이런 경우는 거의 드물다.
대체로 최소한 2주 정도는 여유를 두고 일정과 약속을 정하되
‘선약 우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일정을 벗어나거나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타인과의 약속이든 나 자신과의 약속이든 비교적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 외에도 약속을 어기게 되면 구구절절이 설명을 하거나 변명을 하거나
뭔가 구실을 대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다.
또한 약속을 어기거나 변경하면서 상대방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고
양해도 구해야 한다. 그게 더 싫은 거다.

나 자신과의 약속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없으니 사과하고 양해를 구 할 필요는 없지만
대신 후회를 하게 되고 짜증을 내게 된다. 그게 또 싫은 거다.
그런 후유증이 두렵기도 해 타인과의 약속이든 나와의 약속이든 약속을 할 때는
신중해 질 수밖에 없고 일단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약속이 그 다음의 일정이나 약속보다 거의 무조건 우선권을 갖는다.
이런 습관을 고집이라고 잘못 오해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권위나 자존심 따위를 옹호하기 위한 고집과는 전혀 다르다.

지난 주말에는 연례행사인 영천 호국 원과 대구 두류공원에 성묘 겸 벌초를 다녀왔고
겸사겸사 대구에서 대식이, 남철이와 저녁에 한잔 하며 회포도 풀었다.
하행 길은 토요일인데도 행락객과 벌초, 성묘객들로 곳곳에서 정체가 심해
보통은 휴게소에서 느긋하게 주변 경관도 살피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30분 정도는 쉬지만
집에서 좀 일찍 출발했는데도 시간에 쫓겨 휴게소에 들리자마자 허겁지겁 커피 한잔 사 들고
오줌도 제대로 시원하게 못 뽑고 정체구간을 지나 과속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액설레이터를 바닥까지 밟으며 내쳐 달렸는데도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걸려서야 영천 호국원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도중에 대식이, 남철이에게 연락해 약속시간을 한 시간 더 늦춰야 했다.

도중에 창성공방 아줌마에게 전화해 미리 준비도 하게 했지만
그날따라 손님이 득실거려 바빠선지 전혀 준비도 안 되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20년 동안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던 아줌마 남편이 가게 안에 떡 버티고 서서
온갖 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아줌마는 빽뻭 소리 질러대는 남편에게 끽소리 못하고 눈길은 땅에 꽂은 채
묵묵히 손님들 주문 따라 손만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뭐 팔요한교?’ 남편의 투박하고 다소 위협적인 말투에 아줌마를 힐긋 쳐다봤더니,
‘고개는 돌리지도 않고 ’지금 준비하고 있심더.‘
‘얼마짜리고?’
‘2만 5천원예’
‘다른 거 필요없는교?’
냉장고에서 막걸리 2통을 꺼내들고 가게에 걸려있는 오징어 포 2마리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치르고 주섬주섬 집어 들고 가게 문을 나서자 아줌마가 들릴 듯 말 듯,
고개는 돌리지도 못하고,
‘다녀 오이소.’

성묘를 마치고 내려올 때도 분위기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작별인사고 뭐고 괜히 아는 채 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 서행으로 가게 앞을 지나치며
백미러를 통해 아줌마를 보는데 그 제서야 아줌마 눈길이 차를 따라 움직였다.
큰 길로 나와 우회전할 때까지 아줌마는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눈길만으로 배웅해주었다.

‘오라버니 오셨어예.’
‘서울 오빠, 오실 때가 됐는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어예.’
‘다음에 내려오실 때는 미리 연락 주이소. 점심 대접할게예.’
이랬을 때는 괜히 부담스러웠는데 이렇게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못하고
스치다시피 지나치고 마니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아쉽고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석계 칼국수는 번창일로였다,
두 자매의 몸놀림은 여전히 가볍고 가마솥에 국수를 저으며 이마의 땀을 연신 닦고 있는
시아버지는 몸도 굵어지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지만 아줌마 생전시보다 모습이 정갈해졌고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
지난봄부터 칼국수에 감자 몇 조각 더 넣고 한 그릇 2천 원 하던 걸 3천원으로
무려 50% 올렸는데도 손님들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술도 팔고 통닭구이 같은 값나가는 메뉴가 늘었다.

“지난봄에 싸준 순두부 맛 있게 잘 먹었어요.
그런데 두 자매는 어떻게 고대로야. 여전히 처녀모습에 처녀 몸매야.
동생은 아직 시집가려면 멀었겠네?“

언니가 펄쩍 뛰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는 동시에 살짝 눈웃음을 치며,

“아이고 아이라예. 쟈, 시집가서 애도 있어예.”

“아니 언제? 어린애가 무슨 시집을 가서 애까지 낳아?”

“쟈, 나이 많아예.”

동생이 마스크 속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데 뭐 한마디만 해도 발그레 붉혔던 얼굴색이
전혀 변함이 없었다.
말이 그렇지 살살 웃음 짓는 언니의 눈가에 잔주름이 접히고
언니도 동생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대식이는 대구의 강남구로 불리는 수성구에서 병원 가까운 경산으로 이사를 갔다.
집에서 병원까지 차로 7,8분 거리라고 한다.
대식이가 집이 수성구라 항상 약속을 수성구 근처에서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 날도 대식이 안내로 경산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운 범어 동 로터리 근방
먹자골목 안 양 곱창 집으로 갔다.
안주도 일등급이었지만 후식으로 나온 된장 국수가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면서
속을 확 풀어주는 게 가히 일품이었다.

내 기억에 대식이가 수성구에서 30년 이상을 산 거 같은데
왜냐하면 내가 1989년 귀국하여 대구로 성묘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항상 수성구에서 만났었고 그래서 숙소도 그 근방에 정했었기 때문이다.

수성 못이 지척이라 한식 때는 수성 못 일대를 덮는 벚꽃이 장관이었고
밤에는 고요한 물 위를 비추는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아름다웠으며
못 가 풀밭에 앉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 정겨웠었는데
이제는 이런 정경들을 아마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자정이 가까운 늦은 밤이었지만 바로 숙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늦게까지 수성 못 보도를 거닐며 지나온 과거에도 젖고 밤의 정취에도 빠져들었다.

대식이가 봄에 이미 이사를 갔는데도 이제야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예전처럼 내가 늘 묵는 모텔에서 만나 이동했지만
다음부터는 만나는 장소에 따라 숙소도 그 근처로 바뀔 거다.
두산 오거리 생고기집 ‘거기’는 2년 전에 문 닫았고 대신 다녔던
언니는 주방에서 동생은 카운터에서 20여년간 운영하고 있는 생고기집 ‘두산 일 번지’와도
이별을 고해야 할 거 같다.
10여년 이상 단골이었던 모텔도 마찬가지다.
꼭대기 층, 창을 열면 전면에 수성관광호텔이 있는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508호실, 항상 내가 묵던 방이었다.
이렇게 또 세월의 한 chapter를 마무리 하여 추억 속으로 묻어야 한다.
2021.09.11. 송 종 호.





토요 살롱 333회 " 餘 念 "
토요 살롱 331회 " 夏 中 小 考 "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ro
서울고

 

   
 

제목 없음
   
   
 

HOME

동기회안내

동기사무실약도

졸업40주년기념회비납부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