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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11-05 18:54:01, Hit : 2275, Vote : 541
  토요 살롱 194회 " 情 "

파커를 꺼내고 운동복도 겨울용으로 바꿔 입고 나가고
10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 월요일에 기온이 깜짝 영하도 떨어지더니
영하의 날씨는 그다음날도 이어졌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라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도 더 되는 거 같았다.
바닥이 차갑고 발이 시려 잠시나마 난방용 보일러를 틀고 부산을 떨어야 됐다.
‘아무리 영하지만 아직은 10월인데’ 하면서 내의를 입지 않고 장갑을 챙기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였다.
공원에 운동 객들도 확 줄고 에어로빅 아줌마들도 띄엄띄엄 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차림에 빠른 비트의 음악에 따라 흔들고는 있지만
옷차림 때문인지 뭔가 둔해 보이고 폼들이 엉성했다.

그러나 가을비 한번 올 때마다 옷을 한 겹씩 더 껴입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수요일 저녁부터
목요일 이른 새벽까지 비가 좀 내린 후 날이 확 풀려 다시 전형적인 가을 날로 되돌아왔다.
이렇게 미리 추위를 맛 본 게 본격적인 추위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고도
생각해 본다.

“ 동훈아, 나야, 송 종호, 축하한다.
  그런데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서도 할 건 다 하네?
  3년 전에 딸 시집보내고 손녀딸 얻고 이번에는 아들 장가보내고.
  많은 동기들이 애들이 서른이 훨씬 넘도록 시집 장가 안 가고 버텨 다들 속 태우고 있는데
  너는 종일 휠체어에 앉아 싱글거리고만 있는데도 할 건 다 하고 있으니
  얼마나 부러워하겠냐. 약 오를 거야.
  더구나 애들 다 잘 컸잖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둘 다 명문대 나와서 소위 일류 직장에 다니고.
  특히 영석이는 우리 모교 성대 경영학과 졸업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냐.
  에스케이 네트웍스에 다니니까 나한테는 직장까지 후배야.
  딸애도 에스케이 계열사에 다닌다고 했지? “

동훈이는 과거의 기억력이 점점 사라져 식구 외에 알아보는 사람도 몇 되지 않고
혼자서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말은커녕 아무 소리도 못 내지만
알아듣기는 하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지 힘주어 꽉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이빨을 다 드러내고 웃느라 겨우 실눈을 하고 거의 감긴 눈 가장자리에는 눈물까지 베이며
양 입 꼬리가 귀에 붙도록 입이 찢어지라고 웃는다.
옆에 있던 부인도 덩달아 환하게 미소를 지우며,

“ 그렇기도 하지만 친구가 오니까 반가워서 그러는 거지요 뭐.”

“ 동훈이는 여전하네요. 식장에는 못 가겠지요?

“ 지난 번 딸애 때도 못 갔어요. 장시간 휠체어에 앉아있기도 힘들고
  좋은 자리인데 축하해주러 오신 하객 분들이 보기도 그렇고 마음에 부담을 드릴 거 같고. “

순간 부인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눈가에 슬쩍 물기가 비친다.

“예, 그렇겠네요. 미국에 계신 형님네 가족은 모두 오신답니까?”

“지난 번 딸 애 혼사에는 가족들이 다 오셨는데 이 번에는 형님만 오신 다네요.
다들 바쁜가 봐요. 형님도 토요일 식 참석하신 후 미국 일이 바빠
다음날인 일요일 바로 돌아가신대요. “

“곧 은퇴하실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48년 생 이시니까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병원에 일이 많은가 봐요.”

동훈이 형님은 뉴욕의 대형병원의 의사이시다.

“ 동기회에 영석이 결혼 일정 알렸습니까?”

“ 아직요. 그런데 알려야 될지 어떨지, 제가 동기 분들 길흉사에 가보지 못하는데
  알린다는 게 좀. 괜히 부담 드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알리지 말아야 할까 봐요. “

“동훈이가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길흉사에 다녀요? 다들 이해합니다.
그리고 동기회에는 알리도록 합시다. 당연히 알려야지요.
평소에 동훈이를 찾아보지 못해 마음에 두고 있는 친구들 중 애 들 혼사 에는 꼭 가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텐데 몰라서 못 가봤다고 하면 얼마나 서운해 하고
마음도 무겁겠습니까. 내가 대신 총무한테 부탁 할게요. “

“그럴까요?  애들 아빠 쓰러지고 처음에는 많이들 왔었거든요.
뭐 별 이야기들을 다 해 줬어요. 애들 학비를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한 사람도 있었고.
이 사람이 그렇게 아끼고 돌봐주던 부하직원들도 그렇고.
좀 지나자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요. 전화 한 통도 없고.
처음 얼마간은 원망도 하고 괘씸하게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당연히 그럴 거니 해요.
옛말에도 있잖아요? 내가 잘 되어야지 아니면 바로 등 돌리잖아요? “  

부인이 이제는 아주 편하게 대해 준다.
전화도 반갑게 받고 찾아가면 활짝 웃으며 과일이며 커피며 손수 챙겨 나오고.

대하는 목소리가 우선 밝고 경쾌하고  
남편 친구라 차려야 하는 격의도 많이 사라졌다.
따라서 나도 아주 편해졌다.
뜸해지면 궁금해지고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전화하여 안부를 물으면 날아오를 듯이 짱짱한 목소리로 반겨주고.
그래서 먼 길이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찾아가게 되고.

“ 결혼식에 오실 거지요? 참 청첩장 드려야지.”

“그럼요. 만사 제치고 가야지요.
제가 좀 일찍 가서 몇 명이나 올지 모르지만 동기들 오면 안내도하고
안면이 없는 동기들이라도 오면 소개도 시켜드리고 해야지요.”

이렇게 동훈 네와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길흉사에 참석하고
만나면 반가워하고 안 보면 궁금해 하면서 마음의 간격이 좁혀지고 스스럼이 없어지고 있다.

갑자기 동기들 길흉사에 얼굴이 자주 비치고 이런 저런 모임에 잘 나타나는 친구들이 있어
처음에는 ‘어 저 친구, 마음을 바꿔 먹었나? 역시 동기들 모임이 그래도 편한가 보지? ’
하고 오해를 했었다.
그런데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총무로부터 그 친구 자녀 혼사 공지가 날아오고
혼사를 마친 후 그 친구의 출현 빈도는 다시 본래로 돌아가는 경우를 보고
축하해주러 가거나 자리를 빛내주러 가기 보다는 자기 앞 일을 대비하러 다녔지 않나 싶어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곤 했었고 그런 후에는 어쩌다 그런 친구들을 마주치게 되더라도
반가운 마음이 들기는커녕 인사도 상대방이 어떻게 대하던 간에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나누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아직도 현역인 동기들 길흉사에 가 보면
평소에 동기들 모임에 잘 나오지 않아 얼굴 보기 힘든 동기들도 보이고
‘어 저 친구도 친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친구들도 나타나
줄을 서 축하를 하거나 조문을 하고 있다.
한참 경제활동을 할 때야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하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다 내려놓을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허연 머리를 해 가지고
자신도 뭐 그렇게 달갑거나 자연스럽지 않은지 괜히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직도 그러고 있는 꼴을 보면 역겹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문전성시를 이루는데다
축의금이나 조의금 몇 푼이 당사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동기 총회 때보다 더 많은 동기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예식장이던 장례식 장이던 조촐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물론 동기들 모습도 뜸하다. 당사자와 아주 친했던 몇 명 정도다.
미어터지는 데 가서 줄 서서 간신히 눈도장이라도 찍으려고 기웃거리기 보다는
가능하면 이런 식장에 보다 많이 찾아가 진정으로 축하도 해 주고 위로도 해주어
상주든 혼주든 체면도 좀 살려주고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보탬도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다들 많은 사적 공적 모임이 있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나이에 우리 중에 가족들을 제외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궁금하고 그립고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먼저 연락하여 안부를 묻고 보고 싶으니 만나자고 약속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정이란 서로 간에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생기는 친근감이자
보다 발전하여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걸 말한다.
“ 나, 그 사람하고 친해.” 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지만 그런 말을 할 때는
그 사람과 친근해져 정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이 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과 과거, 현재의 환경을 알고
이해하고 그에 따른 감정이 생겨야 한다.
술 몇 번 같이 마셨다고 아니면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정이 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집안 내력과 주요 경력 정도를 달달 외운다고 그런 껍데기만 보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함부로 친하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친하다면 이름만 들어도 불현 듯 보고 싶다든지 궁금하다든지 뭔가 애틋한 감정이
자발적으로 솟아나야 된다.

그런 면에서 애완동물과도 정이란 표현을 쓸 수가 있을 거 같다.

그러나 가족 간에 본능적으로 타고난 감정을 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생기는 친근감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토요살롱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렇게 동성 간에 생기는 친근감이 우정이고
이성 간에 생기는 친근감이 애정이다.
그러니까 우리 친구 간에는 당연히 우정이다.
그럼 이성 간에는 우정이란 게 불가능 한 걸까?
글쎄, 그건 전문가가 동원되어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거 같은데
나의 경험으로 본다면 젊을 때는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우리 나이쯤에는 같은 나이이거나 한두 살 차이 정도의 비슷한 년 배라면
거의 같은 배경의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공통의 이야기 거리가 많은 대신에
서로 논쟁으로 인해 부딪칠 일도 비교적 적고 서로 보완할 점도 많고 하여
이성 간의 우정도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예전에는 어땠던 간에 지금 현재 누구에게 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를 가늠하려면
그냥 편하게 나오는 대로 ‘우리 친구 사이 아이가.’ 라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선은 보고 싶고 궁금한 마음이 드는 지 어떤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상당한 세월이 지났다면 처음부터 아예 정주고 받은 사이가 아니거나
정 떨어진 지 오래 된 거다.
‘ 지가 연락 안하는 데 내가 뭐.’ 정도라면 만나면 반갑기는 할지 모르지만
구태여 찾아다니며 보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정이 오가는 사이가 아니다.

‘ 걔 요새 뭐 하냐?’  
‘ 왜?’
‘궁금해서.’
이건 궁금한 게 아니다.
정말 궁금하면 제3자에게 물어볼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전화해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전화해서 어쩌고저쩌고 자기 입으로 궁금한 거 묻기가 어색하고 귀찮은 거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먼저 전화하기가 싫은 거다.
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이다.

1979년 첫 해외출장을 떠나 3개월 동안 중동, 아프리카를 거쳐 나이로비에서 돌아오는 길에
방콕에 며칠 들린 후 마지막 출장지였던 싱가포르에서 만나
지금까지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친구를 얼마 전 후배 한 명과 함께 셋이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나이는 같지만 이 친구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 신동으로 소문나 여섯 살에 입학하는 바람에
학교는 나보다 2년 위였다.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는데 다행히 다니던 학교가 나하고 겹치지 않아
선배 대접을 해 줘야 하는 경우는 겨우 모면하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우리 2,3년 선배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나보다 선경 입사도 빨라서 회사 서열로는 위였지만 지사에 파견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지 사정도 낯선데다 지사 내에서 나이도 제일 어렸고 말단 졸병이어서
지사장과 상급 선배들 눈치 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종일 귀를 쫑긋 세우고
차렷 자세로 시키는 일 외에 꼼작도 못하고 주눅 들어 있을 때였다.

3박 4일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도착해 사전에 미리 모든 약속을 해 둔데다 일정이 순조로워
다음 날 일을 다 마칠 수 있어 그 다음 날은 하루가 완전히 프리가 되었다.
그러나 지사가 있는 지역에 출장을 가면 지사의 관리를 받아야 돼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지사장이 자기는 바쁜데다 나이도 한참 연장이고 레벨도 안 맞는다며
그 친구를 불러 오늘 할 일도 없으니 송 종호 데리고 나가 오늘 사무실에 안 들어와도 되니까
종일 싱가포르 관광 가이드나 해 주라고 했다.
그 때가 아침 9시 반쯤이었다.

초면인데다 전날 인사는 나눴지만 아직 서먹서먹해 쭐래쭐래 뒤따라 나왔더니
향한 곳이 근처 공원이었다.
그리고 바로 매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 하나를 건네주며,

“ 우리 동갑인데 서로 불편하게 말 높이지 말고 놓고 친구하기로 하자.
  너 이야기 많이 들었어? 말술이라며? “

둘 다 총각인데다 죽이 맞고 마셔보니 술 실력도 비슷해
그 순간부터 온 싱가포르의 술집과 음식점을 전전하며 온갖 종류의 술을 다 마시고
밤이 늦어 문을 연 곳이 없어지자 내가 묵던 호텔로 돌아와
방에 비치된 미니바의 모든 술을 다 비우고 룸서비스로 맥주를 시켜 마시다보니
빈병이 방 가장자리를 다 돌아가고 있어 몇 시나 됐을까 하고 커튼을 열어보자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깜짝 놀라 이빨도 못 닦고 입던 옷 그대로 부랴부랴 짐 싸들고 헐레벌떡 달려가서야
겨우 서울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는 이미 클로즈를 하였고 항공사 직원이 비행기로 직접 연락을 하는 등
수선을 떨어야 했다.

그 이후 그 친구와는 급속히 친해졌다.
내가 선경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이후 나는 선경을 일찍 나왔지만 이 친구는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쿠알라룸푸르, 마닐라,
홍콩, 타이베이, 상해를 거치면서 도합 23년간 해외 지사 원 생활을 했다.

“ 요즘도 OB들 자주 만나?”

“ 그럼, 모임도 많고 길흉사도 많으니까 아무래도 자주 보게 되지.”

“만나서 뭐해? 맨 날 옛날이야기야?”

“ 그렇지 뭐, 얼굴이나 보는 건데 서로 자기 이야기하느라 안부 하나 묻는 사람도 없어.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너밖에 없어.”

이 친구는 30년이 넘도록 한 직장을 다니며 지사장도 하고 본부장도 하고 중역도 지내며
많은 동료들, 부하 직원들, 상사들과 매일 부대끼면서 밤늦도록 술자리도 자주 하며
희로애락을 나눴지만 정작 정을 주고받고 정든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성품이 별난 거도 아니다.
술 잘 마시고 친화력이 뛰어나고 포용력도 있고 정도 많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도 감퇴하고 계산도 잘 안 되고 체력도 떨어지지만
‘정’ 이란 감정도 퇴화한다. 뭐가 감동이 잘 안 된다.
입에 발린 소리지 진심으로 칭찬도 잘 못 하고 누구를 진심으로 위로도 잘 못 한다.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니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우리 동기 중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 종호야, 넌 울 때가 있니? 나는 눈물이 사라졌어.”

깜짝 놀라,
“안구 건조 증 아니야?” 했더니,

“ 그게 아니라 뭐가 그렇게 눈물이 나올 만큼 슬프다거나 그런 감정이 안 생겨.”

감정이 메말랐으니 눈물이 나올 리 없다.
정이란 게 있을 리 없는 매정하고 비정한 인간이 된 거다.
당연히 친구를 만들 수 없고 기존의 친구들과도 감흥이 없으니 관계가 소원해 진다.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노화현상 중 하나라고 하기엔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든다,
2016.11.05.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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