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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10-24 20:52:53, Hit : 94, Vote : 23
  토요 살롱 335회 " 우리들의 고독한 천재, 노 형 남의 명복을 빕니다. "

간밤에 비가 내리며 떨어진 기온이 낮에도 그대로다.

내일은 수도권의 최저 기온이 영도 근방에 머물고 산간 지방은 영하 몇 도로 떨어지며

10월 날씨로는 십 수 년 만에 한파주의보까지 내린단다.

날이 급격히 차지고 있다.

어제까지도 낮에는 더울 정도라 여름옷을 쉽게 정리하지 못했는데 초가을, 중추를 거치며

서서히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채 느껴보지도 못하고

더위가 겨우 가시자마자 낙엽이 쌓이고 거리에 나뒹굴기도 전에

쌀쌀하고 쓸쓸한 늦가을로 바로 접어드는 거 같아

바쁘게 흘러가는 세월 따라 벌써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에

마음도 왠지 초조해지고 급해지고 있다.



하늘 정원을 갈아엎고 새 단장을 시작한지가 일주일도 넘었다.

정원 둘레 길에는 양 가장자리에 두자 크기의 회양목을 촘촘히 심었고

가운데도 회양목으로 경계를 만들어 네모, 세모, 원형, 타원 형 등에

칸마다 넓이도 다양하게 여러 칸을 만들었다.

국화 외에 초이스가 별로 없을 거 같은 깊은 가을에 칸 마다 무슨 꽃을 심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회양목 칸 사이사이에는 크리스마스트리인 다섯 자도 더 되 보이게 자란

고깔 모양의 주목 나무가 심심치 않게 심겨져 온통 푸르른 상록수뿐이라

형형색색 온갖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아름답게 피어 있던 예전의 정원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하고 있다.



넝쿨장미가 아치를 이루는 목책 길 안쪽으로는 2,3자 크기로 길쭉하게 아무렇게나 자란

사철나무를 한참 심고 있고 둥그렇게 예쁘게 잘 다듬어 키운 사철나무는 정원 입구로부터

가운데로 향하며 나란히 심겨져 있어

그마저 없으면 전체 조경이 가늘고 나지막한 관목 일변도였을 텐데

피라밋 형의 주목과 둥그란 사철나무가 변화를 주어 경관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이렇게 사철 푸른 나무로 정원을 단장을 하고 있으니 북서풍이 불어오는 영하의 겨울에도

메마른 풀 몇 포기 겨우 지탱하고 있던 예년처럼 황량하지는 않을 거 같다.



지난 10월 10일 총무 대진이가 뜻밖에도 형남이의 부고를 알려왔는데

비록 형남이에 관한 한 아마 마지막 소식이 될 사망 소식이었지만

‘ 노 형남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이름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나만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 모든 동기들에게도 아마 그랬을 거 같은 것이

오래 전부터 내가 참석한 동기들 모임 어디에서도 형남이의 이름이 회자되지 않았었다.



대진이가 보낸 부고 내용이 그걸 실증해 주고 있었다.



“ 서울 고 24 노 형남 동기 별세

5월 25일 별세. 발인: 5월 28일

소식을 늦게 알게 되어 지금 전해 드립니다. “



사망 후 5개월이 지나서야 대진이가 알고 늦게나마 부고를 알렸으니

우리 동기 누구도 그 전에 형남이의 사망을 알지 못 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형남이와 나와의 인연은 일학년 때 느르므응, 임 정수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었고

수영이가 반장이었던 1학년 3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형남이가 키가 작아 거의 맨 앞줄이었는데 다 말이 없고 조용한 모범생이라

같은 반이었지만 말 한 번 나눠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교우 관계가 없었다.

형남이는 공부를 아주 잘 해 1학년 3반 일등이었다.

본교 출신이었는데 중학교 때도 반에서 줄곧 일, 이등이었다고 했다.



나는 맨 뒷자리로 임 채욱, 한 상훈, 이 철섭, 박 재효, 윤 종진, 김 용 등이 같은 라인이었고

이들과 어울리기도 바빠 중간 라인 앞쪽의 반원들과는 사실 교제를 할 틈도 없었다.

당시 바둑의 신이었던 임 채욱을 따라 정 동우, 박 재효와 기원을 들락거렸고

내 짝이었던 한 상훈이가 나와 바둑 실력이 비슷해 수업 시간에는 종이 바둑을 두고

방과 후에는 바둑 두러 철섭이, 김 용 등과 학교 길 건너편 상훈이네 대저택으로

몰려다니곤 했었다.



상훈이네는 학교에서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탁 트인 넓은 정원에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고

자가용 자동차가 몇 대나 주차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의 상훈이 어머님이 언제나 상냥한 미소로 반겨주셨고

아무리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의 우리들에게 라면도 끓여주셨고

다과도 푸짐하게 내다 주셨다.

김 용의 외모가 워낙 수려해 상훈이 모친께서 신 성일보다 잘 생겼다고 극찬하시기도 했었다.



2학년이 되면서 반이 갈렸는데 2학년 이후 언제부터인가

문과에서 일, 이등을 다투어야 할 형남이가 성적 상위순서 명단에서 빠졌다.

워낙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무슨 사정이 있겠지만 금방 성적을 회복하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이 지나도 성적 상위 명단에서

형남이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형남이가 결국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 하고 대학 시험에서 일차 시험에 실패하고

2차로 외대 스페인어 학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풍문에 들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형남이를 우연히 만나게 된 건 90년대 중반이었다.

그 때까지 20여년이 넘도록 형남이를 만나기는커녕 소식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1992년 봄에 동옥이의 권유로 등산을 시작한 이후 산행에 매료되어

그 이후 매주 일요일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동옥이와 둘이서 또는 동기 여러 명과 어울려

도봉산으로, 북한산으로, 산행을 다니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친한 동기 몇몇이서 같이 다녔지만 하나둘 빠지기 시작해

결국은 동옥이와 둘이서 다니게 되었는데 간혹 중하도 어쩌다 한두 번 동참하기도 하고

충우, 지철이도 한두 번 동참하기도 했었다.

중하는 아들만 셋인데 초등학생이던 큰 아들을 데리고 오곤 했었다.



그러던 90년대 중반 그러니까 초가을을 지나 한참 가을이 깊어가고 있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동옥이와 도봉산 입구에서 만나

점심 무렵에는 이미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하였었다.



동옥이와는 보통 아침 8시에 만나 산행을 시작했다.

동옥이와 그렇게 수 십 차례도 더 산행을 다녔지만

나나 동옥이나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연락하는 방법이 없어 누구라도 먼저 오면 10분을 더 기다렸다 안 오면

혼자 산행을 하는 거로 규칙을 정했었다.



동옥이는 사시사철 한결같이 한 손에는 낡아빠진 검은 색 책가방을 들고

다른 손은 주머니에 넣고 검게 물들인 군복 바지에

헐렁한 허름한 잠바 안에 런닝셔츠 달랑 한 장 입고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단 산을 타기 시작하면 쉬임없이 사뿐사뿐 같은 속도로

흘러간 옛 가요를 흥얼거리며 경쾌하게 걷는 동옥이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

항상 내가 먼저 도중에 쉬어가자고 해야 했다.

어떤 때는 밤새 술 마시고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나타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휘청거리며 위태위태 걷는 동옥이의 속도는 변함이 없었다.



대체로 산을 내려오면 감자탕이나 파전에 막걸리가 보통인데

그날따라 자기 집에 가서 연탄불에 고기 굽고 청국장 끓여 제대로 먹자고 하여

도중에 장을 봐 동옥이 네서 소주 곁들여 거나하게 먹고 마시고 있는데

동옥이 모친이 전화 왔다며 수화기를 동옥이에게 바꿔주었다.

동옥이 특유의 호쾌한 웃음으로 통화를 마치더니,



“ 노 형남이 아니?”



“ 알아, 일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 3반. ”



“ 형남이 전화야. 한 잔 하자는데 같이 갈래? ”



“ 이 시간에? 아직 해도 안 빠졌는데?”



“ 술꾼들이 술 시간이 따로 있나. 하하.”



“ 형남이가 술꾼이야? 그 모범생이?”



“참, 종호 너 몰랐구나. 형남이가 너만큼은 마실 거야. ”



그렇게 형남이를 20여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형남이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 키에 100kg가 넘는 비대한 몸집이었고

목소리도 걸걸하게 우렁찼다.



“ 야, 종호, 하하하, 반갑다. 얼마만이냐 . 하하하, 우선 한잔하자.”



이렇게 시작한 술이 동옥이는 겨우 해질 무렵에 만취, 인사불성이 되어 먼저 보내고

그 후에도 형남이의 인도로 일곱, 여덟 군데 주점을 전전하며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끝났다.

형남이는 한 군데서 오래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가는 곳이 모두 단골집이었다.

다 여주인들이었는데 형남이가 들어서면 그 여주인들이 하나같이 반색을 하고 맞아주었다.

그러나 자리 잡고 뭐 좀 마시다보면 불현 듯 불쑥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고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택시를 불러 다음 행선지로 향하고.



다음날 동옥이가 전화를 해 와,



“어제 혼났지? 내가 먼저 떨어져서 미안해,

우리 집에서 이미 소주 상당히 했잖아? 하하, 그런데 말이야,

형남이 앞으로 더 이상 만나지 마라. 걔 술 중독이야. 끝이 없어. “



그게 형남이와의 마지막이었다.

형남이는 나만큼 마시는 수준이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안 되었다.

수 없이 옮겨 다니며 끝없이 마시는데 말, 자세, 얼굴 표정 그 어디에도 표도 나지 않았다.



형남이의 부고를 접하고 대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된 거야? 형남이 빈소에는 아무도 못 가봤네? 어떻게 알게 됐어?”



“나도 몰랐지. 가족이 없으니까 그쪽에서 연락을 취해 줄 사람도 없고.

사망 소식도 우리 동기가 아닌 다른 데서 들었어.

5,6년 전에 형남이가 요양병원에 있다고 해서 한 번 면회를 갔었거든.

그 이후로 가끔 전화도 하고 했었는데 요양원에서 나오고부터 연락이 끊겼어.

연락이 두절 되어 형남이가 진료 다니던 고대 병원을 통해 알아보니까

정기적으로 진료 받으러 온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나도 더 이상 연락을 안했는데

이런 소식을 듣게 됐네. 내가 듣기로는 대장암인가였던 거 같아.‘



형남이와 최근까지 연락이 되었다면 수영이가 유일했을 거 같아

추석도 지나고 해서 안부 겸 수영이에게 겸사겸사 전화를 했다.

수영이는 고1때 반장이었고 형남이와 외대도 같이 다녔다.



“10여 년 전에 우리 왜 동기회에서 장 용구 장군 주선으로 땅굴 견학 간 적 있잖아.

그 때 형남이도 와 오랜 만에 만났는데 살이 얼마나 쪘는지 숨이 차 움직이지 못하겠다며

차에서 안 내리는 거야. 100kg가 뭐야. 150kg는 되는 거 같더라.

그 이후로 2,3년 전까지도 우리 부부와 같이 만났어.

그래서 우리 마누라도 잘 알고.

형남이가 요양병원에 있다는 거도 우리 마누라가 어디서 먼저 알았더라고.

형남이가 고1때까지 공부를 잘 했잖아, 그런데 고2때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가 봐.

형남이한테 들었지만 오래 전이라 어느 선생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 선생 중 누가 무슨 일로 형남이한테 심한 말을 했다는 거야.

거기에 쇼크를 받아 공부를 접었다는 거야.

‘너 같은 놈은 공부를 해 대학을 가서는 안 된다. 너는 쓰레기야’

뭐 이런 심한 욕을 들었는가봐.

그리고 홀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는데 가정적으로도 불우해서인지 항상 어두웠고.

결혼을 했지만 순탄치 못해 얼마 못 살고 이혼했어.

내가 지금 기억을 잘 못 하지만 부인이 재일교포로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결혼 생활이 아주 짧았고. 물론 애도 없고.

배 다른 형님이 한분 계시는데 서로 왕래를 안 했으니 가족이 없다고 해야겠지.

형남이는 물론 육체적으로 병이 들었지만 오랫동안 마음의 병이 깊었던 거 같아 “



“형남이가 고대 스페인어학과 교수였던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럼 거기서 정년까지 한 거야?”



“고대에서 정년했지. 형남이가 스페인 문학에 독보적 권위자야.

박사학위는 서울 대에서 했는데 30대 초에 고대 스페인학과 교수로 임용됐거든.

우리 동기 중에 제일 빨리 교수로 임용됐을 거야.

30대 초에 교수로 임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



외로움을 술에 의지하다 병마의 고통 속에 행려병자처럼 사랑하는 사람

한 사람의 배웅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을 하직한 형남이는

청소년시절 우리와 꿈을 함께 나눈 우리들의 천재였다.

밤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쌀쌀한 가을 밤,

먼 길을 먼저 떠난 형남이의 명복을 빈다.


2021.10.16. 송 종 호.





토요 살롱 336회 " 24회 동기 정 원 영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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