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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07-09 21:08:59, Hit : 2417, Vote : 550
  토요 살롱 182회 " 교 양 인 "

장마가 시작된 지 20여 일 만인 지난 화요일, 전날 늦은 밤부터 시작된 비가 종일 내렸다.
오랜만에 구경하는 비다운 비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머물며 비가 며칠 더 계속될 거라고 해
며칠 동안이나 쏟아질 시원한 빗줄기를 상상하며 들뜬 마음에 잠깐이나마 행복했었으나
그 후 이틀 동안 요즘 들어 아침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챙기는 일기 예보에
‘외출할 때 우산 잊지 마세요.’ 라는 기상 캐스터의 친절한 멘트가 무색하게
금방 쏟아질 듯이 잔뜩 흐리기만 하고 빗방울은커녕 습기만 품은 후덥지근한 날씨에  
아침부터 들고 나와 저녁 늦게 돌아갈 때까지  우산 한번 펴보지 못하고
그나마 딱 하나 남은 우산 잃어버릴까봐 우산 든 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간간히 하늘을 쳐다보며 그 때마다 증폭되는 짜증 속에 다녔는데
어제 아침부터 구름마저 싹 걷히더니 쨍쨍한 날에 낮에는 기온이 급상승하여
결국에는 30도를 넘는 폭염의 푹푹 찌는 전형적인 여름날로 다시 돌아왔다.
전국에 걸쳐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졌다.
600억 원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사 줬는데도 일기예보 적중률이 20%를 겨우 넘는단다.

새벽에 운동을 나가면 공원 주위 여기저기 소형 텐트가 쳐져 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열대야에 집에서 잠을 이룰 수 없어
텐트 치고 밖에서 자는 사람들이다.
노인네들의 쉼터로 띄엄띄엄 설치한 제법 널찍한 마루도 지붕 있는 정자 마루도 만원이다.
각자 자기 집에서 이불만 들도 나온 사람들이다.

또 다른 여름날 풍속도가 있다.
몇 년째 변함없이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 놓고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어느 독거노인의 찜통더위 여름날 토요일 오후의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그나저나 이제 겨우 7월 초순을 통과하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의 문턱을 겨우 넘은 셈이다.
마른장마라지만 그래도 꼴에 장마라고 간간히 비 구경을 하고 그 때마다 잠시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었는데 다음 주를 지나면 그나마도 끝이다.
태풍 뭐 때문에 장마 전선이 이미 소멸 되었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앞으로 곧 맞닥뜨려야 할 불볕더위에 지레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해 추석 다음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 무렵 한성이네에 갔었는데
마침 혜인이 부부가 오후 느지막이 한성이네에 오는 바람에
저녁을 함께하며 늦게까지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나중에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전혀 기억에도 남지 않는 가벼운 이야기들과
이제는 수 십 번도 더 울 거 먹은 부풀리고 부풀린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를
또 더 부풀려서 우려먹다 이제는 수다거리도 소재거리도 다 떨어질 때쯤 혜인이 부인이 불쑥,

“ 저, 송 사장님은 독서광이시라면서요. ”

혜인이 부인은 우리와 연령 차이가 많이 나서인지 남편 친구들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남편을 칭할 때도 ‘교수님’ 이라고 하고 한성이는 ‘김 교수님’ 이라고 부른다.

“ 맞습니다. 저 친구 학교 다닐 때부터 독서량이 엄청납니다.
  손에 책이 떨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책을 들고 다닙니다.
  지금도 전자 책 들고 다닙니다. ”
한성이가 거든다.

“ 광이라기보다 시간이 빌 때 책을 가까이 하는 편입니다.
  전철이나 버스,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어디 가서 누구 기다릴 때 무료하니까.
  잠들기 전에도 그렇고.  
  그런데 주로 흥미 위주의 연애 소설을 읽지 재미없고 심각하거나 학술적인 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친구들이 저술한 책은 장르를 막론하고 어떻게든 다 읽습니다.
  조 박사의 역저 ‘동에서 서로 퍼진 근대 공민사회’, 그 재미없는 책을
  장장 한 달에 걸쳐 다 읽는 동안 지겹고 좀이 쑤시고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주저앉히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 상명 대 이 명식 교수, 이름 들어봤지요?
  그 친구가 ‘Strategic Brand Marketing' 이란 책을 동료 교수들과 공저했는데
  그거도 교보문고에서 사서 읽었어요.
  그거 읽으며 그렇게 재미없는 책 읽으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인내력에
  제가 제 자신한테 놀랐습니다. 그래도 다 읽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동기 지 두환 교수 저작은 몇 권 읽었는데 모두 재미있게 읽었고요.
  15,6년 전 쯤 우리 동기 한신 대 교수 안 병우가 쓴 ‘한국사’ 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제가 그런 딱딱한 책 말고 재미있는 책 한권 소개해 드릴 테니까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미움 받을 용기’ 라는 제목의 책을 추천했다.

며칠 후 시내 나가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구입하여 대충 들쳐보니까
그 전해인 2014년도 가을쯤인가에 오 성진이가 이 책을 읽고 수긍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그 내용을 요약해 들려주고 일본인 저자와 그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핵심 주제 내용인 독일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학설에 대해 이야기 해 주며
읽어보기를 권유한 바 있는 책이었다.
그 때도 심리학이라면 프로이드 정도나 알고 있었지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이름을 처음 들었고 무엇보다도 심리학자 어쩌고 하니까
내가 읽을 책은 아닌 거 같아 건성으로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생각으로 ‘다음에’ 하고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렸다.  

대체로 무슨 일이든 의도적이든 아니든 금방 마무리 짓지 못하고
미해결인 채 다음으로 미루기를 즐기는 경향이지만
책에 관한 한 내가 구입한 거든 누구로부터 선물로 받은 거든 손에 들어 온 즉시 읽지 않으면
뭐가 마려운 걸 참고 있는 거처럼 찜찜하고 거북해 당장 그 날부터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예외로 그렇게 몇 달을 책장에 방치된 책이 또 한권 더 있었다.
지난봄에 술자리에서 지 두환 교수가 쇼핑백에 넣어 전해준 ‘아아록’이다.
그 날 술을 많이 마시고 자정 넘어 귀가 하는 동안 어디다 두고 나오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챙겨 온 게 신기할 정도였다.
술김이라 두환이가 책을 선물했다는 걸 까맣게 잊고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고
한동안 쇼핑백 속에서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니까 엄밀히 이야기하면 책장에 방치된 게 아니었다.
봄 소풍 후 두환이가 환기시키지 않았더라면 아주 더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을 거다.

그러는 동안 미국을 다녀오고 다른 책을 읽느라 손을 못 대다 다음 차례로 내심 작정한 게
두 권 중 사실은 ‘아아록’이었다.
두환이가 8월말 출고를 목표로 지금 두 권의 책을 집필 중이고 8월 모임에 나올 거라고 해서
그 전에 부지런히  완독해두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분량이 촘촘한 글씨로 5백 페이지가 넘는다. 역주라 주석도 만만치가 않다.
틈틈이 읽는 거라 한 달 이상 시간을 잡아야 할 거 같다.

두환이 제자들 12명이 대학 졸업 후 1994년에 모여
20여년을 스승인 두환이의 지도하에 연구하고 역주를 하는 동안
일일이 두환이의 후견을 거쳐 두환이의 최종 제가를 받고 출간한 책이라는데
내용 중 설명을 요하는 부분에 두환이의 저서가 인용은 되었지만
두환이의 이름이 어디에도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두환이의 품성이 들어나는 대목이다.

저자인 남 기제는 영조 때 과거에 합격한 학자로서 조선 건국부터 효종까지의 조선사를
노론 입장에서 집필했다고 하니까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당연히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이사항은 역사상 처음으로 번역된 거라고 거다.
그만큼 현대 사학에서 조선사에서 차지하는 노론의 입지가 홀대를 받는다고 해야 할까.
때문에 성리학을 전공하고 기존의 노론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역사학자 두환이가 꼭 번역하고 싶었던 저술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얼마 전 혜인이 부인이 내가 아직 전편도 읽지 않은 줄도 모르고
‘미움 받을 용기’ 후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성의를 무시한 거 같아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고 며칠 후 공교롭게도 성진이가 무슨 이야기 끝에 또 알프레드 아들러를 거론하며
‘읽어 봤지?’ 하길래 ‘아니.’ 했더니 아직도 읽지 않았다고  언짢아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핀잔을 주다시피 해 순서를 바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혜인이 부인이나 성진이 말대로 두어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도록
질문하고 대답하는 식의 대화체로 이루어진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이다.
한마디로 프로이드와 동시대에 활약하고 프로이드와 학문적으로 양극으로 대립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주창한  ‘개인 심리학’의 소개서다.

요약을 한다면,

누구나 변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인생이 선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점, 즉 찰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는 아무 연관 없이 단절되어 있다는 거,
따라서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대한 자의적인 목적이 현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
바로 이 점이 프로이드와 상반된다는 이야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상처를 입게 되며
타인과 경쟁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는 등
타인의 과제를 위해 살지 말라는 이야기,
자기중심 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가 자기가 있을 곳이라는 인식아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에게 도움이 될 때 비로소 자기 가치를 알게 되고
존재적이든 행위적이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그 순간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변화시켜야 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변화란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과 경쟁하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등
타인의 주제에 맞춰 살지 않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의 도움이 되게 사는 거라는 거다.

그러면서 또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태까지 자기가 산 세월의 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세 짜리가 자기를 변화시키려면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 나이에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3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이 100살이 다 되어서야 변화의 결실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더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이가 많을수록 행복해질 chance도 smaller 해 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타인에게 도움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하게 행복해진다.’ 라는 이야기는 아주 낮 익은 이야기다.
지난 회에 잠깐 거론한 김 형석 교수가 96세에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느낀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한 내용과 동일하다.
김 형석 교수도 아들러에게 영향을 받은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의 온누리 교회 담임 목사의 설교 제목이 연상 되었다.

“ 교양인이 됩시다.”

“ 아는 게 많고 배운 게 많다고 교양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음악, 문학, 미술 등 예술을 이해하고 박사학위를 소지했다고 하여
  교양인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
  
  “교양인이란 귀를 열고 들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앞서 아들러의 모든 이야기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바로 이 말인 거 같다.

귀를 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면 당연히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할 수도 있게 되고
타인에 대해 자발적으로 순수한 감정도 일어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교양인의 반의어는 야만인이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멸시하고 매사 전투로 여기고 무조건 승부에서 이겨야 되는 인간이다.
아무리 당대의 석학이고 일세를 풍미한 위인일 지라도
귀를 열지 못하고 누구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르면 야만인이다.

아들러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고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한 말은
바로 껍데기는 학자니, 교수니, 언론인이니, 법조인이니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하는 짓거리와는 전혀 다르게 입만 그럴싸하게 나불거리는 데도
이 껍데기에 현혹되어 번듯하게 교양인처럼 보이는 부류 중에
한 겹을 벗기면 바로 야만인인 인간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인 거도
일조를 하기 때문은 아닐까.
2016.7.09.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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