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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05-06 18:15:21, Hit : 2354, Vote : 560
  토요 살롱 207회 " 제8회 동문 가족 마라톤 대회 "

“종호, 요즘 토요 살롱 왜 안 써?”
그저께 기수가 전화를 해 와 불쑥 묻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1일 206 회를 올리며 5월에나 다시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예고는 했지만 이미 5월에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언제 다시 토요 살롱을 올려야겠다는 데 대해 별 생각 없이 멍청히 있었고
이번 주말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죄 지으려다 들킨 것처럼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검다리 연휴에,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개인적으로는 마무리 되지 못하고 마냥 늘어지고 있는 일까지 겹쳐
차분히 어디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 기수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넘기고
다음 주는 또 다른 핑계로 넘기고 하며 마냥 게으름을 피울 뻔 했다.
사실 그런 외적인 분위기나 내가 늘 하고 있는 일의 성취 여부는 토요살롱 쓰는 거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조건부로 또는 전제 조건을 다는 건 대부분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

‘요즘 다른 일에 바빠서.’
‘요즘 뭐를 하고 있는데 그걸 마무리해야 돼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번 일만 잘 되면.’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나이가 드니까 말이야.’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나. 다 핑계다.
자기한테 유익한 일이거나 소위 사회적 거물이 만나자고 하면 다 팽개치고 달려간다.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임종도 미루고 벌떡 일어날 거다.
이런 핑계와 비슷하게 게으름도 한 몫을 차지한다.
세월이 갈수록 편한 걸 찾게 된다.

한 가지 더 있다. 체념한 척 하는 거다.
‘다 내려놓았어. 그러니까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몰라.’

과연 그럴까.

그러면서 자신과 관련된 이해득실은 더 계산하고 있고 배려 심은커녕 더 옹졸해지고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아량도 더 줄어들어 외고집에 더 자기중심적인 짓거리를 한다.
자기가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게 아니라 자기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는데
사회적 제도에 의해서든 건강 때문이든 할 수 없이 내려놓게 된 걸
무슨 큰 깨달음을 얻어 그런 결심을 스스로 한 거처럼 우아하게 미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불현 듯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이 주어지면
언제 그랬냐며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방네 자랑과 함께 기뻐 날 뛰며 달려갈 사람들이다.
나도 당연히 그 부류에 속한다.
대신 다 내려놓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그걸 듣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대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깜짝 놀라,
“아, 4월에 주말마다 무슨 일이 있어 못 올렸는데 이번 주부터 다시 올릴 거야.”
얼떨결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생각을 피 할 수 없었다.
또 핑계를 댈 뻔 했구나.

“그랬어? 너무 오랫동안 토요 살롱이 안 올라오기에
나는 또 종호가 이제 토요살롱 그만 쓰려나 걱정했는데 이제 안심이네?
기다릴게. “

기수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매주 홈피의 토요살롱 난을 들어가 본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지수와 부활절 지나 바로 만나기로 한 약속도 한참 넘겨버렸다.
갑자기 기수의 해맑은 모습이 그리워진다.

어제 오후 느지막이 술 한 잔 걸친 국환이가 전화를 해,

“종호야, 이번 토요 살롱은 뭔가 좀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이야기 좀 써라.
  최고로 긍정적이고 포지티브하고 희망적이고 힐링이 쫙 되는 걸로. “

국환이는 대선 후보자들에게 요구할 걸 나한테 하고 있다.  

미국 이야기를 7회에 걸쳐 시리즈로 썼는데도 다 끝내지 못하고
아직 서 너 번은 더 써야 할 거 같아 이번 회에도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했으나
다음 회에 쓰려는 주제는 준비도 좀 필요하고 한 달여 쉬다 다시 재개하려니 워밍업도 필요해
이 번 회는 지난달에 있었던 에피소드 위주로 간략히 써 올리려고 한다.

4월 한 달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벚꽃이 폈다 진 게 까마득한 옛날 일 같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바람에 흔들리며 눈을 아지랑이처럼 어지럽히던 개나리의 노랑과
산등성이 드문드문 자세히 들여다봐야 겨우 눈에 띄는 산유화의 연노랑뿐
앙상한 가지와 누렇고 메마른 풀만의 무색채의 음산하고 으스스한 풍경이었는데
고 사이 온갖 색채의 꽃들이 만발하고 가지마다 초록 잎으로 뒤덮여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낮에 30도를 넘어 기상 관측이래 5월 초 최고 더위 기록이라고 하고
옷차림도 하룻밤 새 확 바뀌었다.
반팔, 민소매가 전혀 때 이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교차가 15도나 돼 아직 밤낮으로는 쌀쌀하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이 온통 감기 환자들이다.

뿐만 아니다.
이제는 봄의 또 다른 의미의 전령사가 된 황사를 포함한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어제 밤 11시에 인천 우리 동네의 미세농도는 300을 넘고 있었고 새벽 3시에는
내가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기 시작한 후 최고 수치인 430을 넘고 있었다.
400을 넘는 수치는 처음이다.
참고로 수치가 30이하이면 좋음이고 30에서 80사이는 보통, 80에서 130은 나쁨,
130이상은 아주 나쁨이다.
농도가 60이 넘으면 뛰지 않는다고 나름 정했기 때문에 이달 들어 변변히 운동도 못 했다.
다행인지 연휴라 별 나갈 일도 없어 문 꼭 닫고 집에서 죽칠 수 있었다.

인천뿐 아니라 수도권은 미세먼지 비상사태가 발동되고 그 밖의 지역은 주의보가 내려졌다.

물론 한식날 성묘도 무사히 다녀왔다.
그 때만 해도 아직 날이 쌀쌀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으스스할 정도로 기온이 낮아 개화도 늦어
예년에는 그 맘 때면 절정을 이루어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지만
그 제서야 막 만개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대식이, 남철이와
늘 가는 생고기집 ‘거기’ 에서 6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날씬하고
여전한 진 차림에 여전히 앳 되 보이는 여사장님과
서글서글한 표정과 항상 넉넉한 미소에 걸맞게 땅딸막한 키에 몸통 선이 일자로 푸짐한
조선족 종업원 아줌마의 정에 겨운 서브를 받는 동안
여사장님이나 조선족 아줌마의 싫지 않아 보이는 눈 홀 김을 받을 정도로
가끔씩 두서없이 실없는 소리도 건네 가며
시공을 초월하여 종횡으로 그동안 밀린 수다를 떠는 동안
밤 10시가 넘어 우리 때문에 문도 못 닫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여사장님과 종업원들의 조바심에도 아랑곳없이 죽치다가
주방 아줌마의 눈총 이빠이 받아가며 밤참으로 국수까지 시켜 끓여 먹은 후  
또한 늘 가는 근처 칵테일 바에서 입가심으로 맥주와 칵테일로 이차를 하고
남철이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서야 마지못해 일어선 게 이미 자정이 넘고 있었다.

지난 15년여 동안 벚꽃이 피고 질 무렵인 한식 날 저녁, 대구에서의 변함없는 풍경이다.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대구에서 대식이와 남철이를 만나고 남철이는 서울 구우회 모임에서
한두 번을 더 봤는데 구우회 모임이 시들해지며 서울에서 남철이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대식이는 3월 18일 대식이 큰 딸 혼례 후 인사 예배 때 서울에서 만났고
29일 흥면이 둘째 딸 혼사에 대식이가 상경하여 만났으니 금년에만 벌써 세 번을 만났다.

지난주 일요일인 4월 30일에 개최된 제 8회 동문 가족 마라톤 대회에도 참석했다.
지난해에 극심한 미세먼지 농도로 불참했기 때문에 그리고 내년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번에는 왠간하면 참가하기로 하고
일찌감치 하프 마라톤 참가 신청을 해 두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라고 했다.
미세먼지와 체력이다.
둘 다 더 악화되면 되었지 더 좋아질 리가 없는 요인들이다.

미세먼지 예보는 나쁨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그래도 농도가 이번 경우에는 나름 정한 ‘왠만하면’ 안에는 들어왔다.

예를 들자면 평상시에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여 60이 넘으면
무조건 그날 운동은 취소하지만 이번에는 130만 넘지 않으면, 즉 아주 나쁨 수준만 아니라면 뛴다 라고 정했는데 아침에 체크하니 서울 여의도 근방의 미세먼지 농도가 100언저리였다.
.
아침을 든든히 먹고 행사장인 여의도로 출발하며 혜인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혜인아, 내가 여의도에서 하프 마라톤을 뛰는 데 11시 반쯤 들어올 테니까
그 때 와서 점심 같이 하자.
소머리 국밥이 진국이거든. “

하프 마라톤 출발 시간이 9시 30분이라니까 2시간 정도에 들어오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예전에 2시간 10분대에 들어왔으니까 지난해에는 못 뛰었더라도 그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뛰었으니까 혹시 하고 욕심을 내 본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었다.

행사장은 여의나루 역 2번 출구 나오자 바로 건너편 강변이니까
종합운동장에 내려서도 도보로 20분은 걸어야 했던 잠실 때보다 훨씬 편했다.
행사장에는 이미 동문 밴드가 자리 잡고 꿍꽝거리고 있었다.

24회 텐트는 우리 동문 마라톤 동우회 실세인 준영이의 배려로
기수 별 순서를 무시하고 강변 쪽으로 끝에 자리 잡아
확 트인 시원한 강물과 바로 마주 할 수 있었고
유일하게 테이블과 플라스틱 간이 의자도 2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하프 출발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9시 10분 전쯤 도착했을 때 우리 텐트에 아무도 없었지만
이내 동원이와 윤재 부부가 들어섰다.

두꺼운 미세먼지에 가려 맑은 날이지만 태두리가 사라진 태양도 오렌지색이고
강 건너 고층빌딩도 무슨 공상영화의 폐허가 된 미래 도시처럼
을씨년스럽게 형체만 들어내고 있었다.
들이키는 공기가 목구멍을 마디마디 핥는다.

출발 10분 전 간단한 준비운동을 위해 하프 출전자들이 둥글게 만든 원이 초라하다.
3회 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래로 매년 수가 줄어 이번에는 불과 20,30여명 남짓이다.
비록 지난해는 불참했지만 매년 나오셨던 맨 위로 12회 선배를 필두로 19회, 21회, 23회 등
선배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약간은 실망을 하고 무조건 꼴찌니까 서두를 거 없이 완주나 하자 라는 심정으로
맨 뒤에서 슬슬 뛰기 시작했다.
여의도에서 가양대교 쪽으로 왕복 코스였다.

3km 정도를 달리자 약 100m 앞에 검은색 런닝과 검은색 팬티의 제법 구색을 맞춘 패션에
머리에 수근을 두르고 뒤뚱거리며 뛰고 있는 마라톤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동글동글 통통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매도 그렇고 폼이 기울어지고 어색한 게 초보자임에 틀림없었다.
그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몇km를 더 달리자 서서히 거리가 좁혀져
반환점을 몇 km 앞두고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같이 갈까? 몇 회 세요?”

“26횝니다. 처음 출전했고요. 산에는 열심히 다녔는데 달리기라고는 처음 뛰어보는 겁니다.”

“처음에 하프? 무리 아니야?  뛰다가 힘들다 싶으면 무조건 쉬었다 걷다 해.”

“그럴 겁니다. 목표가 완주니까 그래도 걸어서라도 완주는 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꼴찌인줄 알았는데 형님이 뒤에서 뛰시는 줄 몰랐습니다.”

어쨌든 같이 뛰니까 힘이 덜 들었다.
반환점을 돌자 늘 참가하시던 12회 선배가 걷고 있었다.

“선배님, 아까 출발 할 때 안 보이시던데 엄청 빨리 뛰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응, 나는 먼저 출발했어. 그리고 나는 여기까지. 어서들 먼저 가.”

반환점을 지나 좀 더 가자 26회 후배도 쳐지기 시작했다.
5,6km를 남겨두고 30도를 육박하는 때 이른 더위 탓인지 그 동안 들이마신 미세먼지 탓인지
전날 흥면이 둘째딸 잔치에서 퍼 마신 술 탓인지 온몸의 맥이 다 풀리고
아랫배도 찢어질 듯 통증이 오고 숨도 차고 발바닥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3년 전 춘천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뛸 때 35km 지점을 통과했을 때와
흡사한 증상이었다.

피니쉬 라인을 완전 탈진 상태로 통과해 우리 기수 텐트로 가니까 20명 가까운 동기들이
점심을 들며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전날 동기 야유회를 다녀왔는데도 예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숫자다.
산우회 회원이기도 한 준영이의 영향 탓인지 산우회 회장 영송이를 필두로
산우회 회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혜인이 부부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하프 완주 한 거야? 우리 나이에 대단하다. 뛴다는 거 자체도 엄두가 안 나는데 말이야.
  그런데 혜인이한테는 11시 반에 들어온다고 했다며? “

재문이가 자리를 권하며 낄낄댔다.

“죽는 줄 알았어.
혜인이가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중간에 포기할 수가 있어야지.
혜인이에게 자랑하려고 죽으라고 뛴 거야. “

“ 종호야, 풀코스도 뛰어봤니?”

효송이다.

“3년 전에 춘천에서 풀코스 완주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죽는 줄 알았어.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


“그래? 넌 보통 종자하고 다르구나. 이 나이에 마라톤 완주를 하다니.”

“무슨 소리야? 채인이는 미국에서 봄가을 일 년에 두 번 오는데 올 때마다 두어 달 머물며
마라톤 풀코스를 서 너 번은 뛰니까 일 년에 일곱 여덟 번씩 완주하고 있고
민 영문이는 매년 한 겨울 한 여름 두 달만 제외하고 매달 일 년에 열 번을 뛰어.
간간히 도중에 해외 유명 마라톤 대회에 원정도 가고.
아마 금년 중에 풀코스 100회 완주하게 될 걸? “

“사람도 아니구나. 그건 그렇고 12회 선배가 하프 출전했으니
종호 너도 앞으로 12년 동안은 하프 뛰어야겠네?“

다들 웃었지만 금년 동문 가족 마라톤 대회 하프 참가자중
이미 내가 최고령 최고 기수 완주 자이었다.
2017.05.06. 송 종 호.




토요 살롱 208회 " American Revolution "
토요 살롱 206회 " 미국 우선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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