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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06-03 17:15:36, Hit : 2647, Vote : 644
  토요 살롱 211회 " 프리메이슨이 미국 건국에 미친 영향 "

토요 살롱 몇 번 쓰는 동안 5월이 다 지나가버렸다.
3월에는 여전히 한겨울과 다름없는 회색 일변도의 메마르고 황량한 풍경에 날씨도 쌀쌀하고
4월에는 한 달 내 미세먼지와 황사에 시달리느라 미풍이 부는 화창한 봄날을 만끽하기는커녕
형형색색 화려하게  막 터져 나오는 각종 꽃송이들의 자태와 내음을 감상할 새조차 없었고
5월 들어서자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폭염이 바로 들이닥쳤다.

이런 식이라면 짧아진 봄이라고 하기 보다는 실종된 봄, 사라진 봄,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남은 봄, 옛날이야기 거리로만 남을  봄이 될 지도 모르겠다.

새싹이 돋아나고 봄비가 대지를 적심에 따라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들판을 수놓고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실어 오는 따뜻한 온기에 새로운 희망도 솟구치는
그런 봄은 이제 추억에만 남이 있으려나 보다.
매일 미세먼지 예보에 주의해야 하고 바로 들이닥칠 더위가 두려워지는 봄이 되고 있다.

더위만 먼저 찾아 온 게 아니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니까 잠깐 덥다 제 자리로 돌아가겠지 하고
무심히 방심하고 있다가 어느 날 밤 모기에 잔뜩 뜯기고 나서야
‘아니 이거 정말 여름 아니야?’
자다가 깨어 야밤중에 모기 매트를 찾고 부산을 떨며 한참 투덜대고 나서야
봄은 이미 저만치 되돌릴 수 없는 수레바퀴가 남긴 지나간 과거의 자국이 되고 말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비도 오지 않는다.
어쩌다 오다가가 물차가 한번 지나가는 정도도 되지 않게 찔끔 흩뿌리는 비는
먼지도 채 적시지도 못한 채 흙냄새만 들쑤시다 말 정도다.
곧 장마철이 닥치겠지만 요 몇 년은 마른장마였다.

무덥고 후덥지근하고 짜증나는 길고 긴 여름의 시작이다.

6월 첫째 날 금년 들어 처음으로 부고가 공지되었다.
주 정노는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이름이다.
일면식도 없었던 거 같다.
총무 대진이에 의하면 연대 정외과를 졸업한 거 까지는 아는데 그 후 완전히 소식이 끊겨
동기 회 에서도 소식 불명으로 인적사항이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도 연대 정외과를 같이 다닌 태서로부터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마침 문상을 다녀 온 대진이가 고인의 동생과 대화를 나눈 바에 의하면
일 년 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을 당시
이미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생전에 친분이 있든 없던 경희궁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미래의 꿈을 같이 나눈 동기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Free Mason의 의미를 석공들이 건설 현장을 찾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데서
유래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인 거 같다.
지난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석공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날품팔이 노가다가 아니었다.
도제, 숙련공을 거느린 장인들이고 발주자로부터 직접 도급을 받는 건설회사 사장들이었다.

또 정식 호칭은 ‘Free, and Accepted Mason’ 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도 어떤 확증도 없이
회원 가입 할 때의 의식이 신비적이고 밀교적이라고 소문난 데서 비롯한
막연한 추측에 의한 추정이 아닌가 싶다.

프리메이슨의 조직이 중세 석공들의 길드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자기들을 스스로 떠돌이 석공들이라며 Free 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마다 지역마다 독립된 길드가 있었으니까
초기에는 각 길드 간 연대도 느슨했을 것이고 서로 통일된 규칙 같은 거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엄연히 나와바리 라는 게 있었을 텐데 여기 저기 떠돌아다닐 정도로
자기가 속한 길드의 영역을 벗어나 영업활동을 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Free Mason 이라는 명칭은
석공 길드가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활동영역이 확대되고 조직도 비약적으로 커져
단순히 석공들의 친목 및 협력단체로서의 의미에서 훨씬 진일보하며
각계각층의 엘리트들을 영입하여 상류 부르주아 인텔리들의 사교모임 화 하는 과정에서
이들에 의해 나름 독자적인 도덕적 행동 양식과 가치관, 세계관, 종교관 등이
‘평등과 자유의 추구’ 라는 기초 토대 위에 확립되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지고
불려 진 게 아닌가 싶다.

가톨릭에서 프리메이슨이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카발라와 연관이 있다고 하여
박해의 주원인으로 삼고 프리메이슨으로 가입한 사실이 들어나는 즉시 파문하였으나
유대교의 카발라가 전래의 지혜와 믿음으로 신비한 체험을 통해 신을 접할 수 있다며
유대교 자체가 카발라의 대중화라는 주장과 프리메이슨의 종교관과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프리메이슨의 종교에 대한 관점인 일종의 deism 과는 차이도 많다.

더구나 프리메이슨이 역사상 유대교와 교류하거나 영향을 주고받은 경우가 없었던 거 같고
프리메이슨에 유대인들이 가입했다는 흔적도 없는 거 같다.
유대인과 프리메이슨은 이상이나 추구하는 바는 같을 지라도
오히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쟁관계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당시 가톨릭은 개신교와 유태교, 프리메이슨을 싸잡아 사탄의 3총사라고 매도했다.

프리메이슨은 지금은 그 영향력이 많이 약화 되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 약 600만 명의 회원이 있고 그 중 약 500만 명이 영국과 아일랜드,
미국에 편중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2개의 지부가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진 미국의 회원 수가 200만에서 400만 명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이렇게 회원 수가 부정확한 이유는 프리메이슨이 워낙 비밀 결사조직으로서
공식적인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데다 각 지부 조직이 독립성을 유지하며
지부간의 연대도 없고 총괄하는 본부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리메이슨의 집회 장소를 Lodge 라고 하는데 미국의 대도시의 중심에
필라델피아의 시청 옆에 있는 Lodge Hall과 같이
Lodge 라는 이름이 붙은 웅장한 대형빌딩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프리메이슨의 지역본부이거나 집합소들이다.

전후 한 때 일본에서 지도급 정치가들을 포함하여 많은 회원이 가입하여
일본 정 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직 대통령 중 한 두 명이 프리메이슨과 연관이 있다는 루머가 있다.

1717년 영국에 총본부를 설립하면서 공개적인 활동을 하게 되고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박애주의를 표방하면서 fraternity 같은 친목단체로 출발했으나
점차 인권과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엘리트 인텔리들의 사교클럽으로 발전하게 된다.

정치, 문화, 과학 등 각계의 유명인사 및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대거 가입하게 되고 당시 발흥하던 계몽주의 사조에 호응하여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 각국과 미국으로 그 조직과 이념이 확산하게 된다.

이렇게 사상적으로 공통 선을 추구해 가면서
도덕적으로도 공동 행동 강령 같은 지침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사회 지도자 또는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거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엘리트들의 모임답게
개개인의 도덕성과 박애정신, 준법정신을 강조하게 된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프리메이슨 회원들만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리스트, 시벨리우스 등
음악가와 스탕달, 괴테, 푸시킨 등 문학 작가들,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 계몽 사상가들,
그리고 ‘종의 기원’을 집필한 찰스 다윈 등이었다.

이렇게 조직이 커지고 인텔리 엘리트들 중심으로 정예화 되면서
종교적인 성격도 가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종교관은 어느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종교를 추구한다.
즉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했음은 인정하되
창조주가 그 이후의 인간사나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창조주가 반드시 기독교나 유태교의 여호와일 이유도 없고
이슬람의 알라일 필요도 없다는 거다.
단지 초자연적인 어떤 힘, Super Being 으로서만 이해가 되면 된다는 거다.

창조주가 세상일에 간섭 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마다 등장하는
자신의 신들이 세상에 일으킨 초자연적인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 종교에서 의식을 강조하거나 초자연적인 계시를 믿음의 기본으로 삼는 걸
이성적 약자를 상대로 한 기만행위라고 비웃는다.

종교의 개입 없이도 인간의 합리적이고 신성한 이성에 기초한 논증과 자연에 대한 관찰만으로
신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理 神 論, 즉 deism 적 입장이다.
즉 종교나 경전 등에 의존하지 않고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종래의 입증되지도 않은 예언이나 기적 등은 존재하지 않았던 일로 부인해 버린다.

이런 주장은 동양의 유교와 비슷하다.
유교는 하늘(서양의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내세나 신에 대한 별도의 경전이 없다.
그러나 하늘의 뜻에 순응해야 한다고만 한다.

우리 동기 조 혜인 서강 대 사회학과 교수의 필생의 역저,
‘동에서 서로 퍼진 근대 공민 사회’ 에 의하면
이와 같은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 자체는 물론
계몽주의 시대의 deism 역시 당시 서양 철학 계와 사상계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유교의 절대적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프리메이슨의 종교관을 보다 더 들어가 보면
인간의 참된 기원은 인간 자신에게  본래부터 잠재하고 있는 인간의 신성에 있고
이를 깨닫고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성품 중 영적 요소는 물질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고 이런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구원을 얻는다 라고 하는
어찌 보면 힌두교나 불교의 해탈하는 과정과 비슷한 종교관이다.

그러나 힌두교나 불교가 염세적이고 소극적인 현세관인데 비해 프리메이슨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속세관이다.
인간에게는 본래부터 신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데서 출발하여 자기 노력의 여하에 따라
개개인의 창의력을 무한대로 개발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개인의 운명은 자기 자신에 의해 선택되고 전개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간의 신성을 전제한 종교관을 더욱 심화시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전래의 지혜에 대한 앎과
전래의 신비로운 체험을 통해 우주의 궁극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질적인 변화를 체험하는 걸 목표로 하게 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 로부터 유래 된 서구 전래의 신비주의에 토대를 두기 때문에
가톨릭으로부터 유태교의 신비주의 카발라와의 연관되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내세를 굳게 믿고 이를 그 유명한 삼단 논법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인간은 사후 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고
그 곳이 현세보다 월등히 좋은 곳이라고 믿었다.
나이 70이 넘어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되어 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간수 등
소크라테스의 추종자들이 탈옥하여 국외 탈출을 간청하였으나
‘나는 이 세상에서 살 만큼 살았고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내가 온 곳으로 되돌아 갈 것이므로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독배를 들겠다. ‘ 며 권유를 뿌리쳤다.
군사 독재 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던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며 독배를 들었다는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소크라테스가 늘 입버릇처럼 교훈한 ‘너 자신을 알라.’ 의 의미를
스스로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진리 탐구가 시작 된다 라고
해석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윤회를 주장한 점이 각 개개인이 스스로 참된 자아를 깨달음으로서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힌두교나 불교의 진리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즉 프리메이슨은 소크라테스, 불교 힌두교의 윤회설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프리메이슨의 종교관은
인간의 이성보다는 내면의 감각 현상들에 인간성의 진실이 존재하고  
이러한 자아를 확인하여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하여
개인의 가능성과 창조적 가능성을 극대화 할 수 있으며
인간과 자연은 일체이므로 자연의 과학적 분석 대신 상상력으로 자연을 통찰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 와 이를 발전시킨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자들의 주장과 부합하여
많은 낭만주의자들과 이를 계승한 상징주의, 초현실주의자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정신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종교적으로는 deism 적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서구 전래의 신비주의와 윤회를 수용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교도 포용할 수 있고
이념적으로는 개인의 존엄성, 자아의 확산과 이로 인한 무한한 창의성의 개발,
문화의 통일을 추구하고
세속적으로는 만인 평등주의에 입각한 형제애와 사해동포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학자, 과학자, 작가 음악가, 미술가, 정치가들의 모임인 프리메이슨이
1717년 런던에 총 본부가 설립된 후 주위의 질시와 가톨릭으로부터 탄압이 심해지자
기회와 자유의 신천지인 미 대륙으로 대거 이주하게 된다.
18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런던의 본부를 아예 미국으로 옮기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초대 교주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워싱턴 초상화에 차고 있는 칼과 짚고 있는 지팡이가
프리메이슨의 최고 지도자임을 상징하는 징표라는 주장도 있다.

1793년에 착공하여 1800년에 완공 된, 미 국회의사당의 착공식을 그린 그림에
주춧돌을 내리는 조지 위싱턴의 복장이 프리메이슨의 복장이라고 한다.
미 국회의사당 홀 정 중앙 돔 천장에 13주를 상징하는 13명의 천사에
둘러싸인 조지 워싱턴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대형 초상화 속의 조지 워싱턴의 복장도
프리메이슨의 복장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홀 중앙 천장에서 그 밑을 나다니는 모든 의원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의
워싱턴 초상화를 그린 이유는 물론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겠지만
초대 대통령이며 지도자의 롤 모델을 제시한 조지 워싱턴이
눈을 부릅뜨고 인민을 대표하고 대리하는 의원들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로
워싱턴을 신격화한 면도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런 우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국가라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보여 진다.

미국 혁명의 일등 공신 토마스 페인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기록은 없으나
프리메이슨의 이념과 이상과 궤를 같이 하고 종교적으로도 프리메이슨의 종교관과 같은
理神論者, 즉 deist 이었음은 확실하다.

페인은 미국 독립 후 곧 이어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 일조하고자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혁명 후 프랑스 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 영국을 오가며
이신론적 입장에서 쓴 'The Age of Reason' , ‘이성의 시대’ 가
무신론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지난날의 독립 전쟁의 영웅 대접은커녕 추악한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냉대와 빈곤과 고독 속에 비참한 일생을 마쳤지만 페인이 쓴 'Common Sense'의 바탕이
프리메이슨의 이신론과 입장을 같이 한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의 상당수가 프리메이슨이었다고 한다.
제퍼슨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핵심멤버였던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은
확실한 프리메이슨이었다.
제퍼슨에 대해서도,
제퍼슨이 그리스도의 기적 전승을 천박한 속임수라고 비난한 데서
프리메이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프리메이슨의 이신론을 지지하고 있음은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독립 선언서의 창조주는 이신론에 입각하여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Super Being', 자연의 법칙, 또는 초 이성, 즉 유일 신, 창조주로서 존재는 하되
세상사에 간섭하지 않는 그런 신이라고 볼 수 있다.

프리메이슨은 누구나 각 개인은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고 이의 확산과 극대화를 통해
자신의 질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고 하기 때문에 혈통, 뿌리 같은 걸 인정하지 않는다.
변화를 경험한 자신은 이미 그 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거다.
이를 확대하여 미국의 독립과 연관시킨다면 혁명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한 미국은
그 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로 탄생한 거로 간주되고
그 전에 존재하던 뿌리나 민족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다.
새로운 민족으로 재탄생한 거다.

이렇게 뿌리나 당초 속하던 민족, 혈통을 부정하고 혁명이라는 질적 변화를 경험함으로서
새로 태어난 하나의 민족이라는 프리메이슨 적 관점이 프리메이슨의 정신인
형제애 및 사해동포주의와 맞물려 미국 건국의 주요 정신적 요인이 되고
인종 전시장 같은 미국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다음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퇴임을 선언하고
미리 언론에 기고한 고별사의 일부분이다.

“ 국가의 연합은 여러분을 한 민족으로 통일시켜 줍니다.
  이는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통일은 여러분의 지주로서 국가의 안녕과 외국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는 여러분의 안전과 번영, 소중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연합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집단이 다양한 책략을
  구사하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나라를 보호해야 하며 국가를 분열시키는 어떠한 기도도
  엄숙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

조지 워싱턴은 미합중국의 테두리 안에 속하는 인민은
과거의 뿌리와 관계없이 한 민족이라고 선언했다.
2017.06.03. 송 종 호.




토요 살롱 212회 "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및 러시아 혁명과의 비교 "
토요 살롱 210회 " 미국 건국 정신의 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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