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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10-10 21:17:14, Hit : 1166, Vote : 321
  토요 살롱 316회 " 팔자라고 하기에는 "

아직도 9월이 채 덜 마무리 된 지난 주 초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혹시 미련을 못 떨치고 미적거릴지 모르는 늦더위의 잔재를 깨끗이 씻어버렸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산모기의 입도 비뚤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달려들지도 못하고 괜히 소리만 왱왱대며 힘없는 날개 짓으로 주위만 맴돌고 있다.

날아다니는 꼴도 비실비실 이다.
여름내 그렇게 뜯기며 진저리를 쳤는데도 쌩쌩 민첩하게 날아다니며 위협을 가하다
자칫 방심한 사이 기똥차게 빈곳을 찾아 아주 맛있게 빨아먹고 따끔해 아차 할 때면
이미 멀찌감치 종적을 감추어 약을 있는 대로 올렸는데
기온이 떨어지며 찬바람이 불어오자 때가 다해 활기를 잃고 축 쳐져 생을 다해가는 모습이
오히려 측은해 보인다.

공원의 낡은 보도 불럭을 교체하고 아스팔트를 덧붙이고 분수대를 새로 만드는 등
여름 지나며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하여 곳곳에 ‘공사 중, 출입금지’ 방지막이 놓여 있고
여기저기 건축자재가 널브러져 있어 어수선한데다 코로나 예방책의 일환으로
공원의 모든 놀이기구와 운동기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테이프를 칭칭 감아
공원의 분위기가 자못 을씨년스러운데 이를 일시에 만화라도 하려는 듯이
산책길 양 연도를 따라 흰색, 노란색, 검 붉은색 국화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팔등분한 하늘 정원 가장자리 한 칸을 차지한 진보라 천일홍이 탱글탱글 절정을 이루고 있고
오렌지색, 붉은 색 천수국, 진 주황 베고니아도 여전히 버티고 있고
얼마 전부터 봉오리를 터뜨린 연보라 불로 화도 꽃잎을 있는 대로 활짝 펴고
정원 군데군데에서 감초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 가며 높고 청명한 하늘,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과 더불어
형형색색 원색의 꽃들이 비록 봄꽃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고혹적인 향기는 없어도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을 들뜨게 해주기도 하는 한편
색이 바래지고 윤기를 잃어가는 초록 잎사귀들과 하나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볼 때
지난 날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쓸쓸해지려는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주기도 한다.

이렇게 가을이 오는 걸 누구도 막지 않고 누구도 허락하지 않을 리 없는데도
여느 해처럼 가을이 불청객처럼 소리 없이 문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떡하니 안방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버렸다.

“ 조 박사님, 식사하기 힘드셔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혜인이가 지난해부터 씹지를 못 해 유동식을 하고 있었다.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가 병행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는데
알츠하이머는 약물치료로 진행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뇌세포에 연결된 혈관이 노화하여 터져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해당 세포가 죽게 되어
그 세포가 관장하는 우리 몸의 기능이 마비되는 혈관성 치매는 치료 방법은 물론
약도 없고 예단도 할 수 없다고 한다.

2년 전에 여수 다닐 때만 하더라도 걸어서 KTX를 이용하였는데
지난해 봄에 여수 다녀 올 때는 차 뒷좌석에 눕혀 안전벨트로 고정시켜 다니고
차 밖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했었다.
지난 해 초부터 혼자서는 일어서지를 못 하고 용변도 못 가려 기저귀 차고
종일 침대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어 부인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워지자
이때쯤부터 부인이 평일에 3시간 돌봐주는 요양 사를 요청하였다.

지난 6월에 흥수, 병우와 문병 갔을 때만 하더라도 하루의 거의 대부분이 가수면 상태였지만
깨어 있을 때는 누군지 알아보고 파안대소하며 반가워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곧잘 했었는데
불과 두어 달 사이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 코로나로 면회가 안 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호자만 가능하고 날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제가 신청해야 합니다.“

누군지 알아 는 보느냐고 물었더니,

“ 저를 알아봤다 못 알아봤다 하시지만 말귀는 알아들으시고 대답은 하십니다.”

혜인이는 환갑 되던 해인 2013년 7월에 17년 연하인 문리대 후배와 결혼했다.
둘 다 초혼이었다.
혜인이의 고백에 의하면 평생 처음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라고 했다.

결혼 3년을 겨우 몇 달 넘은 2016년 12월에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게 되자
다음해 2월, 신학기 시작 전에 정년퇴직을 불과 1년 앞두고
강의를 할 수 없는데 학교나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면서
30여년 봉직 중이던 서강 대에 학교 측의 간곡한 만류에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부인에게 아직 젊은데 자기 땜에 희생하지 말고 재산의 반을 줄 테니
새 인생을 찾으라며 이혼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한번 맺은 인연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 저는 박사님이 저를 사랑해서 한 말이라는 거 압니더.
  저도 박사님을 사랑하거든예.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내버려두고 나 혼자 잘 살자고
  떠날 수가 있습니꺼?
  제가 박사님을 끝까지 돌 볼 거라예.“

혜인이의 불치병이 알려지자 부인의 거취에 대해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결혼 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슬하에 자식도 없는데
부인이 이렇게 남편에게 헌신하리라 예상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거의가,
“야, 요새 누가 그러고 살어? 더구나 홀몸에 앞길이 창창한데.”

지난 해 봄에 여수에 갔을 때다.
여수 앞 바다 혜인이 단골이자 혜인이 초등학교 한참 후배인 30대 초중반 나이인
낭만포차 여주인도 휠체어 탄 혜인이의 수척해진 모습에 우선 눈물부터 보이고는
그 제서야 휠체어 멀찌감치 뒤에 서 있는 부인을 알아보고 첫 마디가,

“어머, 언니가 아직 교수님 곁에 있네요.” 였다.

그 때 부인이 얼굴을 붉히며 입을 꽉 다물고 눈을 아래로 내려 깔며
뭔가 분해 하는 거 같은 표정을 짓는 데
뭐라고 할까 안쓰러움 이라고 할까 알 수 없는 쓰라림이 전율이 되어
가슴을 휘젓고 지나갔다.

몇 년이 지난 요즘, 부인의 헌신과 사랑에 대부분 감동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뭇 의심스런 눈으로,
“열녀 났네.” 비아냥거리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면회가 안 돼 가 볼 수도 없고 영상통화도 보호자 외에 안 된다니 화면으로 나마도
조 박사를 볼 수가 없네요.
무슨 일이 있거나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주저 말고 연락 주십시오.“

2017년 초여름 어느 일요일 어스름 어둠이 깔려오는 초저녁 무렵이었던 거 같다.
북아현 동 혜인이네 집에서 혜인이 동무해주고 저녁으로 간단히 짜장면 시켜먹고 나오는데
부인이 바래다준다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왔다.
몇 발자국 뒤에서 어둑어둑한 땅만 보고 걷던 부인이,

“ 가끔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예. 몇 년 살아보지도 못 하고.
  하지만 내 팔자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 지웁니더.
  내가 일찍 결혼했으면 어떤 사람 만났을지 어떻게 압니꺼?
  그래도 저를  첫 사랑이라고 하고 저만 사랑한다는 사람 만났거든예.
  그거로 만족해야지예.“  

이번 추석 연휴에 성묘나 가족 방문 등 되도록 나들이를 삼가고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당국의 간곡한 부탁과 귀성객의 열차 편 예약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도를 믿고
체증이 없으면 집에서 안창까지 두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해 오후 네 다섯 시 경에
도착할 요량으로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전에 집을 나섰으나
도로사정은 전혀 예측과 달랐다.
우선 경인고속도로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88도로는 평일과 다름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팔당대교를 몇 백 미터나 앞두고
자동차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오줌보는 터지려고 하는데 꼼짝없이 한 시간을 갇혀 있어야 했다.
당국의 당부대로 성묘도 가지 않고 시골에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는 대신
연휴 동안 가족들과 여행 가는 차량들이었다.
강원도 숙박업소는 이번 연휴에 예약 율이 100% 였다고 한다.
큰 조카가 관리하는 안창 캠프장도 구석진데다 주변 경관이 별로라 인기가 없을 법 한데도
예약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과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숙모님이 눈에 띄게 달라지셨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듣는 거만 좀 불편하지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다면서
진료하는 의사도 놀란다고 자랑 하셨는데
다리가 붓고 저려 지팡이 없으면 나다지니 못 한다고 하셨다.
‘눈만 밝지 다 인 좋아.’
노인 네 일은 내일을 모르고 ‘밤새 안녕하십니까.‘ 라더니 불과 한 달사이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잘 듣지 못할 정도로 청력도 더 약해지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 못하시니까 끼어들지 못하고 혼자서 웅얼웅얼하고 계신다.
참견하기 좋아하셨는데 그러고 있는 모습이 안 돼 보여
덩치만 크고 나이만 들었지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조카 녀석들과의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숙모님이 주도할 수 있는 옛날이야기로 주제를 바꾼다.

숙모님은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뒀는데
큰 아들이 나보다 생일이 불과 두 달 늦은 동갑인데도 숙모님의 엄명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종호 형이라 불렀고 장년이 되고부터는 형님으로 격을 높여 부르고 있다.
20대 말에 결혼해 두 살 터울의 아들 둘을 뒀으나 몇 년 전 상처를 하고
제수씨 생전인 환갑 되던 해 풍으로 쓰러져 아직도 왼 팔이 부자유스럽고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 해 8년째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서울에 살며 주말마다 아직 신혼인 마누라 달고 아버지 면회 오는
효심 깊고 마음이 너그러운 작은 조카는 3년 전에 결혼했지만
한 차례 유산 후 아직 아이가 없고
시골에 살고 있는 큰 조카는 내년에 벌써 마흔인데도 아직 미혼이다.

시골에 총각도 드물지만 처녀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시골로 시집오려는 처녀는 물론이고 과부도 없다.
그렇다고 큰 조카가 비록 허름하고 초라하지만 자기 명의의 집도 있고
주위환경과 이웃이 모두 익숙하고 일터도 있는 시골을 떠나
결혼하려고 낯설고 물 설은 도시로 옮길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시골이 생활 터전이라는 결정적인 핸디캡에다가 착하고 성실하다는 성품 외에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큰 조카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니까
더 이상 나이 들기 전에 외국 여자라도 데리고 오자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설득해 보는데
큰 조카 녀석은 멋쩍은 얼굴을 하고 묵묵히 있지만 숙모님 반대가 워낙 완강하다.

더구나 숙모님 막내 동생의 큰 아들로 친정 조카이자 나한테는 사돈뻘 되는 동생이
한 집 건너 이웃에 살고 있는데  필리핀 여자와 결혼해 딸, 아들 낳고 살다가
몇 년 전 이혼하고 혼자서 궁상을 떨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키우고 있는 꼴을 보고는
외국 여자는 아예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큰 아들 보다 다섯 살 아래인 외동딸은 아직 20대 때에 일찌감치 일본으로 시집갔지만
10여 년 전 나이 차가 꽤 나는 일본인 남편을 여의고 슬하에 자녀가 없는데도
남편의 유업을 돌보며 일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숙부님 모습을 가장 많이 닳았지만 두 살 때 아버지가 새 여자와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아버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자란 지 누나보다 여섯 살 아래인 막내도
결혼 해 예쁘고 영리한 딸 둘 낳고 잘 살다가
누구에게 꼬여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사업을 해 본답시고 껄렁대다
그나마 푼푼이 모아 마련한 집도 날리고 빚도 짊어지자 가정이 파탄되어 이혼하게 되고
딸들과도 연락이 끊긴 채 공사장을 전전한 지가 10년도 넘었다.

막내아들의 큰 딸이 우리 막내와 동갑인데 나도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보고 못 봤지만
딸들이라 애교도 부리고 재롱도 피우던 귀엽고 예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나도 아들만 둘이고 큰 동생도 아들만 둘이라 집안에 처음 보는 딸들이라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그래서 숙모님 눈에 항상 물기가 고여 있다.
장기간 병석에 누워 있는 큰 아들, 일본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딸,
가족에게 버림받고 날품팔이로 공사판을 전전하며 명절 때나 겨우 얼굴을 내미는 막내아들,
오랫동안 소식이 단절 된 귀여운 손녀들, 장가 못 가고 있는 큰 손자,
그래도 좋은 이야기만 하시지 한마디 한탄, 타령, 불평이 없으시다.
3년 전 숙부님의 별세 소식을 들은 이후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회수 만 늘어났을 뿐이다.

“ 숙부님이 돌아가시며 빈손으로 가지는 않았네요. ”

숙부님은 6.25 전쟁에 참전하여 뭔가 공을 세운 대가로 연금을 받고 계셨는데
돌아가시자 수혜자가 숙모님에게 계승되었다.
그것도 돌아가시고 나서야 숙부님이 그런 연금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숙모님에게는 영감 죽자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 거와 진배없는 일이었다.

“ 그러게, 그래서 내 주머니가 빌 날이 없어.
  노인 연금 30만원에다가 국가 유훈 연금 20만원, 매달 50만원이 들어 와.
  종손 조카가 때마다 용돈 주지 그리고 내가 이 동네에서 최고령자라
  이것저것 받는 게 많아.
  쌀도 가져다주고 채소도 가져다주고 얼마 전에 마늘도 몇 접 받았는데
  너 마늘 좋아하는데 한 접 가져가라.
  안창 마늘이 알이 작지만 덜 맵고 단 맛이 나. “

종손 조카란 숙모님의 친정인 연안 김씨 인목대비 부친인 김 제남 종손을 말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하하 하고 웃으시지만 눈에는 물기가 늘 그렁그렁하다.

50년을 두고 숙모님을 봐 왔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어느 정도는 전달된다.

숙모님은 숙부님이 자식 셋 달린 조강지처와 자식들을 팽개치고
게다가 아무 대책도 없이 연로한 부모님까지 맡겨
애 셋 키우고 교육시키고 시부모 봉양하는 생계를 책임지게 해
가을이면 곡식 얻으러 출가외인인데도 친정에 눈총 받으며 이웃 눈을 피해 몰래 다니는 등
온갖 수모를 참고 온갖 고생을 다 하게 했는데도
신여성과 살림을 차리고 잠적해버린 지아비를 단 한 번도 한 순간도
원망하는 말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집 나간 서방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몸단장을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할머니가 92세에 돌아가시고야
나이 일흔이 다 되어서 비로소 시집살이를 면 할 수 있었다.

7,8년 전 제수씨가 막 위암 투병을 시작할 때라 틈만 나면 안창으로 내려갔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강원도 안창이 토박이인 숙모님이
바다 한 번 못 가 봤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평생 누구 돌보고 일만하고 살았지 어디 놀러 한번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 날 상경 일정을 늦추고 제수씨와 숙모님, 그리고 숙모님과 가까이 지내는
동네 할머니 두 분을 더 태우고 속초를 거쳐 양양으로 가서 해수탕에서 목욕도 하고
주문진 어시장에서 싱싱한 회도 먹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종 입을 다물 줄을 모르고
“내가 송 씨 집안에 시집와 처음해 보는 호강이구나. 하하하.”

3년 전에 숙부님 거주지 구청으로부터 사망 통지를 받았을 때는 이미 화장을 마친 상태였다.
막내아들이 어머니 소원으로 여러 번 해당 구청을 찾아가 유골을 모신 곳을 수소문하고
숙부님의 두 번째 가족을 찾았으나 개인 정보유출 금지를 이유로 알려 주지 않아
번번이 허탕치고 왔다고 한다.

한마디 말은 안하시지만 숙모님에게는
조강지처로서 또 아이들 아버지가 가는 마지막 길을 자기가 수습하지 못한
한이 남아 있는 거 같다.
사후라도 납골당에라도 가서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고
절이라도 올릴 수 있는 처지도 못 되는 게 또 한이 되고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이 모든 한을 속으로 삼키며 눈물만 훔치고 있다.

“ 다 내 팔자려니 하는 거지 뭐.”

“ 언제 또 올래? 설에는 꼭 와.”

숙모님을 뵐 날도 그렇게 오래 남지는 않은 거 같다.
2020.10.10.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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