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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12-17 20:39:12, Hit : 2278, Vote : 568
  토요 살롱 199회 " 變 心 "

지난 주 토요 살롱 198회를 하루 늦춰 가까스로 몇 자 끼적거려 올린 후
용혁이가 ‘드디어 200회가 눈앞이네. 금년에 200회로 마무리 하겠구나.’ 하며
지가 먼저 감회에 젖은 메시지를 단체 카카오톡 창에 올렸다.
잇따라 여러 친구들의 축하 문자가 올라오고
심지어 수영이는 200회 축하 celebration을 열자고도 하고
미국 산호세의 재효는 뚱딴지같이 언제 토요 살롱이 책으로 출간되느냐고도 물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었으면 200회도 가능했겠지만
금년에는 199회인 이번회로 마무리 지을까 한다.
다음 주 금요일인 23일 미국으로 출국하니까 더 이상 쓸 시간이 없다.
제목은 준비해뒀으니까 미리 써서 올리고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떠나기 전날까지 약속도 그렇고 할 일이 풀이다.

1월 중순 미국에서 돌아와 167회로 시작했으니까 금년에 33회를 써 올렸다.
성진이 말대로 끈질기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재미가 있든 없던 누가 읽든 않든 내용이 어쩌니 저쩌니 문 평을 하기 이전에
우선 양으로는 꽤 쓴 셈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성의를 다 했다거나 최선을 다 했다고 낯짝 두껍게 말 할 수는 없더라도
그렇더라도 최소한 게으름을 피우거나 얄팍한 핑계를 대지는 않은 거 같다.

매일 한 번씩은 스스로에게 다짐해 보는 말이,

‘어차피 얼마 안가 몸도 마음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될 거고
결국에는 썩어 문드러질 건데 지금 아낀다고 고대로 있는 거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이 쓴다고 빨리 닳는 거도 아니니까
이왕 못 쓰게 되는 거 쓸 수 있을 때 마음껏 써야 되는 거 아니야? ‘

초등학교 3학년이던 열 살 때
나와 두 번 띠 동갑으로 겨우 서른넷 나이였던 아버지를 여인 후
혼자 있을 땐 남몰래 눈물만 흘리고 말을 잃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오다가다 지나치는 동네 사람들이 ‘저 어린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누.’하고
측은해서 던지는 한마디 말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어 밖으로 나다니지도 않고
학교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몰려다니다가 해가 빠져서야 헤어지던 친구들도 멀리하고
멀리했다 기 보다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만나야 되던 그런 친구들이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깔보고 놀리는 거 같아 창피하고 주눅이 들어 피해 다니며
아침에 할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겨우 숟가락을 드는 시늉만 하고
밥그릇을 들고 쫒아 나오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내빼듯이 학교로 달려가지만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먼 산만 바라보다 그러고는 눈물만 훔치다
땡 소리와 함께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어린 동생과 보내는 사이 세월은 흘러 해를 넘기고
4학년으로 진학한지 얼마 안 되던 아직도 쌀쌀하던 이른 봄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엄청난 크기의 귀를 빳빳이 세운 누런 셰퍼드 한 마리가 혀를 길게 내밀고
네발로 좁은 공간을 불안하게 서성이며 철 고리 줄로 문기둥에 매여 있었다.
나를 보자 컹컹 짓기까지 했다.

“ 할매, 왠 개고? 안 무나. 무섭다.”

“응, 영천에 너거 아부지하고 잘 아는 사람이 종호 니 준다꼬 갖다 줬다 아이가.
아직도 너그들 안 이자뿌고 참 고마운 사람이재.
훈련을 잘 시켜 놔서 사람도 안 물고 얼매나 똑똑한지 사람 말도 다 알아듣는 다 카더라. “

내가 태어나서 얼마 안 돼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원래가 강원도 정선 분이셨고
외할머니는 경상북도 경주에서 한참 들어가는 산골이 고향이신데
정선으로 외할아버지에게 시집가서 오래 사셨는데도  
영천으로 피난 와 10여년 사시다보니까 순수한 고향 사투리를 되찾으셨다.

처음 며칠간은 집에 들어서면 내 키만 한 커다란 개가 컹컹 짖어대는 게 겁나고 무서웠지만
그게 반가워 짖는 거라는 걸 알고부터는 머리도 만지게 되고 몸을 쓰 담기도 하고
심지어 올라 타보기도 하며 둘 사이가 급속히 가까워지게 되었다.
개를 끌고 나가자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와, 그 개 크네, 도둑놈 잘 지키겠다.”

“ 종호야, 왠 개고? 니 꺼가? 누가 줬노? 그 놈 참 잘 생겼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한마디씩 툭 던지던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가 갑자기 사라지고
개가 주제가 되었다. 일순간의 분위기 반전이었다.
친구들도 부러워 죽으려고 했다.
개 끈을 잡고 달리는 내 뒤를 다 따라 달렸다.
아버지를 잃은 걸 보상할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새로운 자랑거리가 생겼다.
학교에 가서도 빨리 돌아 가 개하고 놀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계절이 바뀌고 나도 점차 활력을 되찾아 떨어졌던 학교 성적도 회복하게 되었고
할머니가 밥그릇 들고 뒤따라 다니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셰퍼드는 가족이었고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언젠가 부터는 밤에도 끈을 묶어두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할머니가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에 깨 보니 셰퍼드가 없었다.
바로 뛰어나가 사방을 아무리 다녀 봐도 종적이 보이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다 물어봐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는 잃어버린 개보다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겨우 벗어난 내가 더 걱정이 되어,

“아이고 종호야, 이 일을 우야노. 야매 개장수가 잡아갔는갑다.
우야문 좋노.“

하시며 마치 자기 잘못이라는 듯이 내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못하셨다.
집에서 학교까지가 2km는 족히 되는 거리였다.
그 길을 내내 울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다시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슬픔이 밀려왔다.
그런데 며칠 후,
시무룩하게 집으로 들어서는데 할머니가,

“ 종호야, 개 찾았단다. 찾은 기 아이라 개가 주인을 찾아간 기라.
  말 만 못하지 영물이재. 백리 길을 우에 알고 찾아 갔노.  얄궂제이.
  그래도 그렇지 가는데 며칠 걸렸으이까 가는 동안 얼매나 고생을 했겠노. “
  
개를 찾았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쁘고 소리를 크게 지르고 숨을 몰아 쉴 정도로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 내가 그렇게 잘 해 줬는데. 내가 싫어서?”

그런 야속한 마음이 점점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 오늘 개 주인한테서 연락 왔는데 다시 보내준다 카더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도 없이 나온 말이,

“ 할매, 개 보내지 마라 캐라. 또 갈 거 아이가.
  그 개한테는 여기가 지 집이 아인기라. 지 집에 살게 해 줘야 될 거 아이가. “
  그라고 우리가 아무리 잘 해 줘도 주인이 따로 있는 기라. “

우리가 살면서 많은 곡절을 겪게 된다.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이 교차한다.
그러나 아무리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도 여한이 없다고 할 정도의 기쁨도
세월이 지나며 슬슬 색깔이 옅어지다가 언젠가 그와 비슷한 규모의 격정을 또 다시 겪게 되면
그 전의 사건은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죽은 목숨같이 삶의 희망을 잃고 노심초사했거나
모든 걸 다 이룬 거 같이 행복에 겨웠는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아무런 감정이 없는
머리속에 저장된 그냥 연대기에 나열된 일부 기록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그리고 또 다른 이별의 아픔을 겪게 해준,
그 때 잠시 나와 함께 생활하고 나의 동무가 되어 주고
나의 위로가 되어준 셰퍼드와의 일화가
이후 내가 살아오는 동안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뿐 아니라  
내 삶 자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새끼’ 라는 욕은 거의 입에 달고 있어 사실 아무 의미도 없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면 아무 때나 뱉는, 욕이라기보다 일상용어에 가깝다.

‘개보다 못한 놈아.’ 라는 욕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이건 좀 특정이 되는 거 같다.
주로 배신자나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이 듣는 욕이다.
당연히 한번 맺은 인연을 절대 잊지 않는 개에 비할 수가 없는
표변에 표변을 거듭하며 촐싹대는 인간들에게 퍼붓는 욕이다.
먹여주고 거두어 준 주인을 보호하고 감싸기는커녕 물어뜯고
그것도 비열하고 야비하게 뒤에서 물고
가만히 눈치보다 주인이 약하고 약점이 보인다 싶으면 하루아침에 홱 돌아서서  
바로 투사가 되어 삿대질하고 싸움을 걸고 짓밟으려 하는
개 발톱의 때만도 못 되는 졸렬한 인간들이 듣는 욕이다.
개들이 봤을 때 얼마나 가소로울까.
‘인면수심’ 이라는 욕이 있다. 이럴 경우는 오히려 짐승을 모독하는 말이 된다.

개는 뼈다귀 많이 준다고 돌아서지 않고 잠자리가 편해진다고 돌아서지 않고
맨 날 야단맞는다고 앙심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탈을 쓴 주제에 조금만 자기에게 유리하면 싹 마음을 바꾸어 돌아서고
꼴 난 자존심 좀 상하게 했다고 원한을 품고 배신의 칼을 가는 인간의 부류가 있다.
당연히 개보다 못할 수밖에.

게다가 꼴값을 떠느라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떠들어 댄다.
누가 상황에도 맞지 않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개짓는 소리’ 라고 일축한다. 바로 개 짓는 소리다.
게다가 개보다 못한 것들이 짖어대면 소음도 이만저만 소음이 아니다.
공해 수준이다. 걸어 다니는 인간 공해다,
듣는 귀도 귀지만 무엇보다 듣고 소화해야 하는 정신 건강에 부화가 걸린다.

어쩌다 배신이 정당화 되는 사회가 되고
배신을 해도 묵인이 되거나 오히려 때에 따라서는 영웅이 되는 얼토당토 않는 환경이 되고
이런 배신자들을, 개보다 못한 인간들을 양산하는 시대가 되었을까.
이런 자들이 떠들어대며 무리를 만들면 그게 개판이 된다.
어어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부화뇌동 되어 개판에 휩쓸리게 되고 개판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지금 이렇게 개판이 너무 커져 수습불능 사태가 된 건 아닐까.

그럼 나는? 당연히 나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도 누군가에 대한 배신을 밥 먹듯 저지르고 있다.
그것도 매일.
당연히 개보다 못한 놈들 중 하나 일수밖에.

1970년 대 초의 공전의 히트 곡 ‘갈대의 순정’의 가수 박 일 남이 부른 곡 중에
‘情’ 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학창시절부터 의형제 삼아 매일 만나다시피 친하게 지내던 26회 후배가
어느 때부턴가 술만 들어가면 눈을 지그시 감고 감정을 이빠이 잡고
젓가락 하나 들어 박자 삼아 천천히 탁자를 두들기며 부르던 노래다.
물론 이 노래를 취기가 돌 때마다 부른 이유가 있었다.
이 후배는 노래실력이 프로 가수 뺨 칠 정도였다.
음치인 내가 이 후배에게 열광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음악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 정확한 음정, 박자에 허스키한 목소리와 노래가 잘 어울려
가사에 감정이 실려 전달되다보니까 감정이입도 되고
어느새 나도 그 가사를 다 외우게 되어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었다.

“ 당신이 날 버리고 말없이 떠났을 때
  이 몸은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렸다.
  어차피 떠날 바엔 정마저 가져가야지
  정은 왜 남겨서 홀로 울게 하느냐. “

가요의 대부분의 소재가 사랑 이야기 이고 사랑 이야기의 대부분이 이별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별 이야기의 100%가 이별 당한 쪽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누구나 배신당한 마음에 공감한다는 건데 즉 누구나 배신당한 일이 있다는 건 데
그렇다면 자신도 누군가를 배신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인간이란 누군가에게 배신으로 인한 아픔을 주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즉 배신이 인간의 속성 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된다.
배신은 마음이 변해 일어나는 현상 중 부정적인 면을 말한다.
극히 드물지만 대오 각성하여 깨달음을 얻는 변심은 긍정적인 면이다.

부정적인 변심의 가장 큰 원인은 이해관계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어 자기 입장을 바꾸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계산해서 마음이 변하고
자신이 충성을 바치거나 순정을 바친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자칫 자기에게 화가 돌아올 거 같거나 더 이상 붙어있어 봤자 별 볼일이 없을 거 같으니까
등을 돌려버리고 또는 자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대상이 나타나거나 하면
마음을 홱 바꾸어 반대 방향으로 가 버린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멸시받았다고 여겼을 때
여태까지 입은 은전은 입 싹 씻어버리고 앙심을 품고 변심을 하게 되는 게
두 번째 이유쯤 되는 거 같다.

지금 여당의 핵심 최고 중진 두 전 현직 다선 국회의원이 학창시절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좌익 재야운동을 하고 군사정권 시절 장기수로 투옥도 되고 하다 어느 날 전향을 하고
보수 여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이 된 후 어느 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걸 본 적이 있다.
전향한 이유에 대한 답이 둘 다 아주 심플했다.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였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신을 할 수 있는
시장잡배보다 별 나을 게 없는 인간들이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도지사도 하며
국가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고 때만 되면 나타나 주둥이 질하며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태다.
변심과 배신 따위는 별로 관심에도 없다.

여자의 마음은 바람 부는 대로 휘어지는 갈대 같다고 한다.
이 말은 여자에게 일방적인 헌신과 복종을 강요하던 시절,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택할 수 없던 시절,
부와 권력을 독점한 호사가 내지 호색한들이
자기 마음대로 잘 안 되는 소수 귀족 출신 여성을 두고 한 말이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남자들의 마음은 휘어지는 갈대가 아니라 뿌리 채 뽑혀나가는 갈대다.
자신이 스스로 다짐한 맹세나 누구를 위해 한 맹세를 끝까지 지킨 남자가 몇이나 될까.
이유를 대고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는 건 남자들이 더 하다.
아니면 아예 무시해버리거나 똥 뀐 놈이 성 낸다고 버럭 화를 내거나 심지어 완력으로
자신의 변심이 들어나지 못하게 한다.

가장 단순하고 간단하게 남자들의 변심을 알아보려면 각자 집의 부인에 물어보면 안다.

“ 댁의 남편은 연애할 때나 결혼할 때나 지금이나 부인에게 한결 같습니까?”

옛날 신파 극 ‘이 수 일 과 심 순 애’ 의 대사 중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사 한마디가 있다.
심 순 애의 변심에 상심한 이 수 일의 처절한 절규,

“김 중 배의 다이어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

여자들만 돈 많은 김 중 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순정은 있을지 몰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이 수 일은
절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극이다 보니까 말도 안 되는 결과로 끝을 맺지만 김 중배 같이 되는 게 꿈이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수 만 번 변심을 할 수 있는 게 남자들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보니까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을 바라고 있다.
어떤 자리에 앉더라도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절실한 거다.

뭐가 되기만 하면, 그게 다 지기 잘나서 자력으로 이룩한 것인 양 교만에 젖어
안면 싹 바꾸고 군림하려고 하며 온갖 꼴값을 다 떨고 있다.
그런 꼴에 너무 신물이 난다.

자신에게 고난이 닥칠까 눈치를 보며 온갖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고 발뺌하고 뒤집어씌우고
뭔가 자신에게 유리한 걸 찾아 요리조리 살피고
남의 약점을 폭로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걸로 자신을 방어하거나
자신의 공적으로 삼으려고 하는 이런 갈대보다 더 흔들리고 식은 죽 먹듯 변심하는
비열하고 조잡한 인간들에게 지쳤다.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이 번이 금년의 마지막 회다.
미국에서 1월 23일 돌아올 예정이니까 1월 말 설 연휴 지나고 2월에나
다시 독자들과 대하게 될 거 같다.

우리 동기 여러분들, 그리고 토요살롱 독자 여러분들,
며칠 남지 않은 연말 마무리 잘 하시기를 바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운수대통 하시고 만사형통하시고 행복하시고
뜻하는바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기원하며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2017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2016.12.17. 송 종 호.




토요 살롱 200회 " 미국의 안보 "
토요 살롱 198회 " 어느듯 12월도 중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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