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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9-18 20:52:22, Hit : 33, Vote : 4
  토요 살롱 333회 " 餘 念 "

높고 푸른 하늘에 뭉실뭉실 각양각태로 무리를 지어 떠 있는 뭉게구름이 한가롭고
초록 숲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며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들이키면
폐부에 쌓인 노폐물을 깨끗이 씻어 줘 일순 지나온 세월의 묵은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줄 거 같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시원한 바람을 보다 가까이 맞으러 산으로도 가 보고 싶고
푸른 물결을 잔잔히 일으키는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마음껏 달려보고도 싶어진다.

어디론가 정처 없이 혼자서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지난 세월이 아쉬워 지기도 한다.
그런 그리움과 아쉬움이 사무치면 뭔지 모를 슬픔이 복받쳐 올라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악을 쓰며 흘리기 시작한 눈물은 별 이상이 없는 한
우리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마르지 않는 거 같다.
5년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난 제수씨는 임종 하는 날도 눈물을 보였고  
나하고 두 바퀴 띠 동갑으로 금년에 94세시인 안창 숙모님은
몇 년 전에 작고한 영감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동생이고 조카들이고
아버지,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훨씬 깊어 대 놓고 욕은 못하더라도
언짢은 기색들이 역력한데 거기에 내가 더 격해져 기름칠이고 초 칠이고 해 대고 있으면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무 말 없이 몰래 눈물을 훔치신다.

그런 줄 알면서도 명절에 다들 모여 막걸리 잔을 돌리고 있으면 옛날이야기,친척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되고 와중에 누군가로부터 숙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일찌감치 어린 아이 셋을 두고 바람이 나 새살림 차리고 떠난 남편을
아직도 못다 한 정이 남아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흘리는 94세 여인의 눈물.

“ 애들 아버지는 나의 유일한 남자였거든.”

그러나 아무리 역경 속의 인생이라도 어느 순간만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보낸 세월도
있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 차이가 좀 있겠지 만은 나의 경우는 부친을 잃은 열 살부터
소년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사랑을 주고받던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거나
나 자신에게 닥친 시련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보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참 젊었을 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일에 열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커 가는 상당한 기간 동안은
대체로 가족들이 모두 건안하고 친구들을 비롯한 가까운 주변에도
연령대가 변고가 일어날 시기가 아니라 눈물을 흘릴 일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

1985년 나의 부랄 친구 종원이가 서른넷의 나이에 객사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아내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중심부 서안에 위치한 시볼가 라는 곳에서
합판 공장을 경영하며 불철주야 정신없이 일 할 때였다.
한 달의 반 이상은 유럽, 중동 등 해외 출장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공장에 매달려야 했었다.
휴일 없이 공장을 24시간 논스톱으로 가동했기 때문에 숙소를 공장 역 내에
한국인 직원들 기숙사 옆에 새로 지어 아내와 둘이 거처하며
밤 낮 없이 수시로 공장을 들락거렸었다.
결혼한 지 3년 차였지만 아직 아이도 없었는데 아이를 가질 엄두를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종원이의 부고를 접했는데 그것도 장례를 마치고 한참 지난 후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종원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 하고 배웅도 해 주지 못한 게 아직도 한으로 남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던 거 같다.
며칠 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새벽부터 처리해야 할 일, 결정해야 할 일,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잠깐 잠깐씩 틈이 날 때마다 씩 웃으며 “참봉” 하고 부르는 종원이의 잘 생긴 모습이 떠올라
감정이 복받쳤지만 거기에 젖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1990년 선경 후배 호성이가 돌연사 했을 때는 달랐다.
2박 3일 빈소를 지키는 내내, 상여가 나가는 내내, 선산에 매장하는 내내,
눈이 퉁퉁 붓도록 통곡을 했었다.  
1977년 대구 친구 경식이가 사고사한 이후 처음으로 그렇게 비통하게 울었다.

경식이는 유복자였다.
경식이 부친은 자기 아들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고 전사해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대구 중앙시장에서 양키물건 장사를 하며
경식이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고 경식이도 두 모녀 과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착하게 잘 자라 주어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졸업하면서 바로 결혼도 했었다.
경식이의 사고 소식을 경식이 이모가 처음 접하고 경식이 어머니가 어떻게 될까봐
차마 알리지 못 하고 서울에 급한 일이 있으니까 빨리 상경하라고만 했다고 했다.
할머니에게는 장례를 치르고도 상당한 기간 알리지 못 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식이도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아내의 배속에 유복자를 남겨두었었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눈물을 보일 일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울음이 더 많아진 거 같다. 툭하면 눈물부터 고인다.
언제부터인가 부친 산소에 가면 눈물이 쏟아진다.
늦은 밤 대구 친구들과 헤어져 숙소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운다.
영화 보다가도 울고 TV 보다가도 울고 누구 이야기 듣다가도 울고 술 마시다가도 운다.
이 햇빛이 찬란한 가을에 얼마나 울어야 될지, 얼마나 울 일이 있을지
오히려 텅 빈 마음에 쓸쓸함이 밀려온다.

내일 혜인이 부인과 혜인이 면회를 가기로 했다.
지난 5월에 가 보고 6월에는 내가 미국을 다녀오느라 못 가봤고 돌아 온 7월 이후에는
코로나 4단계로 대면예배를 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 추석에 일회에 한해 대면면회가 허락 되었다.

혜인이는 우리가 알던 혜인이가 아니다.
그렇게 자존심 강하고 누구 간섭이나 강요를 극도로 싫어하던 친구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눈을 제대로 10초도 뜨지 못하고
눈을 뜨더라도 초점은 먼 곳에 가 있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기력조차 버거워 보인다.
‘송 선생님을 제일 보고 싶어 하실 거예요.’
글쎄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 연명하는 처지에 누가 보고 싶고 어쩌고 하는 감정이  
있을지 의문이다.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눈과 무표정한 일그러진 얼굴에 대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희망도 이야기할 수 없고 무슨 충언도 할 수 없고 격려도 할 수 없고 위로도 할 수 없고.
  
서울 중학 23회로 대광을 나와 길우와 중고교 동기 동창인 용일이는
길우로 인해 대학 때 알게 된 친구지만 용일이가 우리 24회와 두루 친하고
특히 오래 전부터 충우, 남철, 원철, 희권 등으로 구성된 9인회의 실질적인 리더역할을 해
나와도 오랜 세월 막역하게 지내고 있다.
용일이는 연대를 나와 무역회사를 다니며 봉제인형 수출을 담당했는데 회사가 망하자
그 회사의 바이어들이 용일이의 성실성을 높이 사 독립을 권해 그 때 이후로
봉제인형 제조 수출 외길을 걷고 있다.
한국에서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다시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대체로 일 년의 반은 인도네시아 공장에 가 있고 반은 한국 본사에서 일을 보는데
코로나로 지난해부터 인도네시아에 못 가고 있다.

용일이 무남독녀 외동딸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삼성에 입사해 몇 년 전 사내 결혼을 하고
2년 전에 쌍둥이를 낳아 졸지에 쌍둥이 할아버지가 되었다.
‘얘가 나이는 차 가는데 시집을 언제 갈 건지 애를 꽤나 태우다 꽉 차서 시집은 갔지만
시집가서도 애기가 없어 스트레스 받을까 봐 말도 못하고 또 속으로 이제나저제나
마음 졸였는데 한 번에 끝냈지 뭐야, 허허.‘
그 딸내미가 삼성을 그만두고 아빠 사업을 물려받았다.

“ 나는 회사에 나와도 할 일이 없어.
  내가 하던 일은 다 구닥다리라서 어디 쓸 데가 있어야지.
  애들은 대형화면 컴퓨터 두 대를 동시에 시용하잖아.  
  영화에서나 봤는데 그게 현실이더라구.“

우리 세대와 아이들 세대는 산술적, 연대기적으로는 한 세대 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런 계산이나 숫자로는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지고 자율 주행을 하고 드론과 로봇이 택배를 하고
전력을 자연에서 생산하는 시대가 익숙해질 세대이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태양광 생산 단가가 KW당 환화로 40원까지 떨어뜨리는데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는 원자력 전기 생산 단가의 반값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원자력 전기 생산 단가는 KW당 40원으로
화력 생산 단가 76원 보다 훨씬 싸지만 새로 지을 경우
일본 쓰나미 이후 안전 설계가 대폭 강화되어 건설비가 3배정도 더 들어가
발전 단가가 배로 뛸 거라고 한다.
게다가 원자력은 폐기물 처리 비용은 별도다.

우리나라도 태양광 발전 구매단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10여 년 전 처음에는 태양광의 한전 구매단가를 화력발전 단가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KW당 700원으로 시작했는데 2년 전에 KW당 125원까지 떨어졌고
지난해부터는 90원으로 더 내려갔다고 한다.
또한 현재 발전 효율 24%를 35%로 끌어올리는 시험이 성공해 곧 상용화 되면
30% 추가 인하 요인이 발생한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익숙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AI로 급격히
그리고 급속하게 변하는 이런 물질적인 하드웨어변화에 병행해
가치관, 삶의 방식 같은 소프트웨어도 동시에 변하고 있다.
좀 과장한다면 우리 아이들 세대는 우리와 연결고리가 없는 전혀 다른 인류라고
봐야 되지 않나 싶다.

‘우리가 잘 가르쳐야지,’
마흔이 넘은 맡 딸이 국내외 유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왕성하게 연구 활동을 하고 있지만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
속을 끓고 있는 옛날 선경 동료는 정치적 성향이나 사고방식이나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이 보수에 속하는데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반드시 부딪친다고 한다.
애들이 아버지 말에 꼬박꼬박 대꾸를 하고 아버지를 내리깔려고 한다며 분개를 하곤 한다.
‘이 친구야, 우리가 뭘 가르쳐.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배운 거는 지금 세상에 헛 거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물을 가지고 뭘 가르쳐.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지.
우리는 사실 애들에 대해 아는 게 없잖아?
자기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고리타분한 이야기하면서 빡빡 고집이나 피우고
대화는커녕 우습게보고 깔보지 않겠어?‘

오늘부터 5일간 추석 연휴다.
다음 주 토요일은 상명 대 교수인 박 흥국의 장녀 결혼식에 참석하러 대전으로 갈 거라
토요살롱을 쉬고 그 다음 주 토요일인 10월 2일에는 전 서울 대 경제학과 교수였다가
정년 후 현재 김천에 소재한 경북 과기 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김 완진 교수의 두 딸 중
차녀의 결혼식이 있어 또 건너 뛰어야 한다.
장녀는 몇 년 전 에 출가를 해 이번이 완진 교수의 마지막 혼사다.

토요살롱 독자 여러분과 우리 동기들, 그리고 그 가족 분들 모두
풍성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기 바랍니다.
2021.09.18.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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