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송종호(2017-03-11 17:04:11, Hit : 2309, Vote : 494
  토요 살롱 204회 " 미국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 "

사물을 처음 인식하는 방법 중에 어떤 특정 사물에 대해 우리가 기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종합하고 그걸 바탕으로 사색과 통찰을 통해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미 합의하여 정의를 내린 거나 지속적이고 일방적으로 주입받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물을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같이 오류를 극소화한 고급 정보가 초 단위로 업데이트됨과 거의 동시에
모두가 공유 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숫자나 통계나 연대 같은 facts 와 데이터가 아무나 아무 때나
손쉽게 꺼낼 수 있게 저장되어 있으니 오류가 생기지도 않는다.
이게 뭘까, 아니면 이게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의문을 품는 동시에
바로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즉시 답을 얻게 된다.

그런 수고조차 필요 없는 것들이 있다.
교과서나 선생, 교수 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서적, 전문가로부터 여과 없이 흡수한
수많은 사물에 대한 정의들,
매스컴에서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걸 주워듣기만 한 것들,
자기 스스로가 한쪽 귀만 열어 두고 다른 귀는 막아버린 것들,
자기가 경험한 게 다 인줄 알고 거기에만 의존하는 것 들,
이런 것들은 이미 자기 자신 안에 뿌리를 깊숙이 내린 자신만의 고착화 된 인식들이다.
소위 고정 관념들이다.
  
종교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런 거 같다.
자기는 아무 종교가 없다는 소위 무신론자들의 종교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자기와 다른 종교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객관적이지 못하고 위의 여러 경우에서 비롯되어 형성된 자기주장과
자기 편의에 의해 편협 적으로 인식되어 있기가 십상이고
이렇게 한번 형성된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게 아니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일차 대전 후 전쟁을 주도했던 독일의 카이저를 비롯한 집권자들과 군 수뇌부는
패전의 주 원인이 유태인 때문이었다고 선전하여
국민들 사이에 유태인에 대한 증오심을 증폭시켰다.
  
물론 나날이 고갈되어 가는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유태인의 자본이 절실했던 영국의
전쟁에 이기면 독립시켜 주겠다는 감언에 속아
돈도 대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투에도 참여했지만
유태인의 참전이 전황을 어느 한편으로 기울게 할 정도는 아니었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기들의 오판과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 엉뚱한 데다 화살을 돌린 거다.

패전의 상처와 함께 과도한 전비 부담으로 독일 국민들은 아무리 뼈 빠지게 일을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빚이 줄지도 않고 빚을 갚아 나갈 수도 없어
실질적으로 전승국들의 노예나 다름없는 지경일 정도로 국민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식민지는 모두 빼앗기고 영토마저 전승국들에게 여기저기 뜯겨 쪼그라들었고
황폐해진 경제는 나아질 희망이 없어 국민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 무기력 증에 빠져 있을 때
독일 국민들의 우수성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다시 불러일으켜 준  
나치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따라서 당시 독일 인구의 2% 밖에 안 되는 유태인이 독일 군수 산업의 30%와
금융 산업을 독점 지배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던 유태인의 존재는
히틀러의 내셔널리즘과 전면 배치된다.

이것도 히틀러가 유태인을 증오한 한 이유였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히틀러는
유태인을 무신론자로 규정짓고 이를 유태인 말살의 가장 큰 이유로 삼았다.
예수를 믿지 않고 유일신인 3위 일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무신론자라는 거다.

훨씬 그 전부터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유태인은 다른 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거지역이 제한되고 토지 소유와 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등 박해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박해를 피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유태인들도 더러 있었다.
기독교로 개종하면 게토에서 나와 일반 마을에서 현지인들과 섞여 살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칼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불이익을 피해 유태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나중 일이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유태인들도 몰살을 피해나가지는 못 했다.
2순위였다.

이와 같은 히틀러의 유태교에 대한 시각,
이런 거가 바로 타 종교에 대한 편견의 한 극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각자마다 타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미국이 이슬람을 대하는 시각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반 이슬람적인 발언 및
그에 상응하는 정책예고와  특히 IS에 대한 과격 발언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트럼프가 혼자서 십자군 원정을 떠나려고 한다는 비아냥거리는 기사도
어디선가 얼핏 본 거 같다.

미국은 자유를 표방하고 추구하는 나라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탄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온갖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대륙으로 향한 걸
모세의 이집트 탈출에 비교하기도 한다.
장래에 대한 어떠한 불안과 고난보다 자유에 대한 열망이 앞선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고 있다.
청교도들의 표면적인 목표는 종교의 자유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포괄적인 의미의 자유,
자유, 그 자체를 추구했다는 거다.

따라서 타 종교의 신자들도 똑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종교에 대한 편견도 없고 특혜도 없고 불이익도 없다는 게 미국 국가의 이념이다.
물론 기독교들에 의해 건립된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체가
생활과 국가 시스템, 곳곳에 깊숙이 묻어 있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도 왼 손을 바이블에 얹고 오른 손을 들어 서약을 하고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할 때도 바이블에 손을 얹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최대 명절이고 비록 법정 공휴일은 아니지만 부활절 전후하여
모든 학교가 짧은 방학을 한다.
그러나 추수 감사절도 휴일로 즐기지만 미국에 이주 한 초기 이민자들이 추수를 마치고
자기들끼리 모여 감사 축제를 한 거라 미국만의 고유 축제이지 기독교의 절기는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외연적으로 표방한 한 징표로,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세우고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장식을 하는 거가
다른 종교와의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하여 몇 해 전부터 모든 공공건물에서
일체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없애버렸다.

9.11이후 테러범들의 identity 와 배후가 밝혀지고
모스크가 폭탄을 제조하고 음모를 기획하고 공범자들의 밀회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들어났다.
관련된 모스크도 다 밝혀졌지만 미국은 모스크를 직접 쳐들어가 수색하지도 않았고
수사관들이 성직자들을 심문하지도 않았다.
드나드는 신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외부 감시를 강화했을 뿐이다.
무슬림들의 예배당인 모스크가 미국에만 수백 개가 넘는다.

언젠가 미국 어느 주택가의 한 집에서 이웃집이 너무 소란스럽고
마당에 이상한 부적을 형상화하여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고소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옆집은 힌두교 신자로 집에다 신당을 차리고 수시로 종을 딸랑거리고
마당에 힌두 신을 천연색으로 그려 놓았다.
법정에서 그 힌두교 신자는 종교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당당히 항변하였고
시끄럽게 하여 이웃에 불편을 끼치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무죄로 풀려났다.

이런 예만 보더라도 미국이 기독교 이외의 타 종교에 위압적이거나 불이익을 주려는
어떠한 장후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어떤 종교라도 종교 그 자체를 보호해주고 존중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미국이란 국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유태인들을 차별하여 대하듯이
이슬람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기독교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과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같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사실 우리에게 이슬람은 너무나 생소하고 따라서 별 관심도 없는 종교다.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는 한 주변에 이슬람 신자도 없고 모스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기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기꺼해야 학교에서 아무 의미 없이 시험보기 위해
아주 초보적이고 일방적으로 정의하여 나열한 단어 몇 개 달달 외운 정도와
이슬람과 관련하여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걸
오다가다 간간히 주워듣거나 무슬림 국가들을 여행하고 온 지인들로부터 경험담을
흥미삼아 들어 본 정도 외에는 없다.

그렇게 빈약한 지식과 정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폭력적이고 전투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타협적인 종교로 비춰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 사이에 거의 통일적인 견해가 형성된 데는
우리나라 인구 중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남짓밖에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슬람에 관한한 개신교의 주장과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인 거 같다.
바로 미국 기독교가 바라보는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다.

그러나 2016년 현재 74억 세계 인구 중 거의 30%에 육박하는 20억 가까운 인구가
무슬림으로 신도 수로만 따진다면 세계 최대 종교가 이슬람이다.
커버하는 지역도 엄청나고 넓고 순수 이슬람국가 수만도 수 십 개국이다.
세계 4대 종교 중 신도수가 늘고 있는 유일한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하고
30년 후에는 유럽 전 지역이 이슬람 화 할 거라는 다소 과장된 보도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관심과 별로 곱지 않는 시선 속에서도 신도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태원의 모스크에 금요일 정오 예배 시간이 되면
예배당과 예배당 앞뜰을 완전히 메울 정도로 신도로 가득차고
어디다가 제 2 모스크를 지을 거라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거 같다.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슬람은 교회 조직이라는 거가 없다.
코란 구절이 적힌 책자를 들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등 요란하게 선교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우선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거 중 가장 보편적인 거 몇 가지부터
살펴보았으면 한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오른 손에는 칼, 왼 손에는 쿠란을 들고 죽음이나 이슬람 중 택일하라.’며 전쟁을 일으켜
무자비하게 정복하고 피정복자들에게 이슬람을 강요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은 후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받아 적은 쿠란을 들고
메카에서 전도를 시작하여 신도 수가 수십 명에 이르자
자기가 속한 부족의 다신교도들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어
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 이때 무함마드를 따라 간 신도 수가
70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메디나의 무함마드 추종자 70여명과 합하여 도합 150명으로 메디나에서 전도를 하게 되는데
이때가 AD622년으로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무함마드는 당시 반드시 혈연과 종족으로 형성되던 부족사회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슬람 신자로 구성 된, 즉 무슬림 공동체를 만들어 이를 확대하며 전도를 넓혀나갔다.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 형제자매로서 종족, 신분의 차이가 없었으며 공동 분배를 하였으니
바로 초기 기독교도들의 공동체나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같은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공동체의 확장을 통한 선교,
이것이 바로 메디나에서 무함마드가 신자 수를 급격히 늘여나간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런 이슬람 공동체와 신정일치 통치체제가 훗날 이슬람 국가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무함마드는 25세에 자신의 고용주였던 15세 연상의 돈 많은 과부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고 계속 재산을 불려나가며 계시를 받은 40세까지 여럿 자식을 낳으며
근면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풍족하게 살았으나
이슬람을 선포한 이후의 무함마드의 생활은 청빈과 묵상이었다고 한다.
극도의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많은 시간을 기도와 묵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메디나에서 메카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8년 동안 두 번의 전쟁을 치러 일승일패를 거두었지만
다신교도들이 이슬람의 팽창을 두려워하여 선제공격한 방어적인 전투였고
부족 간의 전투였으며 정작 메카로 돌아올 때는 1만 명 신도가 일체 무기를 지니지 않고
비무장으로 무혈 입성하였다고 한다.
메카로 입성한 무함마드는 카바 신전의 수백 개에 달하는 우상을 파괴하고
알라가 유일한 신이라고 선포하였다.

쿠란에 의하면 무슬림이라면 살아생전에 한 번은 참배를 하여야 하는 메카의 카바 신전은
아브라함의 장남인 이스마일이 건축하였고 아브라함이 찾아와 거들었다고 한다.
이슬람의 성전이 되기 전에는 아라비아 지역 모든 신의 성소로
알라도 그 중의 하나의 신이었으며 모든 다신교도들이 순례하는 성지였다.

메카로 돌아온 지 2년만인 632년 무함마드가 병사한 후 후계자인 칼리프들에 의해
본격적인 교세 확장이 이루어지지만 피 정복지의 원주민들에게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슬람의 주권을 인정하고 반란만 일으키지 않으면
자신들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특히, 유태교도와 크리스천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
이슬람 안에 보호해야한다고 까지 하였다.

그 예로 12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무려 700년 동안 이슬람의 종주국 노릇을 한
오스만 터키의 투르크족들이 이슬람으로부터 전쟁에 져 강압적으로 무슬림이 된 게 아니었다.
투르크족이 이슬람 화되기 전까지 이슬람 세력과 부딪쳐 본 적도 없었다.
왕으로부터 아래까지 스스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후 주변 국가들을 병합해 나가
거대한 무슬림 제국을 건설하며 수많은 종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건
‘알라를 믿는 무슬림은 모두 평등하다.’는 이슬람의 교리 때문이었던 거 같다.

16세기 초 이슬람의 무굴제국이 인도를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하였지만
원주민 신앙인 힌두교와 종교의 차별로 인한 마찰은 없었다.
무굴제국의 황제들은 오히려 무슬림, 힌두 종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두루 등용하여
국가 지배 시스템을 확립하여 국권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인도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 보면 무슬림과 힌두 마을이 이웃해 살면서 서로 전통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축제 때는 동참해주고 궂은일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하며 아주 평화롭게 살았는데
분쟁의 시작은 영국이 종교에 따라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시키면서 부터라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쓸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인구 2억 6천만의 세계 5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 그리고 말레이시아도 무슬림 국가이지만
칼을 들고 와 협박에 못 이겨 이슬람 화가 된 게 아니다.
아랍 국가들과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던 거도 아니다. 말도 다르고 종족도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인도네시아는 40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말레이시아는 거의 200년 가까이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무슬림 아니면 지배세력으로부터 탄압을 받거나 무슨 불이익을 받아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처럼 대규모 선교사를 파견해 적극적으로 전도한 거도 아니다.
오스만 터키의 투르크족처럼 스스로 받아들였다.

내가 한 때 거주하던 웨스트 수마트라는 인구의 30% 정도가 크리스천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크리스천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런 갈등도 없었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주며 아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인도네시아 최고 휴양지로 일려진 발리 섬 은 인구 400만의 거의 전부가 힌두교 신자다.
수도 자카르타의 공무원을 비롯한 관공서 직원 중에도 가끔 이 발리 출신들을 만날 수 있는데
철저하게 힌두의 종교의식과 전통을 지키지만 어떠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아프리카 중서부의 나이지리아는 인구 1억 9천만 명의 아프리카 최대의 인구 국가이고
인구 순위로 세계 8위이다.
세계 모든 흑인 6명 중 한 명은 나이지리아 인이라고 한다.
이 나라 국민의 50%는 이슬람이고 40%가 기독교, 10%가 토속신앙이다.
나이지리아도 이슬람의 침략과 강요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1960년 영연방으로 독립하기 전까지 10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 나라는 반군에 정정에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럽다.
그러나 종교상의 갈등으로 인한 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에 다섯 번씩 아잔이 울리고 금요일 정오에는 무슬림들이 모스크로 가고
일요일에는 기독교인들이 교회와 성당으로 간다.
공무원, 사 기업, 농촌 할 거 없이 모두 이 두 종교가 골고루 섞여 있다.
전혀 차별이 없다.

이슬람은 중혼을 허용하여 부인을 4명이나 둘 수 있다고 하여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지탄도 받고 있다.
이런 오해는 1,500년 전 아랍 지역의 사회와 풍습을 고려하지 않은데서 온 거 같다.
당시에는 절대적인 남성 우위 사회였다.
대상, 유목, 농업 등 모든 생계 수단이 남자들의 몫이었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할 책임도 남자들에게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이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까 과부도 많이 생기고
고아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 중 여자들은 내버려두면 굶어 죽거나 노예로 팔려가거나
극한 상황에 빠지기 십상인데 이를 다소나마 구제해 주는 제도가 중혼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아랍은 물론 세계 다른 어디를 막론하고
능력만 있으면 처첩을 무제한으로 거느릴 수 있었는데 이를 제한하는 역할도 했다.
즉 4명이나가 아니라 4명까지 라는 개념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혁신적이고 진보적이고 다소나마 형평성을 고려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들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이를 악용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 번째 이후의 부인을 취하려면 반드시 기존 부인들의 허락을 받아야 되고
부인이 몇이던 다 동등하게 대해야지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부인들이 낳은 자식들도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니까 아무나 또 능력만 있다고 부인을 둘 이상 거느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누라를 더 얻겠다는 걸 호락호락 허락해 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설사 허락을 받더라도 그 이후가 더 어려울 거 같다.
똑 같이 대우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
또한 4명까지 중혼을 허락하는 대신 부인들 이외의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본 처 이외에는 첩도 둘 수가 없다.
만일 다른 여자와 어떻게 했다 들키면 처벌이 아주 무시무시하다.
이혼도 절대 불가다. 여하한 경우에도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다.
미우나 고우나 조금도 차별 없이 대하며 다 데리고 살아야 한다.
당시에는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조 때 양반 세도가들이 비록 본처는 한명이었지만 축첩을 제한 없이 하고
더하여 계집종까지 사물화 하면서도
첩의 자식은 서자로 종의 자식은 종으로 신분이 차별되던 경우와 비교될 수 있다.

지하드, 소위 ‘성전’ 이라고 해석되어 이 말 자체가 뭔가 호전적이고 위압적이고
뭔가 피 냄새가 묻은 거처럼 들리는데 이 거 역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이다.

지하드의 아랍어의 의미는 ‘노력’ 이라고 한다.

지하드는 무슬림 성인 남자의 의무 중 하나로 되어 있지만
같은 무슬림들의 평화로운 삶에 위험이 닥쳐왔을 때와 불신자를 교화할 때로 국한한다.
전자는 방어적인 의미이고 후자의 불신자란 다신교도와 우상 숭배자를 일컫는다.
따라서 유태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은 지하드의 대상이 아니다.
한 예로, 칼리프들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심지어는 동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기도 하며 모스크를 세우고 성당을 모스크로 개조도 했지만
그 나라 국민들의 종교를 개종하는데 열의를 보였다는 징표나 기록은 없다.

그리고 지하드의 전제 조건은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어야 된다는 거다.
지하드의 방법에는  마음, 펜, 지배, 무기 등 4가지가 있어
반드시 무기를 들고 전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슬람이 허용 되고 이슬람 공동체가 인정되고 이슬람의 고유한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설사 타 민족이나 다른 종교의 지배를 받더라도 지하드를 일으킬 수 없다고 한다.
투르크족이 700년을 지배하는 동안 별 반란이 없었고 영국이 100년 가까이 위임통치를 해도
그 흔해빠진 독립 운동 같은 거 하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 같다.
평화를 갈구하고 민족이나 혈연에 의해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무슬림으로 일원화 되고
알라에의 귀의가 우선이기 때문에 이 부분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반면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러시아는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유한 전통을
파괴하고 마르크스 식으로 개혁하려고 한 거가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이슬람의 경제 체제, 통치체제나 볼셰비즘은 비슷하다.
결정 기구인 종교 지도자들의 평의회와 공산당의 중앙상위가 역할이 비슷하고
절대 오류가 없는 무소불위 권위를 가진 이슬람 평의회 의장과
공산당 상위 의장격인 당 주석의 지위도 비슷하다.
경제체제는 두말할 거도 없다.
무함마드 시대부터 마르크스 식 분배 방식이 적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자세히 보면 요즘도 모든 이슬람 국가의 경제 구조는 사회주의 색채가 강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슬람의 전통을 무시하고 남녀평등을 한답시고
여자들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주고 남자들과 동등하게 직업을 가지게 하고
이슬람 식 전통 복장에서 해방시키는 등 이슬람 고유의 전통을 무시한 게 화근이 되었다.
바로 지하드에 해당 된다.
러시아와의 전투에 참가한 무자헤딘의 슬로건은,
‘아프가니스탄의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의 회복’ 이었다.

무슬림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세례를 받고 교리 문답을 하고 하는 절차가 아예 없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마지막 예언자.” 라고 암송만 하면 된다.
증인 앞에서 하는 게 보통이지만 혼자서 중얼거리고 ‘나는 지금부터 무슬림이다.’
하면 그걸로 무슬림이 된 거다.
최초의 무슬림은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이슬람을 아브라함의 종교라고도 한다.

교리가 복잡할 거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6가지 믿음, 즉,
-알라에 대한 믿음.
-천사에 대한 믿음.
-무함마드가 최후의 선지자라는 믿음.
-4개의 경전인 모세의 율법,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코란을 중시하고 그 중에서도
코란이 완전한 최후의 경전임을 믿음.
-최후의 심판 날 영과 육이 결합하여 부활한다는 믿음.
-알라만이 인간 행위와 운명에 대한 유일한 결정권을 갖는다는 운명론에 대한 믿음.

과 신자로서 행해야 하는 5가지 기둥, 즉
-알라는 유일신이라는 신앙고백.
-매일 메카를 향하여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이슬람력 9월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동안의 금식.
-자선(상공업자는 2.5%, 농민은 생산량의 10-20%)
-하지(일생에 한번은 성지인 메카 순례).

인데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거 같지만
율법인 샤리아에는 어마어마한 세부 규칙 사항이 있다.
모세의 율법도 상당히 자세한 편인데 그걸 10배 쯤 쪼개어 세칙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될 거 같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라면 이슬람의 가르침은 평화와 자비이다.

위의 6가지 믿음 중 4번째 항에서 보듯이 이슬람은 신약 중 예수의 복음서와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다윗의 시편만 인정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나머지 부분은 그 본질적인 내용이 역사적인 전개 과정에서  
임의로 왜곡되고 편집되고 날조되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게
이슬람의 임무인데 이 임무를 완수한 결정판이
알라가 바이블을 최종 수정하여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무함마드에게 내린 계시를 적은
코란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코란은 바이블의 최종 개정 완결판이라는 게 이슬람의 주장이다.

당연히 유태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은 중복 되는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이냐 부터 견해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슬람은 모두 같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얼마 전 가톨릭도
이슬람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인정 했지만
유태교의 여호와는 유태인만의 여호와 이고
개신교는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신이라고 하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는 원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다.
이슬람은 예수의 대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이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원래 아무 죄도 뭐도 없는 백지상태로 태어나 죄를 짓는 거도 자기가 짓는 거며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신에게 회개함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슬람의 주장대로 예수의 대속과 예수를 통한 구원이 빠지면 기독교가 아예 성립이 안 된다.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히틀러 식이라면 이슬람은 무신론자들이다.

지금 트럼프가 행한 일련의 대 이슬람 강경 발언과 취하려는 반 이슬람 정책은
미국이 추구하는 이념을 따르는 게 아니라 미국의 기독교를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 토요일은 결혼식 등 일정이 꽉 짜여 부득이 토요살롱을 못 올리니
독자 여러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2017.03.11. 송 종 호.




토요 살롱 205회 " 미국의 대 IS 대책 "
토요 살롱 203회 "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서울고

 

   
 

제목 없음
   
   
 

HOME

동기회안내

동기사무실약도

졸업40주년기념회비납부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