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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03-25 18:07:38, Hit : 2209, Vote : 513
  토요 살롱 205회 " 미국의 대 IS 대책 "

다음 주말이면 4월이 시작되는데도 쌀쌀한 날씨다.
내복은 진작에 장롱 속으로 들어갔지만 섣불리 동복 정리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주 혜인 내외, 한성이, 충우와 벼락치기 일박 일정으로 다녀온
혜인이의 고향 여수, 돌산에는 바닷가 우거진 동백나무 숲 사이로
새빨간 동백꽃이 드문드문 도드라지게 내밀고 있었다.

여전히 차가운 날씨 탓에 아직은 기별도 없을 거라 내심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공원의 산수유가 하루밤새 연 노랑 앙증맞은 꽃으로 만개해
어스름 새벽의 헐벗은 회색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버렸고
고도가 가장 낮은 아파트 입구 한 길 가 쪽 개나리 넝쿨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건드리면 바로 터질 것처럼 꽃 망우리가 몽글몽글 부풀어 있었다.
새벽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또래의 복덕방 영감님은 아직도 파커를 못 벗은 채,

“ 아무리 기를 쓰도 절기는 못 속이는가 봐요?”

이제는 미세먼지가 봄의 전령사가 되었다.
남쪽 끝 여수에서조차 날은 맑았지만 하늘은 뿌옜다.
동문 가족 마라톤 대회가 4월 30일 여의도에서 열린다고 공지가 되었다.
나로서는 잠실보다는 훨씬 오가기 편하다.
편도 30분은 절약되어 느긋하게 아침 먹고 나가도 된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극심한 미세먼지로 못 뛰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금년에는 아주 심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뛸 생각이다.
매해 그 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년에도 우리 동기 중에 하프를 같이 뛸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년 마라톤 풀코스를 최소한 일회는 완주하고 우리 동기 가족 마라톤 하프 단골 runner 인
은대 부부만큼은 같이 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채인이가 같이 뛰면 좋을 텐데 동문 마라톤 이후인 5월 3일 귀국한단다.
아쉽다.

두환이의 주문대로 200회 기념을 지난겨울 미국 가는 김에
미국에서 와이프와 오토여행을 하고 그 여행기나 쓰려고 했는데 여의치 못해
대신 가볍게 미국 이야기를 쓴 다는 게 늘어질 데로 늘어져 지난 번 까지 5회를 쓰게 됐고
그러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바뀐 계절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애들 엄마가 ‘속 시원하겠다.’ 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나름 절제하느라고 했는데도 일정 부분 주체를 못해 회수마다 장문이 되고 말았다.
동기 홈 페이지에 올리는 거니까 마음 편히 내갈긴 면도 없지 않다.

토요 살롱을 무조건적으로 두둔하고 일방적으로 편애하고 있는 용혁이 조차
편수 마다 캡쳐 해 단체 카카오톡 창에 올리며 내용은 고사하고
우선 그 분량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 넌 도대체 그 독수리 타법으로 몇 시간을 두드리고 있는 거야?’  
이런 용혁이의 극성 때문에 읽기 싫은 글 할 수 없이 억지로 읽은 동기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두서없이 두들기다보니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빠트린 부분도 없지 않아
아쉬움도 많다.

나는 70년대 말부터 비교적 여러 이슬람 국가들을 많이 다녀 본 편에 속한다.
그냥 구경삼아 주마간산으로 다니기보다는 호기심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다녔었다.
이집트, 이란을 비롯한 중동 여러 국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지철이와 다녀 온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등이다.
따라서 무슬림들과도 비록 비즈니스 관계였지만 제법 교류가 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었다.
당연히 금으로 장식된 카이로의 유명한 모스크를 비롯해 가는 곳마다
모스크도 몇 군데 들여다봤었다.

모스크 내부는 주로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는데 장식이 글자와 식물, 꽃뿐이었다.
쓸 수 있는 색깔도 각 색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몇 가지로 제한되어 있다고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슬람은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지해
모스크 내에 사람의 형상이나 심지어 동물의 형상까지 금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점은 교회와 성당 안에 크리스트와 십자가, 성모마리아를 형상화한 예수교와 구별 된다.

내가 만난 무슬림 중 중혼 관계는 한 명도 없었다.
농담 삼아 일부다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거의 모두가 한 결 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이지리아에서 만난 꽤 부유하다는 한 중년의 사업가가
자기가 자기 고향 이웃 동네의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어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어
수년째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 부인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데리고 올 여자의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되고 그 부모에게 지불할 돈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수년이 흘렀지만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슬람은 철저한 남성 우월주의로
마누라를 네 명이나 거느릴 수 있고 여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여성을 비하하고 노예취급하며 박대하는 거로 알고 있지만
그 반대로 여자를 남자와 대비하여 열등하다는 전제하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여하한 이유로도 이혼을 금하고
남자들이 부인 이외의 여성과의 성 관계를 못하게 하고 여자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하는 등
남자들이 대 여성에 관한 한 그냥 내버려두면 거의 전횡하기 쉬운 사회에서
그러지 못하도록 남자들에게 오히려 엄격한 율법을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더더욱 그런 취지였을 거 같다.

우리에게 이란에서 회교 혁명을 일으키고 팔레비를 내 쫒은 호메이니에 대한 인상은
별로 관심도 없지만 일반적으로 별로 좋지도 않다.
종교를 앞세워 이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퇴보시키고 시대를 역행한
옹고집에 집념으로 똘똘 뭉친 냉혹하고 잔인한 독재자에
인권을 탄압하고 유린하고 특히 여성을 속박하고 비하한 늙은 혁명가 정도로
마오쩌뚱, 레닌, 호치민 등의 공산 혁명가에 대해 학교에서나 매스컴 등
말하자면 남들이 심어준 일방적이고 막연한 부정적 이미지와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호메이니는 사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이란 국민들의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성인 반열에 올려놓고 영묘에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앞에 열거한 공산 혁명가들의 사후 모습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호메이니의 일상은 청빈과 금욕, 금식, 묵상 기도였다고 한다.
자신만의 기도장소인 토굴 속에 금식 기도하러 들어가면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빈번했다고 한다.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을 성공한 후 이란의 국가 명칭을
‘이란 이슬람 공화국’ 으로 바꾸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된 거다.
그렇다고 호메이니가 자기 마음대로 바꾼 게 아니다.
1979년 혁명 후 16세 이상 이란 전 국민이 참여한 이슬람 공화정 찬반 투표에서
98% 찬성이라는, 100%에 가까운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 하에 바꾸었다.

서구식 교육은 일체 받지 않고 어려서부터 이슬람 교리 공부를 하고 성직자가 된 호메이니는
무함마드의 생활신조를 따라했고 무함마드의 이슬람 공동체와 동일하고
철저히 쿠란에 입각한 신정일치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다.

호메이니의 종교혁명 이후 40년 가까이 이란 국민들은 전 세계로부터 제재된 경제 봉쇄와
원유 수출 길이 막혀 경제적으로 엄청 고통을 당했고
호메이니 생전에는 이라크와 8년에 걸친 전쟁으로
막대한 인명 손실은 물론 그나마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방어적 군사비에 충당하느라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러 사회간접자본 투자에는 손도 댈 수 없어
국민들이 당하는 불편은 이루 말 할 수도 없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 적용으로 우리 식의 개인적인 자유도 많이 제한되었고
팔레비 시절에 허용되었던 우리 식의 오락거리라는 것도 모두 폐쇄되었다.
즐길 거리라는 게 전무하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재미도 없이 살아야 된다.
속된 말로 호메이니가 팔레비를 쫒아내고 이슬람 공화정이 된 후 국민들은 전쟁에 시달리고
더 가난해지고 더 불편해지고 더 재미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이 여전히 호메이니에 열광하고 있다.
호메이니가 86 세로 타계하자 전국이 비탄 속에 울음바다로 변했고
호메이니의 시신 곁으로 인산인해 추모 인파가 몰려 통제 불가능한 아수라장이 되자
운구가 불가능해 결국 헬기로 옮겼다고 한다.

모두 알다시피 이란은 무함마드 사후 12 이맘을 추종하는 시아파다.
수니파에서 이맘은 단순히 종교 지도자 내지 성직자를 일컫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바로 성인을 말한다.
시아파 초기 12이맘 이후 호메이니에게 처음으로 이맘이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이맘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정식 명칭이다.
이란 국민들이 호메이니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우리나라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첫째 항목이
경제와 일자리 창출 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호메이니는 이런 현실적인 요구와는 정 반대로 국가를 통치하고 국민을 이끌었는데도
사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고 또 다시 일어난 종족 간 내란을 평정하고
아프가니스탄을 통일한 Taliban의 최고 지도자 Mulla Mohamed Omar 도
Mulla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종교 지도자였다.
Taliban은 Talib의 복수로 ‘students' 즉 학생들 이란 뜻이고
Mulla는 ’Teacher" 즉, 선생이라는 뜻이다.

‘선생이 학생들 데리고 싸운다.’ 라는 뜻 아니야? 라고 대뜸 물을 수 있는데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탈리반의 주 구성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부족이고 가장 이슬람 교리에 충실한
파슈툰의 이슬람 학교 학생들이었고 Omar는 오랫동안 파슈툰의 이슬람교리학교 선생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90년대 말에 모스크가 4만 8천여 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그 만한 숫자의 이슬람 교리학교가 있었으니
이슬람 교리에 충만하고 정신적으로 순수하게 무장된 탈리반의 전사는
필요한 숫자만큼 언제나 충원될 수 있었다.
급하면 파슈툰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파키스탄 북부의 이슬람교리 학교에서
지원군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탈리반들의 종교적이고 청결한 행동이 정복지 주민들을 우호적으로 만들고
주민들로부터 자발적인 도움과 보급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국토의 대부분을 회복하고 탈리반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주 원인이 되었다.

Omar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가 이슬라마바드였지만  
수도에서 몇 백km 남서쪽에 떨어진 고향 칸다하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청빈, 금욕, 묵상기도하며 탈리반을 원격 조정했다.
가재도구라고는 낡아빠진 트렁크 하나밖에 없는 허름한 오막살이에서
아주 간결하고 소박한 차림으로 일일 이식으로 연명하며 금식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극도로 전형적인 구도자의 생활이었다고 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폭압과 유례없는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며 지탄을 받았지만
정작 아프가니스탄 국민들로부터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슬람 교리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호메이니와 비슷한 예다.

9.11후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 피신해오자 미국이 즉시 양도를 요구했지만
오마르는 거부했다.
빈 라덴을 넘겨주지 않으면 미국에 지상군 파견의 빌미를 제공하여  
나라가 초토화 되고 탈리반이 궤멸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거절한 이유는
무슬림은 위험을 피해 찾아 온 친구는 목숨을 다해 보호해야한다는
이슬람 교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장 눈앞의 이해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배신을 밥 먹듯 하면서
자신의 이익 선취가 우선인 우리의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트럼프의 공약 중 ‘IS 같은 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게 박멸하겠다.’ 는
히틀러 식의 단말마 구호 같은 공약이 있었다.
물론 IS 가 민간인 포로를 극악한 방법으로 처형하여 동영상에 올리고
세계 주요 도시에서 벌건 대낮에 폭탄 테러를 일삼아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니까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표현이 좀 심하긴 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IS의 이런 잔악하고 야비한 테러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는 거도 분명하다.

2010년을 전후하여 아랍국에 민주화 열풍이 일어 아라비아 반도의 왕국들을 제외한
일인 장기 집권 독재 체제의 민간 정부에서는 반정부 폭동이 도미노처럼 번져
차례로 정권이 무너지고 바뀌었다.
시리아에서도 40년 장기 집권 중이던 아사드 부자의 세습 정권에 반대하여
2011년 무장 봉기가 일어나고 반군이 결성 되고 이틈에 IS도 결성되어 3파전으로
전투가 확대되었다.
초기에 IS 가 연전연승하여 시리아의 대부분의 영토와 이라크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자
반군을 지원하던 영국, 프랑스, 미국이 개입하게 되었고 아사드 정부를 지지하던 러시아도
개입하게 되었다.
그대로 뒀으면 IS에 의해 시리아와 이라크가 함락될 게 시간문제인 상황이었다.

러시아가 합세한 연합군과 일부 아랍국의 합동 공습으로 연일 IS 거점을 공습한 끝에
겨우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되었지만
이 무렵부터 IS의 연합국내의 주요 도시에 대한 백주대낮의 폭탄테러와
잔인한 민간인 참살이 시작되었다.

전투가 장기전으로 끌게 되고 테러가 빈번해지자 테러를 당한 영국, 프랑스가 미국에
지상군 투입을 강력 요청하였고 미국 내에서도 공습만으로는 전투를 끝낼 수 없으니까
지상군을 투입해야한다며 오바마를 압박했을 때
오바마는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를 예로 들며
현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상군 투입은 성공 가능이 없다며 거절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IS 가 현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해외에서 인적 지원자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타 이슬람 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전비도 그렇고 이렇게 오랫동안 저항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지상으로부터는 이라크, 터키, 쿠르드 민병대 연합군과 대처해야 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부 아랍국들로부터 돌아가며 공습으로 맹폭 당하고 있으면서도
버티고 있다.
년 초에 이라크군이 중심이 되어 IS의 최대 전략 거점인 모술을 탈환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대규모 공격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떠들었는데 별 성과가 없었는지
그러고는 잠잠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공언대로 며칠 전 드디어 미국이 지상군을 파견했다고 한다.
우선 1,000명 규모지만 상황에 따라 IS를 궤멸시킬 때까지 증원할 거라고 한다.

IS 는 다들 알다시피 Islam State 의 약자다.
말 그대로 이슬람 공동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의역되어 IS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잔인한 살상과 테러를 일삼는  
무자비하고 악랄한 무장 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공동체에는 나라도 민족도 국경도 없다.
무슬림이면 누구나 welcome 이며 평등하고 동등하게 대접 받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건설한 신정일체 이슬람 공동체를 재건하자는 게 IS의 슬로건이다.
그러니 이슬람 일에 크리스천들이 간섭하지 마라는 거다.
즉 크리스천 국가들이 시리아 내전에서 철수하고 간섭하지 않으면
적어도 IS에 의한 테러는 없을 거라는 거다.
그럼 ‘아 그래? 그럼 우리 다 철수할 테니까 니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
라고 하고 bye-bye! 했으면 수많은 무고한 인명 피해를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런 이슬람 공동체적인 국가가 특히 아랍권역 내에 건설되는 걸 용납하지 않는데 있다.
그에 반하여 IS를 뿌리 뽑는다고 해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들의 여망도 잠재울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렇지않다면 또 다른 증오심과 복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괜히 남의 일에 걱정을 해 본다.
2017.03.25.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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