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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02-04 21:18:38, Hit : 2225, Vote : 512
  토요 살롱 200회 " 미국의 안보 "

토요살롱 199회를 지난해 12월 13일에 올렸으니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까마득한 옛날 일 같기도 하고 엊그제 일 같기도 하다.
그 사이에 미국을 다녀오고 설도 지났다.
매년 동기회에서 선물로 받아오는 장식이네 회사 달력을 미국에서 돌아와서야 걸게 되었는데 걸자마자 한 장을 넘겨야했다.
‘아니 이렇게 속절없이’ 후회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까워 해봐야 아무 소용없지만
뒤로 넘겨지는 세월이 조금은 야속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얼마나 오래 전 일이라고 자판 앞에 앉는 게 어색하다.
시시각각 교차하는 오만 잡생각으로 집중이 어렵다.
time table 이 흐트러진 걸까?
가장 두드러진 노화현상 중 하나인 매사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 귀찮아지기 시작해서 일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공들여 쌓은 습관일수록 한번 무너지면 원상으로 되돌리는 데
그만큼 더 각오와 분발이 필요하다는 거다.
매일 하는 운동도 이틀을 쉬면 3일째는 각오, 스스로에 대한 기합 같은 정신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연일 영하 10도 안팎의 매서운 강추위지만 그러나 벌써 2월이다.
더구나 오늘이 절기상 입춘이란다.
날도 많이 길어져 아침 7시면 동녘에 붉은 기가 감돌기 시작하고
저녁 6시에도 햇살이 남아있다.
곧 매화도 피고
산유화도 눈에 띌 듯 말 듯 앙상한 가지에 애벌레 기어 나오듯 꽃잎을 내밀고
노란 개나리도 만발하겠지.

토요 살롱 200회라고 해서 뭐 특별한 감회는 없다.
빼 먹지 않으려고 어거지로 쓴 경우도 있었고 쓰다가 너무 두서없이 장황해져
황급히 마무리지어버린 경우도 있고 쓰다 보니 주제가 삼천포로 빠져버린 경우도 있어
좀 창피하고 머쓱한 기분도 든다.
그런 무성의 때문인지 한결같은 필체에 식상해서인지
토요 살롱 인기가 예전에 비해 훨씬 못 한 거 같다. 독자 수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 올린 것 중에는 맨 처음 홈피를 포함해 조회 수가 3천이 넘는 편수가 여럿 되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한 거 같다.

어쨌든 2009년 6월에 첫 회를 시작으로 이듬해 3월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40회를 올리고
2년을 쉰 후 2011년 3월부터 41회로 재개하여 200회를 채웠으니 2011년 이후로 따지면
매년 27,8회 두 주에 한번 꼴로 올린 셈이 된다.
토요 살롱 열렬 독자 중 한명인 일보는 토요 살롱 200회를 미리 축하해 주며
‘누에고치에서 실 뽑듯이 어디서 이야기가 그렇게 끝도 없이 나오냐.’ 고 감탄해 하는데
구지 이유를 들어 답변하자면 내가 원래 팔자가 사납고 더러운 데다가
타고난 재능도 빈약하고 주변머리도 변변치 못한데 더하여
꼭 뭐를 이루어야겠다는 불굴의 의지 같은 건 더더욱 전무하고
게다가 뭘 열심히 파고드는 노력 형은커녕 내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눈앞의 노는 걸
먼저 챙겨야 하는 스타일이라 쓸데없이 세파에도 시달리게 되고 곡절도 겪느라
여태까지의 인생 여정이 부침이 심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꽃길만 걷거나 고속도로만 달리면 인생이야 편할지 모르지만
이야기 거리가 다양할 수가 없고 변화 자체가 별로 없으니
변화무쌍 할 때마다 복잡한 생각을 하거나 이리저리 잔머리 굴릴 필요가 없어
소재 자체가 빈약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다고 이야기 거리 만들려고 일부러 고생하며 험한 인생을 살 필요는 절대 없다.
누가 뭐래도 꽃길 인생이 복 받은 거다.

용혁이는 지난해를 199회로 마무리하고 새해 들어 200회로 시작하게 된 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200회를 무슨 썰로 채울까 기대도 하고 궁금해 하고 있지만
최근 ‘청음 김 상헌’을 출판한 두환이가 199회를 올린 후
간단명료하게 다음 소재를 정해버렸다.

“ 200회는 미국 여행 이야기로.”

미국 떠나기 전 이번에 미국 가면 열흘 정도 일정으로 애들 엄마와 둘이서
미니애폴리스,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를 거쳐 산타페, 엘파소를 최종 목적지로 하여
돌아오는 길은 오크라호마를 경유하는 7,000km 오토 여행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두환이의 예고대로 토요 살롱 200회는 미국 여행기로 채울 수 있겠구나 했었지만
최종 순간에 애들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은데다 오토여행이 싫다고 하여
결국 여행이 무산 되고 말았다.

산타페를 택한 이유는 테네시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안식년을 뉴잉글랜드에서 보내면서
자동차로 트랜스 컨티넨트를 두 번씩이나 하며 미 대륙 전역을 샅샅이 섭렵한 명식이가
강력 추천했기 때문이다.
시카고에서 명식이 큰 형님(16회 선배)과 둘이서 산타페까지 왕복 7,700km를
매일 1,100km 씩 주파하여 일주일 만에 다녀온 후 너무나 여운이 남아
그 후 다시 한 번 더 다녀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못 갔지만 명식이가 산타페와 옐로스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니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여행을 포기하자 맥이 풀려서인지 폐암 수술 후 회복 중인 순구 만나러
뉴욕 다녀오기로 한 일정도 포기하고 희경이만 두 번 만나 점심 식사 같이한 외
워싱턴 지역 다른 동기들은 연락도 못했다.
대신 순구와는 장시간 통화도 하고 카톡도 주고받았는데 다행히 항암 과정도 다 마치고
재활 과정도 마쳐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하고 3월에는 마무리 질 일도 있고
그리운 친구들도 만날 겸 한국에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토요살롱 200회는 미국 여행기를 쓸 수 없어
말 나온 김에 대신 미국 이야기로 채울까 한다.
그 중에서도 우선 미국의 안보 이야기부터 해 볼까 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많은 논란이 있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거 같다.
더구나 요즘은 미국의 세세한 사건들조차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어
누구나 미국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이 착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60여년을 부대끼고 비비며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온 자기나라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남의 나라에 대해 함부로 비판을 하거나 찬양 일변도이거나 아는 체 이야기를 하는 게
주제넘은 짓일 수가 있다.
그래서 미국 이야기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들어난 사실과
이미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을 기준으로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하는데 그냥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지만 복습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고종 때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의 해군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하여
잠시 소란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미국과 우리가 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된 건
얄타회담에 근거 일본의 패망 후 일본을 무장해제 시키고
한국의 독립 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이 38도선 이남의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이 승 만이 반탁운동을 주도하고 이남에 독자 정부를 수립하는 바람에
남북한이 갈라서 남북에 각각 독자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통일 신라 이후 천년을 살을 맞대며 살아 온 하나의 민족이
어느 날 느닷없이 서로 원수가 되어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당시 상황을 오판한 이 승만이 미주둔군의 철수에 동의하여 미군이 철수했지만
이내 6.25 전쟁이 나고 미군이 UN 연합군의 이름아래 참전함으로서
우리는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 중공군이 참전하여 누구도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고 휴전하는 바람에
문제가 복잡해졌다.
38도선 부근에서 일진일퇴의 교착상태 끝에 휴전 협정을 하게 되었으나
휴전협정서에 이 승만이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서명을 거부하는 바람에
UN군 총사령관 클라크를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 사령관 김일성과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팽 덕화가 다른 일방으로 하여
서명한 후 지금까지 쌍방 정전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 승만이 서명을 했던 안 했던 양측이 현재 전쟁을 잠시 멈추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평화협정으로 바뀌지 않는 한 중국과 이북이 한패가 되고
우리와 미국이 한패가 된 전쟁이 아직도 계속 중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양측의 대표는 당연히 미국과 중국이니까 두 대국은 우리와 이북을 표면에 내세우고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할 수 있는 거다.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수십만 중공군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물밀 듯이 밀려와
승리를 코앞에 둔 연합군이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중국 영토 내 원폭 투하를 적극 주장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원폭을 소유하고 있던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였다.
재래식 무기밖에 없었던 중국으로서는 원폭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여 중국을 초토화 할 수도 있다는 걸 무시하고
무작정 밀고 들어왔을까? 그 정도로 무지하고 무모했을까?
아니면 미국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절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을까?

원폭이 아니더라도 중국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보고 엄청난 물자를 투입하였다.
당시 중국은 혁명을 완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미국처럼 펑펑 써도 되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 왜 중국은 자칫 자기 국가의 명운이 갈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길지 질지 모르는 남의 나라 전쟁에 엄청난 인명과 물자를 투입하여
결사적으로 이북 정권을 보호하고 군사분계선을 38도 선에서 고수하려고 하였을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중국이 인구가 너무 많아 처치 곤란하여 전쟁터로 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김 일 성이 모 택 동을 찾아가서 울고불고 매달렸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그게 정말인줄 알기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애들 어르듯이 얼마나 선동적이고 얄팍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인지
얼굴이 다 뜨거워 질 정도다

고로 미국이 볼셰비키 세력의 확산을 38도선에서 저지하지 못하면
자기들 안보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파병하였듯이
중국도 마찬가지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경계를 마주하는 것은 원폭을 감수하고  
국가의 명운을 걸고라도 저지해야 할 정도로 자기들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본 거라고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와 미국이 군사동맹 관계인 것처럼 당연히 중국과 이북도 군사동맹 관계다.
군사동맹 관계란 모두 알다시피 전쟁이 일어나면 무조건 달려와 동참하는 관계다.
우리가 군사적으로 미국의 비호 하에 있고 더 넓은 의미로 체제 안정의 보호막이 미국이듯이
중국과 이북도 그런 관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작금의 이북 핵 문제와 이로 인한 사드배치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일관된 대외정책은 소위 Monroe Doctrine에 입각한 ‘내정 불간섭, 고립주의’ 다.
미국의 5대 대통령이었던 먼로가 1823년 미 의회에서 연설한 내용인데
대상이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로서 미국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유럽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남미를 포함한 전미 대륙의 어디도
함부로 집적대거나 넘보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유럽의 어느 나라가 아메리카 대륙의 어느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영토 확장을 꾀하면 미국의 안보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대 유럽용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 고립주의 원칙은 먼로가 새삼스럽게 주장한 게 아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대외 정책이었다.
워싱턴은 대통령이 된 후 국무장관을 유럽에 파견하여 똑 같은 내용을 천명케 했다.
그리고 먼로 이후 내정불간섭 주의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어
이웃인 멕시코에서 여러 번에 걸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지만 미국은 엄정 중립을 지키고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이라는 전제 조건이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즉각 응징하겠다는 건데
그 판단은 미국이 스스로 하겠다는 거다.

이 고립주의 원칙이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건 일차 세계 대전 때다.
1914년 전쟁이 발발한 후 금방 끝날 거 같은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 수년간 계속 되자
양측은 더 이상 전쟁 수행에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고 수십만에 달하는 사상자는 물론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참전국들의 경제 상황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은 우세한 해군력으로 독일의 항구를 봉쇄했고 독일은 영국으로 가는 화물선을
잠수함으로 무차별 격침하다보니까 양측 다 물자 부족으로
국민들의 참상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국내 정치 상황이 복잡한데다 전쟁 배상 문제가 걸려 있어
어느 측도 섣불리 휴전 이야기를 꺼낼 입장이 못 되었다.

어느 쪽이나 더 이상 전쟁을 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전쟁의 조기 종식과 자기편으로의 승리를 위하여 영국은 미국의 참전을 애걸하였고
독일은 러시아와 전쟁을 종식시키면 동부전선의 병력을 서부에 집중 투입해
일거에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러시아와의 화평조약 성사에 전력으로 매달렸다.

먼저 독일이 성공하였다.
러시아가 짜르 제정이 붕괴되고 혁명에 의해 정권을 수립한 볼셰비키 지도부는
전쟁에 지친 병사들과 피폐한 재정 상태에서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고 보고
독일과 평화조약을 체결해 버렸다.

자칫 추가 한 쪽으로 기울려고 할  때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을 선언하였다.
당시 미 대통령이던 윌슨은 연합국의 수년에 걸친 애걸복걸에도
종내 미국의 일관된 대외정책인 내정 불간섭주의 원칙을 내세우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윌슨의 재선 공약이
‘유럽이 불바다가 되던 피바다가 되던 미국은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일 정도이었다.
그러나 미 국민이 승선한 여객선이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고
영국을 왕래하던 미국 화물선이 격침되어 국내 여론이 들끓자
더 이상 뒷짐 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독일이 미국 화물선과 여객선을 공격한 거가 패인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독일이 이미 무차별 공격할 테니 미국에서 유럽 쪽으로 민간 선박을 띄우지 말기를
사전에 여러 번 경고했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는 원 거리에서 선박 유형과 국적을
분간할 수 있는 장비가 열악해 공격을 가려서 할 수가 없었고
독일 항구가 영국 해군에 봉쇄돼 외부로부터의 물자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영국으로의 물자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도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민간 선박의 항해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전쟁 덕에 미국의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특히 군수품 업자들이 무기와 군수품을 영국으로 실어 나르며
막대한 이익을 취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독일의 결정적 오판은 무차별 격침으로 미국이 선전포고를 하더라도
모병하여 최소한의 기본적인 군사훈련이라도 마친 후 실전에 투입하기까지
적어도 6개월 이상이 걸릴 거라고 보고
러시아와 대치하고 있던 병력을 전부 서부전선에 투입하면
그 안에 충분히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본 건데 미국이 그렇게 빨리 군대를 결성해
막강한 무기와 풍부한 군수물자와 함께 전선에 투입될 줄은 몰랐던 거라고 한다.

어쨌든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끝났다.
전후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윌슨 대통령의 주창으로
향후 또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대규모 전쟁을 사전에 막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위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을 창설하였으나
정작 미국은 양원을 다 지배하고 있던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 승인을 못 받아
국제연맹에 불참하게 되었다는 거다.
창설 초부터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에다 선장이 없는 배격이었으니
뭐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물론 윌슨은 자기가 주창하여 창설한 국제 연맹에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 승인을 못 받는
우스운 꼴이 되어 의회의 승인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전국을 투어하며
국민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섰지만 그것도 도중에 건강 악화로 중단하고
결국 의회에서 부결돼버렸다. 역부족이었다.
비록 참전은 하였지만 전쟁이 끝난 이상 불간섭주의가 대세였다.
당시 반대론자들의 주장 중 하나가,

‘국제 연맹에 미국이 참가하면 자칫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떠맡게 될 지도 모른다.’
라는 우려였다.

윌슨의 예언과 우려대로 20년 후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고 발발 원인만 다를 뿐
전개과정은 일차대전의 복사판이었다.

이차대전후 미국 안보의 최대 위협 요인은 볼셰비키의 확산이었다.
실지로 일차대전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전승국은 비밀리에 연합군을 형성하여
볼셰비키의 적군에 저항하고 있던 멘셰비키를 중심으로 한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내 자국민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러시아에 파병하기도 하였었다.
직접 전투에 참여는 하지 않고 무기 등 물자를 지원했지만 이 시도는 물론 실패로 끝났다.
숫자만 많았지 명분이 빈약한 오합지졸들이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었다.
원조 받은 무기고 군복이고 죄다 야매시장에 팔아먹기 바빴다고 하니
제대로 전투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련 연방의 붕괴로 볼셰비키의 위협이 사라진 후에는
핵 확산, 테러, 에너지 이 세 가지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핵 확산 방지와 테러 방지, 에너지 확보가 미국 대외 정책의 최우선 순위였으나
에너지의 경우 셰일 오일 생산의 급증으로 상황이 달라진 거 같다.

셰일 오일 생산 이전까지 미국은 국내 수요 일일 2,000만 배럴 중
자국 생산이 450만 배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를 해외에서 조달해야 되는 데
캐나다는 샌드 오일을 생산하기 전이었고 멕시코를 제외한 남미의 대부분의 국가도
심해 유전 개발 전이라 거의 전량을 중동에서 들여와야만 했다.
따라서 중동이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만큼 요충지대가 될 수밖에 없어서
원유확보에 지장이 없도록 원유 공급 루트 요지마다 함대를 파견하여
수송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원유 생산국의 정정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기도 하고 원유를 무기화하려는 세력을
무력으로 타격하기도 해 왔다.
따라서 석유 수송 뱃길인 홍해,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은 자연스럽게 미 함대에 의해
봉쇄되어 있는 꼴이 되었고 그 뱃길과 맞닿아 있는 국가 중 이란을 제외 한 모든 국가가
자국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고
원유채굴에 투자한 미 메이저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셰일 오일 덕분으로 현재 일일 9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270만 배럴, 멕시코에서 120만 배럴 씩 송유관을 통해 수입되고 있고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뉴기니 등 중남미 국가에서 300만 배럴 정도 들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기름 수입할 돈이 없어 사탕수수에서 알코올을 추출해 자동차 연료도 쓰던 브라질이
심해 유전 개발로 지난해 230만 배럴 정도를 생산하여 자국 내 수요를 완전히 충족함은 물론
금년에는 290만 배럴 생산을 목표로 잉여분을 수출에 나선다고 한다.
2030년까지 세계 오대 원유 생산국이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가지고 있다.

천연가스는 셰일 가스 개발로 넘쳐나 미국 내 가격은 국제가의 30% 수준 밖에 안 되고
액화 저장 시설이 속속 완공되는 금년부터는 잉여분을 오히려 수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디스카운트된 가격으로 금년부터 미국 산 가스를 들여오게 계약이 되어 있고
일본도 계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에너지 자립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생산량을 고려한 이야기다.
NAFTA도 있고 미 대륙 국가 간 비관세 협정도 있지만 그 보다 훨씬 먼저
먼로 독트린의 범위가 미 대륙 전체인 거와 같은 의미다.

미국의 일일 원유 소비량은 그 동안 원자력과 가스, 대체 에너지 등의 대체 효과로
하루 1,900만 배럴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의 하루 원유 부족분은 현재 200만-300만 배럴 정도다.
트럼프가 에너지 자립을 하겠다고 무슨 특별 정책을 세우며 요란을 떨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내버려둬도 조만간 자연스럽게 달성될 수 있는 양이다.

즉 더 이상 에너지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중동에 대한 관심도도 덜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중동에서 원유 수송 길목을 지키고 있는 미 함대도 역할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프럼프가 취임 전 의미심장한 발표를 했다.
‘미 해군력을 더 증강시키기 위해 국방예산을 증액하겠다.’
홍해,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을 지키고 있는 미 함대의 철수는커녕
어디다 함대를 더 배치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중국의 하루 원유 소비량이 일일 약1,100만 배럴이라고 한다.
국내 생산이 350만 배럴 정도 된다니까 일일 700-8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해야 된다.
중국이 원유 순 수입국이 된 이후로 중국은
미 해군이 길목을 완전 장악하고 있는 중동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줄이고
공급선의 다변화를 꾀해 국가 대외정책 제 일 순위를 원유 확보에 두고
그 중 아프리카 산유국을 집중 공략해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석유 메이저들이 장악하고 있던 기존의 공구를 제외한
신규 발굴 공구의 대부분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러시아의 제일 원유 수출국이 중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은 중동 지역 원유에 상당히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중국안보의 최대 위협 요인은 여전히 원유 확보인 셈이다.

따라서 중동에서 인도양으로 나오는 원유 수송로는 설사 미국이 이 지역으로부터
더 이상 원유를 수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다른 의미, 즉 봉쇄당할 지도 모른다는 수세적이 아니라
봉쇄할 수도 있다는 공격적인 의미로서 미국 안보의 중요한 요충지역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일도 있다.
몇 년 전 중국 정부가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이 회사 명의로 니카라과에
300억불을 투입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을 관통하는 제2 운하를 뚫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운하를 개통하면 중국이 자국 재산을 보호한다며 중국의 해군을 파견하고 기지를 건설할 텐데
그러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미국의 간접적인 의사 표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이라고 보고 있는 증거다.
2017.02.04.송 종 호.




토요 살롱 201회 " 냉전시대의 미국의 대외정책 "
토요 살롱 199회 " 變 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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