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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08-12 21:03:04, Hit : 2461, Vote : 635
  토요 살롱 218회 " 염 색 "

낮에는 아직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있지만 밤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 하다.
열대야는 사라졌다.
엊그제까지 열대야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뤄 그렇게 짜증을 내고 진저리를 쳤었는데
불과 하루 이틀 사이 선풍기 신세지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밤새 후덥지근하게 푹푹 찌던 더위를 까맣게 잊고 있다.
인간이란 게 얼마나 간사한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잘 까먹고
자기 자신이나 자신과 얽힌 주변 환경의 변화를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그리고 자기편의적으로 받아들이는지 자신을 돌아보면 볼수록 민망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겨우 이정도 주제에’ 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도 하고
‘별 수 없잖아?’ 하고 체념케 하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러기나 말기나, 뭔가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쏜살같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나른한 한여름 오후같이 흐름을 잊은 채 정체되어 있는 거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난 후에는 언제나 야속하기도 하고 아쉽기만 한 세월은
‘어어’ 하는 사이 이미 저만치 앞장서 가고 있다.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나고 8월도 이미 거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머리 염색을 하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이다.

당시 실제 나이로는 아직 50대 중반이었지만
어딜 가나 누가 보더라도 최소한 10여년 더 위로 보게 하는 데는
소시 적부터 트레이드마크인 이마의 주름과 입 위로 깊이 패인 팔자 주름이
한몫을 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백발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네요. 그래도 일흔은 아직 안 넘으셨지요? ‘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 덕담이라고 건네주는 대체적인 인사말이었다.

그런 덕담(?)이란 걸 들을 때마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예 라고 하면 나중에 거짓말이 뽀록나 상대방을 난처하게 할 때까지 계속 거짓말을 해야 되고
아니 라고 하고 실제 나이를 밝히면 기껏 자기 딴에는 듣기 좋아라고
아부 성 인사말을 건넨 상대를 무안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 크게 불편한 건 아니어서 나이를 적게 보이려고 염색을 하거나
이곳저곳 손대며 치장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더더구나 머리를 염색해 젊게 보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아니, 그렇게까지 하고 다녀야 하나.’ 하고 염색하는 사람들을
속으로는 언짢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직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아무 지장이 없는데 껍데기만 보고 경로대우를 하려고 하고
뭔가 조심스럽게 예의라는 걸 갖추려고 하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워하며 가급적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걸 피하려는 대상이 된 게 너무 싫었다.

회의나 토론 같은 걸 하더라도 나이로도 거의 최 연장자 이었지만
겉보기에는 다른 참석자와 한 세대 정도는 차이가 나는 거로 보여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거나 제안을 하면 서로 눈치만 보며
자기들 이야기를 잘 하려 하지 않아 자기들도 불편했겠지만 나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몇 년 더 지나 60대가 되면 얼추 나이가 비슷하게 따라 가겠지’ 하고
버텨볼 생각이었지 머리털을 염색할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노안’, ‘백발’이 송 종 호의 identity 인데 늙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
이걸 어거지로 색칠하여 그렇지 않게 보이면 송 종 호가 아니잖아 라는 고집도 있었다.

그렇게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내다 결국 염색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젠가 토요 살롱에서 밝혔듯이 막내의 충격적인 한마디 때문이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막내가 오랜만에 미국 집에 들른 아빠를 잠깐 올려다보더니,

‘아빠,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아빠 머리가 까만 걸 보지 못했어.’

매사 무덤덤하고 여간한 일은 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툴툴 털어버리는 큰 애와 달리
작은 녀석은 그래도 감성이란 게 좀 있고 감정 표현도 좀 할 줄 알고
매사 싫고 좋고도 분명한 편이다.

내가 마흔 둘에 막내를 봤으니까 그것도 그 해가 다 지나가는 12월 24일에 태어났으니까
막내가 태어날 때는 ‘야, 말이야, 송 종호는 머리가 하얗게 다 세었어.’ 로
세간에 회자된 지도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라
이미 오래전부터 ‘백발의 송종호’ 로 익숙해져 있던 때였다.
그러니 막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빠는 검은 머리가 거의 없었다.
어릴 때 데리고 다니면 모두 손자로 이해했다.

막내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당시 한 달에 한번 꼴로 머리 자르러 단골로 다니던 동네 미장원에 들렀다.
김포 고촌에 거주하고 있을 때였다.

“ 커트하고 다듬기만 하실 거지요?”

머리 깎으러 갈 때마다 염색하라며 강권하기도 하고 성화도 부리기도 하고
살살 교태를 부려 봐도 꿈쩍도 않자 어느 순간부터 포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선지 대답이 뻔한 줄 알면서도 자리에 앉아 커버를 두른 후
가위 대기 전에 반드시 건성으로 시큰둥하게 지나가는 말투로나마
인사말 삼아 반드시 물어보는 말이다.

“ 아, 오늘은 염색도 좀 하려고.”

“ 어머, 염색요? 어머나, 어머나.”

염색 후 반응은 과히 파격적이었다.

‘ 훨씬 젊어지셨어요.’부터,  ‘종호는 점점 젊어져’ 까지.
심지어 옛날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은

‘몰라 뵙고 그냥 지나칠 번했습니다.
우리 사장님은 머리가 하야야 하는데 까마니까 우리 사장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다.
지난 해 내가 경영하던 회사에서 근무하다 시집간 여직원이 입원하였다고 하여 문병 갔더니
마침 간병하고 있던 여직원 어머니가,

“아이구, 사장님, 이렇게 문병까지 오시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엄청 젊어지셨어요. 빨간 티까지 입으시니까 청년 같으세요.“

그 어머님은 그 여직원이 시집가기 전 아직 우리 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15여 년 전 그 여직원의 어머님이 거주하시던 백령도 근처 덕적도라는 섬에
직원들과 함께 일박 일정으로 야유회 갔을 때 뵈었었다.
노인네의 호들갑인지 노안이라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셔서 이었던 지
15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젊게 보인다고까지 했다.
머리털이 까만 탓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자기 딸애가 다니던 회사 사장은
나이에 관심을 둘 필요도 없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이라는 선입견이 박혀 있었던 거 같다.
아마 자기와 비슷한 연배라고 생각하고 계셨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 염색을 중단 한 건 동네 커피숍의 뚱땡이 아줌마 바리스타가 언젠가부터,

“회장님은 체격도 있으시고 품격도 있으셔서 백발이 훨씬 어울릴 테니까 염색하시지 마세요.
처음 얼마간은 어색하시겠지만 뿌리가 올라올 때까지 몇 달만 참으시면 돼요. “

볼 때마다 염색한 머리를 쳐다보고 눈까지 찌푸리며 끈질기게 권유를 한 게 계기가 되었지만
이번에도 막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막내가 이러라 저러라 한 건 아니었지만 막내가 어느 듯 대학 졸업반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머리가 허옇더라도 아무도 막내를 손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흔히 있는 늦둥이로 본다.
구지 염색을 하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염색을 중단하고 서서히 본색이 들어나자 염색을 처음 했을 때와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송종호의 머리가 희던 까맣던 아무 관심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중 한 두 명은 단도직입적으로 ‘너 왜 염색 안 해?’ 라며
이유를 물어보기 보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걸 왜 안하고 다니느냐며
의무를 게을리 하는 애나 부하직원 책망하듯이 물어 봤다.

인천의 27회 후배도,

“ 종호형, 염색 좀 하세요.
  염색해도 형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데 그러고 다니니까 14회 선배님보다
  더 선배같이 보여요. “

또 사업을 잘 하고 있는 사회 후배 하나는,

“ 형님, 혼자 계시니까 귀찮으셔서 염색 안 하시는 거 같은데
  요새 간단하게 염색할 수 있는 좋은 염색약 많아요. 귀찮더라도 좀 하고 다니세요.
  늙고 추하게 보이는 거가 뭐 좋습니까? 자랑이 아니잖아요?
  정광의 김 회장님 잘 아시잖아요? 형님보다 10년은 위시잖아요?
  그런데 형님보다 열 살은 젊게 보이시잖습니까? “

이 후배는 나보다 열 살 아래인데 아직 흰머리 하나 없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한결 같다.

“ 내가 지금 경로 우대 대상이 되는 나이야.
  열 살 적게 보인다고 해야 50대 중반으로 보는 거고 열 살 더 본다고 해야 70대 중반이야.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
  이제는 있는 그대로 살 거니까 더 이상 말리지 말아 줘. “

나이가 덜 들어 나이 들어 보이는 거야 미관 상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외관을 가지고 놀림을 받으면 기분도 나빠질 수 있겠지만
나이 들어 나이 들어 보이는 거야 자랑은 아니겠지만 추한 거가 될 수는 없는 거고
주눅들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나이가 들어 늙은 걸 그냥 편안히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지난 해 막내 대학 졸업식에 다녀온 후부터 이발소에서 미장원으로 다시 바꿨다.

70대에 접어든 명동 이발관 주인이 나이가 먹어서인지 귀가 안 들려서인지
스피커 볼륨 이빠이 올린 목청으로 이발하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며
혼자 웃고 분개하고 일장 연설을 하는데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만 떠들어대면 그나마 참을 수 있었겠지만 중간 중간에 이미 자기가 내린 결론에 대해
묻고 의견을 구한다.
한번 대꾸를 잘못했다가 나름 일목요연 정리가 잘 된 논리로 침을 튀기며 훈계를 해 대는데
그거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느라 식은땀을 흘리며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종일 TV 틀어 두고 뉴스와 대담 프로를 듣고 있어 아는 거도 많은데다
TV에 출연한 소위 전문가들의 지식을 인용하니 잘못 반론을 제기하다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흔들어대는 가위가 머리에 닿을 때마다
이거 잘못하다 혹시나 하여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고 섬찍해지고 간이 콩알만 해 진다.

게다가 이 양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도 별로 없는 거 같았다.
부인이 이발소에 붙은 방에 동거하고 있었지만
자기 남편 이야기에 콧방귀도 안 뀌는 거 같았다.
그러니 누가 붙들리면 그 열변을 다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대형 사건이 좀 많았어야지
그렇지 않아도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을 텐데
그거 들어야 되는 고역을 견디며 까지 비록 한 달에 한 번에 불과하지만
명동 이발소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이왕 미장원으로 바꾸는 거 그리고 간단히 머리만 커트하는 거니까
집에서 제일 가까운 미장원으로 택했다.
초등학교 일학년의 딸아이를 둔 30대 말 아줌마가 혼자서 운영하는 미장원이었다.

처음 들어설 때부터,

“ 염색은 안 하시고 커트만 하실 거지요?”

“ 예,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 선생님은 염색 안 하시고 그냥 자연머리가 더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그러나 가끔 딸아이가 방과 후 가게에 들려 마주치게 되면 선생님이 아니라

“ 할아버지한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한다.

백발을 되찾자 달라지는 풍경이 몇 가지 있다.
새벽에 공원에서 만나 운동을 같이하는 동년배로 보이는 복덕방 할아버지가
내가 흰머리가 들어나는 걸 보고,

“아니, 그 동안 염색하고 다니셨시유? 흰 머리가 많으시네.”

“염색했었지요. 본래는 백발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도 있는데 구지 염색하고 다니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이제는 염색 그만 하려고요. “

이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그 복덕방 할아버지도 지금 완전히 백발이다.
이 양반이 염색을 하고 다닌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었다.
그 이후 까만 머리를 하고 공원에 운동하러 다니던 노인들 중 한둘씩 흰머리로 바뀌더니
이제는 백발이 대세가 되었다.

또 있다.
염색을 한 후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
십중팔구는 자리 양보를 받는다.

우리가 어느 듯 60대 중반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별일 없으면 8월 23일 미국 집에 다니러 떠나 9월 17일 돌아 올 예정이다.
다음 주는 일이 바쁜데다 떠날 채비도 해야 해 토요 살롱을 쉬어야 할 같고
미국에서 돌아오는 9월 17일이 일요일인데 그 다음주말에는 성묘를 다녀와야 해
떠나는 거도 돌아오는 거도 변수가 많아 확정적이지 않지만 이 일정대로라면
다음 토요 살롱은 9월 말에나 올릴 수 가 있을 거 같다.

비록 염화의 지옥 같던 찜통더위 여름의 한 고비는 넘긴 거 같지만
토요 살롱 독자 여러분들!!
남은 여름 건강히 잘 보내기 바랍니다.
2017.08.13.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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