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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11-19 20:44:45, Hit : 2368, Vote : 546
  토요 살롱 196회 " 初 心 "

해가 많이 짧아졌다.
아침 7시가 되어도 아직도 꺼지 않은 공원 가로등 넘어 어둠이 채 가시지 않고
동녘에 희끄리무리하게나마 비로소 조금씩 밝아 온다.
동향이라 오후 5시만 되어도 어둑어둑해져 거실에 전등을 키게 된다.

미세먼지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 들어 다행히 저녁 약속이 뜸해 평소 운동량은 채울 수 있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이틀을 운동을 쉬어야 했다.
오늘 새벽에는 간밤에 잠깐 흩뿌린 가랑비 탓인지 미세먼지가 옅어져
틈새를 이용하여 부리나케 운동을 마칠 수 있었지만
날이 밝으며 농도가 또 나쁨 수준으로 높아져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하늘이 뿌옇다.

얼마 전 저녁을 같이 한 고대 의대 박 영철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각종 암 발생 중 폐암 발병 율이 통계시작 이후 부동의 일위를 지키던
위암 발병 율을 몇 년 전부터 앞서 일위를 차지하기 시작하더니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박 영철 교수와 지난해부터 날 잡아 소주 한잔 하자고 벼렸으나
영철이가 볼리비아에 수시로 출장을 가고 나도 미국, 중국을 들락거리다보니까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딱히 급한 일도 아니라  ‘볼리비아 다녀와서’ 미국 다녀와서‘ 하면서
차일피일 어영버영 미루는 사이 후딱 일 년이 지나버렸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초에 통화를 하며 추석 지나 꼭 날 잡자고 하고 영식이에게도
그 때 같이하자고 미리 이야기를 해 둔 데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동기 길 흉사에서 우연히 만난 태수가
‘영철이하고 소래에서 만날 때 꼭 나도 불러 줘.’

몇 년 전부터 꽤 정기적으로 영철이와 만나 소주 한잔 하는 곳은
언제나 소래 포구 ‘미순 네’ 라는 자연산 전문 횟집이다.
전철 수인선이 개통된 후 영철이가 근무하는 고대 안산병원에서 4호선타고
종점인 오이도 역에서 수인선으로 갈아타면 인천 방향으로 3번째 정차역이 소래포구역이라
영철이가 오기 편하고 내가 인천에서 가는 시간과 비슷하여 서로 중간 지점쯤 되기 때문이다.
영철이와 만날 때는 보통 안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형곤이가 동행하고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다른 동기들이 두어 명 더 합석한다.
지난 해 이맘때쯤 태수가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또 오고 싶어 하는 거 보니까
단지 회 맛 때문은 아닐 거고 분위기가 괜찮았던가 보다.

메뉴는 제 철에 맞는 자연산 회와 생선 구이, 매운탕인데
보통 일반 횟집에서 잡다하게 여러 종류 깔아 놓는 소위 쓰끼다시가 전혀 없고
손수 직접 담근 김치와 당근, 오이 뚝뚝 쓸어 담은 접시 하나,
상추와 깻잎 담은 큰 접시 , 마늘과 풋고추, 그리고 양념 된장뿐이다.
대신 자연산 회 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회 품질은 내가 소개해 준 모든 친지들이 최상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나중에 식사와 함께하는 매운탕과 오래 삭인 김장 김치도 일품이다.
영철이도 몇 년 전 처음 와본 후 매료되어 기회 있을 때마다
선후배 동료 의사들과 회식하러 온다고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중순 이른 아침에 영철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 종호, 너희 막내 말이야. 우리 병원에서 인턴 한 게 언제지?”

“그러니까 2014년이었지. 지지난 해 막내가 3학년 마치고 4학년 올라가기 전
여름방학 중이었던  6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두 달간이었지 아마?
그런데 그건 왜? “

“ 지금 이메일을 훑어보는 데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연구 기관인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에 재홍이가 보조 연구원으로 취업 apply 했는가 본데
  알고 있었어? 거기서 너 아들 여기서 인턴 하던 동안 reference 를 보내달라고 해서
  그거 써서 보내주려니까 기초적인 내용이 필요해서야. “

그래서 겸사겸사 날을 잡아 여느 때처럼 소래포구 미순 네에서 참돔과 아나고 자연산 회에
소주 한잔 하게 되었고 자리 깐 김에 형곤이, 태수 영식이가 함께 합석했었다.

우리 한국인의 위암 발병 율이 높은 건 대충 그 원인이 알려져 있는 거 같다.
맵고 짜게 먹고 너무 빨리 먹고 폭음, 폭식을 자주 하는 등
주로 식 습관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폐암의 경우는 그렇게 확실한 이유가 아직은 애매모호한 모양이다.
영철이에 의하면 흡연이 폐암 발병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지로는 다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 영향이 그렇게 압도적 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본인이 애연가이기 때문에 약간은 강변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실지로 우리나라에서
폐암 발병 율이 증가하는 만큼 흡연가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흡연율은 줄고 있고
담배와 전혀 담쌓고 지내는 여성 발병 율이 남성 발병 율 못지않게 늘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
담배 탓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 는 거다.
그러고 보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인들, 이집트, 사우디, 이란 등 아랍인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슬라브계, 멕시코 등 남미 인들은 우리 보다 엄청 더 피워 댄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매일 마시고 있는 공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작금의 미세 먼지, 이게 혹시 주범이 아닐까.
어쨌든 미세먼지가 우리 생활과 건강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고
문제는 앞으로 더 악화될 거라는 거고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기독교의 역사적 사실을 접하다 보면 항상 궁금하지만 풀 수 없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의도적으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거나 하거나 하려는 거도 아니고
나 혼자만 마음속으로 의아해 했지 목사님이나 종교 학자 같은 전문가에게 물어보거나
일부러 시간 내어 관련 서적을 찾아 뒤지거나 할 만큼 꼭 밝혀내고 싶은 절박함도 없었다.

관련된 내용을 어디선가 접할 때에만 상기 되는 그냥 막연히 품은 의문이었고
옛날 중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로마의 역사 등 여러 잡동사니 서양 소설과 역사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까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 관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중첩해서 접하게 되어 나도 모르게 어느 사이 생긴 의문이었다.

기원 313년 당시 로마의 절대 권력자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실지로는 비교적 핍박받고 있던 기독교를 공인 화 해 주고
각 지역 총독들에게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토록 하고
12년 후인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를 소집하여 예수를 신성으로 보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두 파로 나뉘어 있던 기독교 교리를 신성을 부정하던 교파를 이단으로 단죄함으로써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통일케 하고 기독교를 실질적인 로마의 국교로 선포할 때까지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이미 터를 잡고 있던 기존의 여러 종교와 관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숨고 피해 다니며 힘들고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목숨을 걸고 전도를 하여
그 신도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밀라노 칙령에,
국가나 개인이 그동안 몰수한 교회 재산을 무상으로 되돌려주라는 내용도 있는 걸 보면
박해의 정도를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1992년부터 장장 15년에 걸쳐 쓴 대작 전 15권의 ‘로마인 이야기’에 의하면
‘기독교가 초창기에 로마 황제로부터 일방적인 박해를 받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다.’
라는 이야기는 여러 사실적인 기록을 들며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순교를 과대포장하기 위하여 훗날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실지로는 로마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고
기독교만 일방적으로 박해한 게 아니라 종교 간의 충돌로 인해 소란이 일어나자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양측 다 동등하게 처벌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도와 유태교도 들 사이의 다툼이 가장 치열해 투옥 되고 처벌 받은 숫자가
양 측 비슷하다는 걸 사료를 들어 입증 했다.
다툼이라기보다는 유태교도들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에는 자신들의 전래의 신인 제우스신이 있었고 이집트에서 온 태양신 ‘라’가 있었고
페르시아에서 건너 온 미트라교가 있었다. 모두 기독교보다 훨씬 오래 전에 생긴 종교들이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비록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태양신의 제사장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미트라교가 가장 성행해 특히 군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국민들은 로마 시민과 노예, 두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로마의 노예란 개념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로마 시민 이외, 즉 이방인은 모두 노예로 불렸다.
물론 이방인 중 정복지의 항복한 왕족 등은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노예라고 하지만 출 퇴근이 자유로울 수 있었고 계약에 의한 근로도 하지만
의사, 선생, 공무원 등 거의 모든 직종에 자유롭게 종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중앙 정부의 장관도 여럿 배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예 신분으로 절대 불가능하고 로마시민만으로 제한된 직종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군인과 변호사였다.
그러니까 로마시민으로만 구성된 군대에서 많은 군인들이 미트라교를 숭배했다고 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의 비호나 이웃의 온정은커녕 타 종교로부터 질시와 박해, 린치와 위협,
관으로부터 직접적인 박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냉대와 홀대 속에
그것도 창시자인 예수와 그의 수제자격인 바울의 사후
뚜렷한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리더십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을 이어가며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따지자면 위협적인 무력이나
강제할 수 있는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일개 풀뿌리 민초들인데
역사상 흔해빠진 반란이나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오히려 사방으로부터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어떻게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비폭력, 평화적으로 이교도들을 전도하고 개종시켜  
당시 최대, 최강 유일 제국인 로마 제국의 정체까지 흔들 정도가 되었을까.
이게 내가 품은 의문이었다.

당시에는 무신론자는 없었다고 보면 된다.
누구나 자기 신을 모시고 있었다.
자기가 믿고 있던 신을 부정해야 했다. 쉬운 일이었을까.
모든 지식과 정보가 오픈된 요즘 시대와 비교해 보면 된다.

교회적 답변은 ‘성령이 임 하사‘ 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이 한마디로 끝이다.
그러나 이런 신비적이고 영험적인 한마디 말로는 비기독교인 들이 수긍할 수 없다.

당시 최대 종파였던 미트라교도 인간의 행위를 불과 어둠,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지옥과 천당, 최후의 심판 등을 설교했다고 한다.
심지어 미트라의 출생 시 동방에서 세 박사가 오고 구유 통에서 태어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하니까
예수의 일대기와 거의 비슷한 스토리다.
그러니까 그런 거로는 어필이 되지 않았을 거다.

예수가 생전에 여러 기적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런 기적에 관한 한 당시의 타 종교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스토리는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 거로도 신변 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향후 예상 되는 엄청난 불이익과
위험을 무릅쓰고 기독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을 거다.

개종하면 반대급부로 뭐가 보상될 거라는 보장책도 특별한 게 아니었다.
기독교는 원래 현세에 복을 비는 기복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고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거 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기도 방법으로 예를 들어 준 주 기도문의 내용은
하나님에게 영광, 감사, 그리고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는 마음 이 세 가지다.

내세에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천당 간다는 보상은 이미 미트라교에도 있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25년에 니케아에 종교 회의를 소집하여
교리를 교통정리 할 때까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와
교회가 양분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의 신성이 기독교를 전파하고 확산하는 데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는 걸 입증한다.

10여 년 전 서빙고에 있는 온 누리 교회에서
4년 전에 작고하신 고 하 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히 접한 후
목사님의 설교는 어떤 목사님이더라도 경청해서 듣는다.

대학 시절에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니까 궁금해서 한번 완독했고
나중에는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 한 번 더 읽었고
그 다음에는 읽은 게 전혀 기억이 안 나 약이 올라 다시 한 번, 이렇게 세 번을 완독한 후
성경은 혼자 읽어서는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그래서 달달 욀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 같은 덜 떨어진 범인에게는 결코 그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아 깨달아지지는 안는 다는 걸
깨우치게 되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목사님의 설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다.

“ 크리스트 이후 300년 동안 기독교는 온갖 억압과 박해에도
  믿는 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만방으로 전파되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고
  교황을 세우고 교회 내 직제를 만들고 각종 교회의식을 통일하여 교회를 정비한 이후부터
  기독교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세계라고 알려진 거의 전 지역을 정복한 로마의 국민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니 전도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제가 종이 아니라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교회 내 계급이 생기고 권력과 부, 욕정에 대한 탐욕으로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 반대의 길로 접어든 겁니다. “

이 설교를 들으며 답을 얻었다.
기독교가 본래의 교리를 벗어나 세속화 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기독교가 부흥할 때는 그 반대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초창기 교인들은 각 공동체 단위로 공동생활을 하며 재산을 공유하고 사리사욕 같은
세속적인 일에 초월하여 오로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전파하는 데만 힘썼다.

‘탈 세속’ 과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라는 예수의 가르침,
이게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요 무적의 무기가 되어 박해하는 권력과 반대 세력에
맨몸으로 대항하며 이교도를 전도하고 개종시킬 수 있었던 거다.

“ 우리는 다시 초기 교회가 하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음 주 토요일은 동훈이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해 토요살롱 쉰다.
이 점 미리 양해를 구하며,
2016.11.19. 송 종 호.




토요 살롱 197회 " 첫 눈 "
토요 살롱 195회 " 인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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