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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10-24 20:49:35, Hit : 335, Vote : 117
  토요 살롱 334회 " 24회 동기 방 천 환의 명복을 빌며 "

지난 수요일인 10월 6일 옛날 수하 직원들과 거의 일년만에 회식을 가졌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여 동안 인천에서는 그래도 건설 분야에서는 지역 업체 중 1,2위를 다투던

꽤 규모가 되던 회사의 부회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동고동락을 함께하던 직원들이다.

직원이라기 보다 중역들이고 현장 소장들인 간부들이었다.



회사 도산이후 뿔뿔이 흩어졌지만 현장 관리 상무로 재직했던 한 친구가 총무역을 자임하고

연락을 도맡아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으니까 10여년이 훨씬 넘은 모임이다.

격월에, 또는 아무리 늦어도 분기에 한번씩은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옛 이야기도 나누며

격의 없이 술잔을 기울이곤 했는데 코로나 이후 아무래도 모임이 부정기적이 되고 뜸해지게 되었다

약속을 평소보다 한시간 일찍 한데다 영업이 10시까지로 한시간 연장되어

실제로 마시는 시간은 손해보지 않아 2차까지 쫒기지 않고 여유롭게 마실 수 있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 거나해지자 옛날 직장 직위고 뭐고 다들 오랜만에 중구난방 떠들어대며

마음 놓고 흔쾌하게 마시는 모습들이었다.



생맥주 집 영업시간 종료시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습관대로 새벽 4시에 눈은 떠졌지만 화장실을 다녀오며 혹시나하고 베란다 문을 열자

창 밖의 비소리가 제법 요란해  "어이구, 술도 다 안 깼는데 잘 됐다." 하고

다시 내쳐 자버렸다.

그래서 아침에야 대진이가 보낸 '방 천 환 부고'를 알리는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금년 들어 세번째 동기 부고였다.



" 서울고 24 방천환 동기 별세.

  신촌 세브란스 병원 4호실

  발인 : 10월 7일(목) 13시 40분.

  장지 : 대한 성공회 서울 대성당. "



문자 발송시간이 전날 저녁 10시였다.

내용만으로 추측컨데는 2일장이었다.

설사 문자를 제 시간에 봤더라도 조문을 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일정 상 다음날 발인에도 참석할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천환이에 대한 기억이 사실 아물아물하다.

학교 다닐 때는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지만 오다가다 마주치면 씩 웃는 인사는 나누는 사이였다.

즉 말을 걸거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안면 정도는 트는 사이였다.

나의 기억 속의 천환이는 어떤 옷을 걸쳐도 헐렁하게 보일 정도로 삐쩍 마르고 길다란 모습이었다.

나도 큰 키에 속해 항산 맨 뒷자리였는데 천환이는 나보다 더 길었던 거 같다.

그리고 하얀 피부에 항상 싱글거리느 모습으로 기억 된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도통 마주칠 일이 없었다.

전혀 까맣게 잊고 있다가 1990년대 중반, 동옥이의 알선으로 동옥이를 포함해

박 찬선, 육 동신이, 박 종면 등이 매주 다니던 등산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천환이도 명목상 고정 멤버였다.

힘이 하나도 없이 흐늘거릴 거 같은 길다란 다리가 떠 올라,



" 아니 천환이가 등산을? "



" 아, 너 몰랐구나. 천환이가 날다람쥐야. "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 등산 모임이 1997년 겨울 내가 북한산에서 낙상하는 사고를 당하기까지

2,3년 계속 되는 동안 천환이와 제대로 등산을 같이 해보지 못했다.

매번 천환이에게 연락했다고하고 기다렸으나 천환이는 한 번도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끼리 정한 규칙이 별도 연락이 없는 한 약속시간에서 10분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였다.

몇 명이 제 시간에 나타나던 10분 기다렸다 무조건 출발이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처음 산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997년 초겨울에

약속 시간인 새벽 5시에 갔으나 아무도 없어 규정대로 10분 기다리다 혼자 올라갔다

하산 길에 사고를 당했었다.



천환이가 등산 시간을 새벽으로 바꾼 이후에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으나

그 전에는 약속 시간 보다 항상 늦어 우리가 이미 산을 한참 오르고 있거나

때로는 내려오고 있는 시간일 망정 몇 번 오긴 왔었다.

북한산, 도봉산 등 가벼운 산행이라 우리는 수건 한장 달랑 찬 경장차림이었는데

천환이는 마치 히말라야 등정이라도 가려는 듯이 침낭에 텐트에 버너에 식기류 일체를 구비한

산더미 만한 배낭을 매고 등산 용 지팡이를 짚고 창 넓은 등산 모자에 선 글라스에 옷 차림도

어디 등산 용품 화보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핵핵대고 올라 오다가 반도 못 올라오고 널부러져 있곤 했었다.



" 너희들 벌써 내려 오냐? 나는 좀 쉬었다 갈게. "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해맑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천환이가 날다람쥐였었다면 무슨 연고였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이미 체력은 고갈 상태였지 않나 싶다.



빈소에는 못 갔더라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배웅하는 친구들도 별로 없었을 텐데

발인에는 가 봤어야하지 않나 하는 아쉬운 마음과 죄스러운 생각으로 어제 대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 천환이 발인에 다녀왔어?"



" 응, 다녀왔지. 나도 연락을 늦게 받아서 말이야. 사망하고 하루 지나서 받았어.

  받자마자 공지 한 게 그거야. "



" 연락을 하루 지나서 받다니? 가족이나 연락할 사람이 없었던가 보지?"



" 가족이 없어.

  일찍 이혼했고 슬하에 자녀도 없고.

  팔순 넘은 형님이 계신데 형수님이 쭉 돌봐줬는가 봐."



천환이가 동기 모임에 잘 나오지 않아 90년대 중반 등산 때 이후 천환이를 보지는 못 했지만

어쩌다 간간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 가족이 없으면 장지는 어떻게 해?"



" 다행히 가까운 데야.

  천환이 부모님부터 전가족이 독실한 성공회 신자라 성공회 본당 있잖아? 광화문 우리 학교 근처에.

  거기 지하에 납골당이 있는데 거기 안치한대. "



" 늦게들 연락 받아 친구들이 많이 못 가 봤을 텐데 배웅 길이 쓸쓸했겠구나."



"응, 나까지 여섯 명이 참관했어. 나하고 최 종호, 박 용기, 강 용학, 노 건우, 황 우성, 이렇게 여섯명."



" 천환이가 참 착했던 거 같은데. 순수하고."



" 그럼, 너무 착해서 탈 일 정도였지. "



대진이야 총무니까 동기들 길흉사에 빠지지 않지만 최 종호와 황 우성이도 거의 빠지지 않는다.

특히 동기 본인상일 경우 나도 가급적 가 보려고 하지만 이 번처럼 못 가 보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 둘은 조문만은 반드시 하는 거 같다.



아직은 잔서가 남아 있어 낮에는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먼 길을 떠난 천환이를 애도하며 그 곳 세상에서는 부디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편안히 영면하기를 빈다.



해맑은 웃음이 천진난만했던 길다란 천환이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2021.10.09. 송 종 호.





토요 살롱 335회 " 우리들의 고독한 천재, 노 형 남의 명복을 빕니다. "
토요 살롱 333회 " 餘 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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