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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10-24 20:55:34, Hit : 327, Vote : 113
  토요 살롱 336회 " 24회 동기 정 원 영의 명복을 빕니다. "

아직 쾌적하게 선선하기만 해야 할 10월에 낙엽은커녕 단풍이 들지도 않았는데

새벽에는 이미 초겨울 날씨다.

새벽의 한기 때문인지 해가 더 짧아진 거 같다.

6시 반이 되어야 동녘에 붉은 기가 돈다.

새벽에는 패딩이 그리울 정도지만 일교차가 심해 낮에는 딱 활동하기 좋은 날이다.

보일러를 틀면 덥고 안 틀면 새벽에 덜덜 떨어야 한다.



하늘 공원의 조경이 대충 윤곽이 들어났다.

정방형 정원을 모서리로 연결해 4등분을 하고 회양목으로

하트 모양, 원형, 세모, 마름모 등 여러 칸을 나누었다.

칸 사이사이에는 2m도 넘는 커다란 원뿔 모양 크리스마스트리인 상록 주목나무와

가늘고 긴 가지를 버드나무처럼 축 늘어뜨린 공작 단풍나무를 심심치 않을 정도로

듬성듬성 심어 칸마다 무슨 꽃을 심을지 모르겠지만

나지막하게 깔릴 꽃의 높이와 아기자기한 울긋불긋 색깔에

길다란 높이와 상록 푸른 단일 색깔로 대조해 전체적인 조경에 임팩트를 줄 수 있게 했다.

무슨 꽃들이 들어설지 모르겠지만 곧 완성될 하늘 정원의 환골 탈퇴할 조경이

어떤 전경일지 걸 기대된다.



지난 주 일요일인 17일 아침에 대진이가 정 원영 동기의 부고를 알려왔지만 이름이 생소하여

동기 회 명부에 실린 학창시절 사진을 봤는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대진아, 수고 많다. 그런데 정 원영이 좀 알아?”



“ 아니야, 나도 전혀 몰라. 지금 빈소에 가는 중인데 가 보면 좀 알 수 있겠지.

연대 치대를 나왔는데 치과를 개업하고 있다가 오래 전에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했다나 봐.

그리고 동기들과 교우 관계는 거의 전무할 정도로 내성적이었지만

특이하게 새로운 뭐를 만들고 발명하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하고.”



나중에 대진이가 연락이 왔지만 연대 치대를 나왔고

평소에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건강했는데 자다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거 외에

별 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동기들을 제일 많이 그리고 가장 자주 접하는 진규에게 물어 봐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해 3학년 때 원영이와 같은 반원 중 내가 아는 동기 두어 명에게

물어봤는데 같은 반이었는데도 잘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 한 친구는 같은 반이었다는 시실 자체도 기억하지 못 했다.

진규가 연대 치대를 같이 다닌 동기들에게 물어 봐도 같은 대답이었다고 한다.


결국 동기 중에는 원영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거 같아

대진이에게 유가족 전화번호를 물어 봐 상주인 아들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돌아가신 아버님 추모사를 좀 쓰려고 하는 데 내가 아는 바가 없고

우리 동기 중에도 잘 아는 사람이 없어 그러는데

아버님에 대해 좀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듣기로는 아버님이 뭐 발명하는데 심취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아버지 땜에

가족들이 고생 좀 하지 않았어?“



“아, 예, 아버지가 뭐 그러기는 좀 하셨지만 정도를 벗어나지는 않으셔서

그것 때문에 가족들이 특히 어려움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인 20여 년 전에 치과를 그만하시고 쭉 사업을 하셨어요.

지금은 새를 받는 거도 있고 해서 경제적으로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추모사를 써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제 개도 보내 주시면 표구를 해서 아버님 납골당에 비치하겠습니다.“



“어머니하고는 어떻게 만나셨대? 아버님이 말도 없고 내성적인데

설마 연애결혼은 아닐 테고?“



“소개로 만나셔서 사귀다 결혼하셨는데 어머니와 네 살 차이고요,

어머니가 이대 정외과를 나오셨거든요.

아버지가 연대를 나오셔서 옆 동네라 서로 아마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던 가 봐요.

아버지가 서른셋에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를 어떻게 꼬셨을까. 말 한마디 않으면서. 어머니가 성격이 활발하신가보지?”



“아, 예, 하하, 좀 그러신 편인 거 같습니다.”



“아버지가 과묵했지만 그럴수록 딸 바보일 가능성이 많은 거 같은데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아들은 아버지와는 별 재미가 없었겠네?”



“여 동생이 저보다 네 살 아래거든요.

동생이 엄청 충격을 받았고 많이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저하고도 괜찮았습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부자관계였습니다.

말씀이 없으셨지만 말없이 묵묵히 뒤에서 제가 원하는 거 필요한 거 해 주셨거든요.

제가 일 때문에 10년간 해외에 나가 있었고 돌아와서는 제주에 가 있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집에 오면 같이 외식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했습니다.

말이 없으셨지만 다정하고 자상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없어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가 됩니다.“



추모사가 정리 되는 대로 아들에게 보내주고 가까운 시일 내 차라도 같이 한잔하기로 했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1.10.24. 송 종 호.



다음은 유가족들에게 보낼 추모사 내용이다.



정 원 영 동기를 추모하며,



아직도 한겨울의 추위가 누그러지지 않아 겨우내 헐벗었던 산야는 여전히 황량하고

언 땅이 해동되지 않아 한참 꿈틀대고 있을 새 생명의 동정 또한 미동조차 느낄 수 없었던,

돌아보면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도 더 지난 1969년 3월 초,

우리 서울 고등학교만의 독특한 전통인, 바지에 주머니가 없는 교복을 처음 입고

한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한손은 찬바람 냉기를 견디느라 꽉 쥔 채

지난밤의 냉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처음 등굣길이라 기대 반 설렘 반,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혹시나 첫날부터 지각을 하여 처음 대면하는 담임선생님께 나쁜 인상으로 각인되자 않을까

배정받은 반 교실을 찾아가느라 종종 걸음을 치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 어느 듯 백발이 성성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고색창연한 경희궁 넓은 뜰에서 장래의 찬란한 희망을 품고서

꿈을 함께 꾸고 현상의 고뇌를 함께 나누었던

여드름투성이에 왕성한 심신의 성장으로 혈기 방장했던 청소년기의 우리 친구들을

이제는 하나 둘 떠나보내며 서로가 서로를 이별해야 하는 시기가 닥쳐왔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1972년 봄에 졸업하고도 50년이 지났습니다.

내년이 졸업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교를 졸업하고 50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우리 서울 인들은

잠시도 모교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인 이란 자부심과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히 평생 가슴에 깊숙이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서울고등학교 동문, 동창들,

비록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잠깐이라도 경희궁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면

우리는 격의, 제한 없이 모두 서울 고등학교 동문으로 인정해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 서울 고등학교만의 독특한 전통과 분위기 때문입니다.

교정이 인왕산을 배경으로 유서 깊고 아름다운 광활한 옛 궁터로서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교양과 체능을 연마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어

우리는 행운아였고 우리 서울 인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우리 서울 인들은 초면에 연령대가 차이가 나도 서울 고등학교 출신이란 말 한마디로

바로 경희궁을 연상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규율이 엄격했으며

6.25 전생 시 가장 많은 학도병으로 출전하여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정의를 위해 앞장서고 대의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이

우리 서울 인의 긍지이자 자랑이며 전통입니다.



깨끗 하자.

부지런하자.

책임 지키자.



우리 서울 인들에게 몸에 밴 우리의 삶과 인생을 지배한 교훈입니다.

우리 서울 인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서울 인들의 공통적인 인성이자 습관입니다.



이제 경희 궁 터에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에

함께 미래의 꿈을 키우고 사랑을 배우고 우정을 나누던

우리 서울 고 24회 동기 정 원 영을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먼 곳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비록 자신의 내면세계에 보다 집중하고 내성적인 성품으로 교우관계가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꿈이 많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도전 정신이 월등했던 친우였습니다.



깨끗 하자.

부지런하자.

책임 지키자.



고인은 평생 우리들의 긍지이자 자부심이며 우리들의 삶의 중심 슬로건인

우리의 자랑인 모교 서울고등학교 교훈을 실천하는 삶을 영위한 진정한 서울 인이었습니다.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 하며 건강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수면 중에 심근경색으로 급서하였다고 합니다.

4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든든한 기둥이었지만 백년해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훌쩍 먼저 떠나버려 졸지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된 부인 김 현옥 여사와

언제나 지원군 역할을 자임하며 사랑을 베풀기만 하던 자상한 아버지를 잃은

아들 윤진 군과 딸 현진 양의 슬픔과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니었겠습니까.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깊어 가는 가을 날, 느닷없이 휙 떨어지는 한 잎 낙엽처럼 홀연히 세상을 떠난

우리들의 가장 소중했던 시절을 함께하고 경희궁의 추억을 공유한 우리들의 친구

고 정 원영의 명복을 빌면서 감히 추모하는 글을 올립니다.



서울 고 24회 동기 일동을 대신하여,

2021년 10월 24일. 송 종 호.





토요 살롱 337회 " 허무한 마음 "
토요 살롱 335회 " 우리들의 고독한 천재, 노 형 남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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