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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10-15 17:58:47, Hit : 2373, Vote : 523
  토요 살롱 192회 " 만 남 "

벌써 10월 중순, 계절이 어김없이 바뀌어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는 만큼
잔디와 활엽수의 해 뜨기 전 잠깐이지만 탱탱하게 방울진 새벽이슬을 머금은 채
종일 촉촉하게 빛나던 윤기가 사라지고
그 싱그럽던 초록 푸른색이 언 듯 옅은 연두색으로 바래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덩달아 예고 없이 불쑥 문지방을 넘나드는 불청객,
미세먼지가 청명한 하늘을 덮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때문에 어제 오늘, 이틀 연속으로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고
내일 비가 올 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먼지가 범벅이 된 비라고 한다.

“ 왠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줄 알았어.”

땡 중 순업이 혼사 날, 상규가 싱글거리며 실없이 건네는 첫 인사다.
상규가 기우 회와 구우 회 외의 동기들 모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나와는 이렇게 때가 겹치는 경우에 한해 일 년에 한두 번 어쩌다 조우할까 말까다.

상규는 바둑 실력이 강 일급 수준의 고수라 기우 회의 고정 멤버다.

순업이, 정운이, 경영이, 재철이, 자윤이, 윤재, 세원이, LA의 광희, 상규,
이렇게 아홉 명이 exclusive 멤버인 구우 회는 일찌감치 고등학교 시절에 결성된 모임인데
정기 모임과는 별도로 LA에서 광희가 대한항공 OB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이용해
친구들 보고 싶다며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그 날 저녁 다들 모여 술 한 잔 같이 하고
다음날 바로 또 다시 11시간 비행기 타고 돌아갈 정도로 50년 가까이 전 멤버가 큰 탈 없이
여전히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러는 게 아니라 일 년에도 몇 차례씩 그렇게 광희가 다녀간다고 한다.

순업이를 통해 구우 회 멤버들 소식은 대충 듣고 있었지만 순업이 혼사 덕분에
20여년 만에 경영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재철이도 수십 년 만에 만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둘 다 각종 동기 회 모임이나 구우 회 멤버 이외의 동기들 경조사에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얼굴 한 번 보기가 희귀한 친구들이다.

경영이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었고 오히려 풍채가 더 좋아지고
전체적으로 더 여유가 있어 보이고 느긋해진 모습이었다.

경영이가 나를 보더니 먼저 다가왔다.

“ 오랜만이다.”

“ 그래 경영아, 잘 지냈는가 보구나. 예전보다 훨씬 보기가 좋다.
  소주 매일 한두 병씩 마시다시피 했는데 요즘도 그렇게 마셔? “

“그럼, 요즘은 더해.”

“ 야, 재철아, 정말 오랜만이구나. 훨씬 좋아 보인다. 관리 잘 했구나.”

“ 그래 보여? 딸 치울 때 어쩌다가 건강 검진이 몇 달 늦었지만 그 전 해 받을 때
  아무 이상이 없어 뭐 별일 없을 거니 했는데 암이라는 거야.
  그것도 상당히 진행이 됐다는 거야.“

“ 순업이한테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고 걱정했었지.
  다행히 경과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런데 지금이 너 옛날 젊었을 때보다 더 좋아 보여.
  주름도 없고 피부도 깨끗하고 배도 하나도 안 나오고 체격도 적당한데다 탄탄해 보이고.
  누가 너보고 60대 라고 하겠냐. 수술하고 정말 관리 열심히 했구나. “

재철이는 비슷한 병고를 치르고 재활 중이거나 재활을 마친 주변의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말짱한 모습이었다.

눈웃음까지 치며 실실 웃고 있는 상규에게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 넌 아니야?”

“ 난 절대 아니지, 난 아직 총각이야.”

그러는 상규도 잘 깎아 다듬은 듯이 조각 형 얼굴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항상 싱글싱글 미소를 띠고 그 시절 대부분이 자고나면 툭툭 튀어나오는 여드름이
제1 고민거리였고 이의 퇴치를 위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지만
유난히 맑고 깨끗한 피부에 티 하나 없던 홍안의 미소년 모습은 간 데 없어졌다.

눈을 치켜뜨면 반듯하던 넓은 이마에 굵은 줄이 몇 개 들어날 뿐 아니라
웃으면 얼굴 양 옆으로 길게 주름이 깊게 패고
이제는 더 이상 젊고 깨끗한 피부도 아니고
구부정한 어깨에 듬성듬성 머리털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흰머리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오직 세치 혓바닥만 여전하다.

지금은 오다가다 동기들 무슨 때에나 가끔씩 보지만 상규와는 잊지 못 할 추억이 좀 있다.
우선 고3때 상규와 같은 반이었다.
상규는 잘 생기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학년 초에는 서울 법대나 상대 진학이 확실시 될 정도의 성적이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먼 쪽 줄 제일 뒷자리에 나와 갑호가 짝으로 앉았고
그 바로 앞자리에 상규가 앉아 있었다.
상규도 키가 우리와 비슷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상규가 우리 앞자리라
우리가 종일 상규 뒤통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갑호와 나는 수업시간에 수업보다는 선생님들 눈치 봐가며 많은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 내용이 학교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이었는데
학교생활과 공부에만 충실했던 모범생 상규에게는 신기하고 흥미롭고
새로운 별세계의 이야기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앞자리에 앉아 바로 뒷자리에서 수근 대는 이야기를 귀를 세우고 들으려고 하다 보니
당연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게 상규가 법 상대를 가지 못하고 서울 사대 영문과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다행히 서울 사대 전체 수석 입학으로 다소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로인해 항상 상규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상규가 사울 사대를 졸업하던 해인 1976년 봄,
전라북도 인지 충청도 어디인지 시골 깡 촌에 자원해 그 읍에 하나 뿐인 여자 실업 고교
영어선생으로 부임했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어렴풋이 들은 외에
졸업 후 상규와 만나기는커녕 일체 연락이 두절되어 있다가
1979년 봄에 느닷없이 상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주) 선경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한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자
승헌이, 순업이와 같이 다녔던 제세 산업의 최후 경매 대리인으로서 많은 아쉬움과
회사와 함께 품었던 꿈과 회한을 뒤로한 채 혼자서 마지막까지 회사 자산을 정리하고
선경으로 옮긴 지 몇 달 되지 않은 때였다.

여직원이 ‘전화 받으세요.’ 하기에 무심결에 수회기를 들었더니,

“ 야, 송 종호, 오랜만이다. 나 상규야, 한 상규.”

“ 아니 너, 시골 어디 여자 고등학교에서 영어선생 한다고 들었는데 어쩐 일이야?
  서울 왔어? “

“ 영어 선생 때려 치고 서울 와 취직했어.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기로 하고 너 지금 당장 여기로 올 수 있니? “

“ 왜? 무슨 급한 일 있어?”

“ 사장님이 해외로부터 오퍼 받은 무역을 포함해 투자 사업 관련 자료를 나한테 던져주며
  빨리 알아보고  우리 측 파트너를 찾으라고 하는 데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순업이한테 우리 동기 중에 어디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친구가 없냐고 물었더니
  바로 너 전화번호를 알려주잖아. “

상규는 막 발족한 석유 공사의 공채 1기로 입사하자마자 사장 비서실장으로 발령났다고 했다.
서울 대를 나오고 영어를 전공한 덕분이 아닌가 하는 게 상규의 추측이었다.
당시 막강한 실세였던 김 동 진 전임 외무장관이 석유 공사 초대 사장이었다.

“ 내가 시외버스 타고 학교에 부임하러 읍에 도착하는 날,
  읍장을 비롯해 그 읍의 모든 유지들이 마중 나왔어.
  심지어 환영 플래카드까지 걸려 있는 데 서울 대 출신 선생이 처음이라는 거야.
  쑥스러워 죽는 줄 알았어.
  불과 스물네 살밖에 안 된 애송이인데 아버지뻘 도 더 되는 어른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얼마나 정중히 대해 주는지 당장 도망가고 싶더라니까.“

“ 나는 니가 깡 촌에 자원했다기에 ‘역시 상규답다. 진정한 사표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고 내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 같아 부럽기도 했었는데
  왜 그만 둔 거야? “

“ 고등학생 쯤 되니까 계집애들이 감당이 안 돼.
  나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되잖아? 너무 노골적이야.
  도저히 선생으로서의 위엄을 세울 수가 없더라.
  하숙집에도 수시로 들락 거려 혹시 오해 받을까봐 낮에는 문을 활짝 열어 둬야 되고
  밤에는 문 걸이 꼭 잠그고 자야 되고.
  그런데도 가끔 오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곤 한다니까.
  학생들 뿐 아니라 동네 처녀들도 있잖아. 사방이 지뢰밭이야.
  뿐만 아니야.
  여름에 수업 시간에 치마를 걷고 다리를 쩍 벌리고 나를 똑 바로 쳐다보고 있다니까?
  눈 둘 데가 없어 창밖의 먼 산 쳐다보며 수업을 해야 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도 젊은 혈기에 더 있다가는 뭔 일 치를지 모르겠더라니까.“

예나 지금이나 시골이던 서울이던 서울 대 출신에 그것도 수석에 다듬은 옥 같이 잘 생기고
훤칠한 키에 스물 댓 살밖에 안 된 총각 선생이 이성과의 교제가 아직은 미숙한데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 찬 한참 피어나는 열일곱 여덟, 아홉 소녀들에게는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꿈속에서나 그리던 최고 학벌 수재에 백마 탄 왕자님 뺨치게 잘 생긴 영어 선생님을
매일 만날 수 있었던 시골 처녀들의 뛰는 가슴이 무사했을 수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당시 상규는 지뢰밭이 아니라 꽃밭 속에,
그것도 금방 피어나는, 금방 각양각색의 소담스런 꽃봉오리가 툭툭 터질 거 같은
너무나 싱싱한 오색 향기 만발한 꽃밭에 둘러싸여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쯤은 그 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라 던 지 뭔가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
또는 책임져야 할 누군가를 팽겨 치고 도망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
혹은 뭔가 잃어버린 거 같은 상실감이나 허전함 같은 게 좀 남아 있지 않을까.
다음에 상규를 만나면, 느물거리며 제대로 대답할 리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솔직한 심정을 한번 물어봐야겠다.

상규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이런 옛날 생각을 떠 올리며 반가운 마음에
바로 옛날로 돌아가 농담을 마음껏 주고받으며 웃고 즐거워한다.
언제나 우연한 만남이지만 즐거운 만남이다.
우연히 라도 절대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인간들도 있고
우연히 만나더라도 말 한마디 인사 나누기조차 꺼려지는 인간들도 있겠지만
어쩌다 상규를 만나면 너무 반갑고 즐겁다.
이번에 오랜만에 만난 경영이와 재철이도 상호 안부 외에
비록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해 아쉬웠지만 너무 반가웠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경우는 예기된 게 아니라서 빈도가 아주 드물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 살아생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외에 별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리 없고 그러고 헤어지면
마음속에 기분 좋은 여운이야 길게 남아 있겠지만 그러고는 다시 잊어지고 만다.

그런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보다 약속을 정해 만나는 경우가 당연히 훨씬 많다.
이런 만남에는 인위적으로 만든 모임 같은 곳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비교적 정례적으로 만나는 집단적 만남이 있고 개별적으로 수시로 약속을 정해 만나는
개별적 만남이 있다.

집단적 만남이던 개별적 만남이던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선행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즉,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지, 내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지, 또는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지,
이런 세 가지 조건에 한 가지라도 어느 정도 부합이 되던 가,
아니면 그 반대로 내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지, 내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지,
또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중에 한 가지라도 경우에 들어야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동기사이라도 오다가다 만나서 ‘언제 한번 만나서 소주 한잔 하자.’
그런다고 만나지지 않고 무슨 일로 전화 통화 하다가 ‘만난 지 오래됐는데 얼굴 한번 보자.’
라고 한다고 얼굴 보여 지지 않는다.

그립고 소식이 궁금하다고 해서 만나지지도 않는다.

얼마 전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동기와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다.
식사 도중 그 친구가 다른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 종호야, 걔 최근에 만나봤니?”

“ 아니 왜, 무슨 일 있어? 나도 본지 오래된 거 같은데?”

“ 아니 이 자식 말이야, 전화 한 통 없고 말이야.”

궁금하고 보고 싶으면 자기가 전화를 하면 될 텐데 자기한테 먼저 전화 안 한다 고 성질내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있다.
그것도 나하고 관계보다 자기들 사이가 훨씬 가깝고 친한데도 말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는 단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자기가 연락을 안 하듯이
상대방도 연락을 안 한다.
그걸 기대하면 아직도 어린아이 치기 같이 쇠푼어치도 안 되는 교만에 빠져
자기 주제를 모르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거다.
서로 연락을 안 하니 만나지지도 않는다.

얼마 전 우리 동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친구의 이야기다.

“ 요즘은 말이야, 전화 오는 놈도 없어. 술 사달라는 놈도 없고 밥 먹자는 놈도 없어.”

당연하다. 술도 별 내키지 않게 되었고 할 수 없는 술자리에서도 눈치 보며 깨작거려야 되고
음식도 기름진 거 피하고 푸성귀 위주로 가려서 먹어야 된다.
그런 이유로 돈 좀 있다는 친구 뜯어 먹을 일이 없어졌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업할 거라고 돈 꾸러 다니는 경우도 거의 사라졌다.
그러니 전화기가 조용할 수밖에.

그리고 만나면 앞에서 이야기 한 선행 조건, 내가 즐겁든지, 위로를 받든지, 도움을 받든지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상대방이 그렇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다 한 번은 그럴 수 있겠지만 항상 상대방에게 그러라고 요구하고 준비시킬 수는 없다.

물론 자기가 역으로 언제나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려고 하고 위로해 주려고 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면 상대방의 태도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만남이 될 수 있고
아름다운 만남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혼자서 일방적으로 그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더구나 60도 훨씬 넘은 이 나이에?
한 번 삐끗하면 그걸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개별적인 만남이 오래 지속되기가 어려운 거다.

우리 동기 회 안에 여러 소집단 모임이 있다.
구우 회나 용자 들 모임인 원지 회 같이 수 십 년 쌓아 온 우정의 모임도 있지만
졸업 후 직업에 따라, 취미에 따라, 거주지에 따라 그에 부합한 동기들이 회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모이는 모임도 있고
또는 평가옥 모임 같이 아무 구애도 연고도 조직도 정해진 룰도 없이
그냥 그야말로 만나서 반가워하고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집시 같은 자유로운 모임도 있다.

이와 같은 집단 모임에는 이거 저거 따질 거 없이 그냥 그 때 시간 되면 가서 얼굴 보고
소주 한잔 하고 마음대로 떠들다 오면 된다. 훨씬 가볍다.
하지만 마음 편한 소중한 모임이다.
평가옥 모임에서 상명 대 이 명식 교수가 늘 하는 말이 있다.

“ 마지막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이 모임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때문에 개별적인 만남 보다 훨씬 가볍고 훨씬 편한 이런 소규모 집단 만남이
마지막까지 우리 동기회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자기가 속한 모임을 잘 가꾸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 토요일은 장인 어른 15주기라 장모님 댁에 기제사 지내러 가야 해 토요 살롱 쉰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2016.10.15.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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