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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09-30 17:41:15, Hit : 2594, Vote : 619
  토요 살롱 220회 " 경로 우대 "

주초만 하더라도 서울의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 9월 말 기후로는 86년 만에,
즉 기상대에서 일기예보를 시작한 이후 최고의 더위라고 법석을 떨 정도로 무더웠고
빗방울이 한  두 방울 스쳐지나간 수요일만 하더라도
반팔셔츠에 걸친 여름용 홑겹 재킷이 버거웠는데
그것도 무슨 의미가 담긴 비라도 되는 듯이 다음날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새벽에는 10도를 겨우 넘어 쌀쌀하기까지 하다가 기온이 좀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새벽에는 맨살에 닿는 공기가 서늘하고 낮에도 25도를 넘지 않고 있다.

9월이 다 가도록 늦더위의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하룻밤 새 가을의 한복판에 와버렸다.

내일 비 예보가 있어서인지 오늘은 구름이 좀 끼었지만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파란 하늘 아래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끈질기게 물고 버티던 잔서를 깨끗이 날려버린 거 같다.

게다가 미세먼지도 없다.
지난 주말부터 주초에 걸쳐 느닷없이 북서풍을 타고 몰려온 미세먼지가
대기가 정체되는 바람에 하늘을 잔득 덮고 있었으나 비 같지도 않은 비였지만
그나마 동반한 바람이 미세먼지를 깨끗이 몰아내 맑고 서늘한 공기가 청량감을 더해 준다.

날이 밝기도 전부터 그렇게 진저리치듯이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자취를 감춘 자리를
어느새 쓱쓱 가냘픈 소리로 처량하게 울고 있는 쓰르라미가 대신하고
며칠 전까지 극성을 부리던 산모기도 아침 기온이 떨어지며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이른 아침 공원의 에어로빅 아줌마들은 물론 운동 객들의 옷차림도 확 변했다.
알록달록한 색상에 반팔, 반바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하기야 추분이 지난지도 일주일이나 돼 날도 많이 짧아져
아침 6시가 다 되어도 공원에 늘어선 가로등이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백열등을 밝히고 있고
먼 하늘부터 희끄무레 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방이 깜깜한 채
정작 동녘하늘은 아무런 기척도 없다.

오늘이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늦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지난 화요일 아침, 총무 대진이가 부고를 알려왔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이름이었다.
신 영 균 이는 이과라 나하고 한 번도 같은 반을 한 적이 없는데다
학교 다닐 때 교외 활동을 같이 한 적도 없고 서로 마주친 기억도 없어 전혀 몰랐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동기 회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후 어쩌다 만나면 악수하고 안부도 묻고
자연스럽게 반가워하는 정도의 사이로는 발전하였었다.
그럴 따마다 씩 웃으며 반드시 건네는 말이,
‘어, 송 종 호, 토요살롱 잘 읽고 있어.’

언제나 하얀 피부와 해맑은 눈웃음에 귀공자의 준수한 용모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어이없이 당한 불의의 사고였다고 한다.
부고 당일 날 신우 회에서 구 자경 목사의 집례로 위로 예배를 드린다고 공지하였으나
참석하지 못하였다.
비록 빈소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여름에 미국을 다녀올 경우 보통은 한국의 찜통더위도 피할 겸, 아이들 방학 때를 이용해
7월 말이나 8월 초에 떠나 늦어도 8월 말 이전에는 돌아와 성묘와 벌초도 다녀오고
추석 준비도 하곤 하였으나 금년에는 8월 말이 다 되어서야 떠나는 바람에
돌아오는 날도 그만큼 늦어졌다.

6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학업과 사회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큰 애나
지난 해 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여 사회생활을 하며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막내도  
때맞춰 한 참 바쁘다고 하여 제때 출발을 못 하였는데
금년에 윤달이 들어 추석이 10월 초로 늦어진 바람에 그 전에는 돌아올 수 있어
늦게나마 떠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8월 초, 중순의 찜통더위는 고스란히 꼼짝도 못하고 당하고 말아
여름에 미국을 다녀오는 겸사겸사 이유가 많이 퇴색해
이번에는 여름도 다 지났으니 미국 다녀오는 걸 생략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언제나 다녀오는 크리스마스도 몇 달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 스케줄에 맞춘다고 하였지만 미국에 거의 한달 간 머물었는데도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외식한 건 점심 한번, 저녁 한번, 딱 두 번 뿐이었다.
그것도 떠나기 전날인 9월 15일이 내 생일이어서 미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미리 광고를 하고
아이들 시간을 사전에 예약을 받아서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겨우 확보한 저녁 자리였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65회 생일을 맞이하는 동안
생일을 기념하여 가족과 함께 저녁을 한 건 처음이었다.
부친 생전에는 부친 생일이 나보다 이틀 빨라 부친 생일 날 묻어서 같이 차렸고
그 이후에는 무슨 생일상이라고 차려 먹을 형편이 못 되었고
결혼 하고는 당시 워낙 일에 쫒기다 보니까 생일이라고 어쩌고 기억하는 거조차 번거로웠고
아이들이 태어나서는 아이들 챙겨주다 보니 어른들 생일 챙기기가 뭐 좀 쑥스러웠다.
게다가 애들 엄마 생일이 한식과 겹쳐 애들 엄마 생일은 항상 성묘 길이어서
제대로 차려주지 못하다보니 내 생일을 더더욱 주장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성장한 이후 가족사진도 처음 찍었다.
그것도 저녁을 먹은 레스토랑에서 생일 기념이라고 축하 서비스로 찍어 준 사진이다.

이번 성묘 길은 너무 편했다.
우선 길이 편했다.
매번 다니는 길이라 눈에 선하지만 혹시나 하고 스마트 폰의 앱을 길잡이로 삼았더니
여러 고속도로를 갈아탔지만 한 시간 이상 단축되었다.
인천 집에서 출발하여 제2경인-영동-경부 고속도로로 영천까지 가는 게
늘 상 하는 성묘 길 드라이브 코스였는데 앱의 안내는,
제2경인-영동-서해안-평택 음성 간-경부-청주 상주 간-상주 영천 간 고속도로였다.
이중 상주에서 영천 간 고속도로는 개통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뽀얀 가루가 그대로 날리고 있었고 차도 몇 대 다니지 않았다.

청주에서 경부선을 버리고 청주 상주 간 고속도로를 타는 바람에
집에서 출발해 3시간가량 졸음도 참고 화장실도 참으며 금강휴게소까지 논스톱으로 달려가
유유히 흐르는 짙푸른 강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잔으로 아이들과 애들 엄마와 성묫길 다니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곤 하던 게
어떤 그리움 같은 일정이었는데 그걸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몹시 컸지만
대신 해발 1,000미터 이상 고산지대로 산과 산 사이 굽이굽이 달리는 동안
눈높이로 다가온 산마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가끔은 뭉게뭉게 모였다 솟아올랐다 흩어지곤 하는 운무 속에
속리산을 관통하는 새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 아이고, 금년에는 늦어셨네예. 못 오시는 줄 알았십니더. ”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표정으로 이것저것 능숙하고 재빠르게 챙겨주는
호국 원 꽃집 아줌마는 변함없이 그대로다.

“어머니는?”

“아직 누워 계셔요.”

한 그릇 2,000원 짜리 석계 리 칼국수 집은 주인아줌마 딸이 도우미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과
옆도 못 돌아보며 주방과 홀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아직도 병석이라니, 벌써 4년째다.
아줌마가 없는데도 칼국수 맛이나 양념 맛이나 달랑 찬이라고는 하나뿐인 짠지 맛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요기 때가 지났는데도 이 외진 곳에 자리가 제법 차 있고
꾸준히 손님이 드는 것도 변함이 없다.

드라이브 시간이 단축되어 도중에 철물점을 찾아 낫을 구하느라 시간을 좀 지체했는데도
대구 두류산 산소에도 예정보다 한 시간 여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벌초 시기가 지났기에 지난해처럼 혹시 공원 관리인들이 제초 작업하며
벌초를 해 주었을 지도 모른다고 기대는 했으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오셨능교.”

산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숲 속에서
한 결 같이 가장자리에 모기 망을 두른 모자를 쓰고 목장갑까지 낀
중무장한 모포부대 할머니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공원 관리소에서 풀 깎을 때 이 산소 두개도 깎아야 된다고 막 뭐라 캤는기라예.
산소 주인이 멀리 있어서 못 온다카면서예.“

대 여섯 명이 서로 앞 다퉈 공치사를 한다.
전에는 식사나 하시라며 점심 값 정도를 줬었는데 그거로는 턱도 없었다.
벌초를 대신하게 해 준 공로가 있었다.
그래도 돗자리를 깔아주고 얼른 비켜 준다.

산모기의 극성도 여전했다.
비교적 중무장 했지만 옷을 뚫고 장갑을 뚫고 맨살부분은 맨살부분대로 무차별 맹폭했다.

성묘를 마치고 대식이, 남철이와 함께하는 술 한 잔은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다.
양껏 먹고 마시고 마음껏 웃고 수다 떨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어느새 자정이다.
지난 만남이 그립고 자주 못 봐 아쉽고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18일 아침 주민 센터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경로 우대 전철 프리패스를 발급 받으러 갔다.
그 날 즉시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산 처리하는데 2, 3일 걸리니까 그 후에 사용하세요.’

그러나 실지로 처음 사용하게 된 건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며칠 동안은 전철 탈 일이 없었고 그 다음에는 깜빡하고
습관처럼 지참하고 다니는 충전식 대중교통 승차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차’ 했지만 이미 인식기를 통과한 뒤였다.
버스와 환승은 안 되기 때문에 어차피 병행 사용해야 하지만
전철만으로 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아 그만큼 충전을 덜 해도 된다.

금년 초 날이 밝자마자 제일 먼저 경로 우대를 받은 곳은 미국 집에서 가까운 골프장이었다.
만 65세 생일이 지나야 경로우대 자격이 주어지는 여기와는 달리
미국은 65세 되는 해부터 적용이 된다.
1월 1일 날이 밝자 바로 골프장으로 달려가 시니어 등록을 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골프까지 쳤었다.
정상가격이 19불이지만 시니어 할인 가격은 12불이다.
그리고 일일이 확인도 하지 않는다.
대충 보기에 적당히 늙어 보이면 그냥 패스다.
백발에 쭈글쭈글 주름진 나의 경우는 당연히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난 7월 동기 다섯 명이 제주도 놀러 갔을 때 이 경로우대 덕을 처음으로 톡톡히 봤다.
명승지나 관광지마다 입장료를 내게 되어 있었지만 전부 공짜였다.
다섯 명 중 충우가 나이가 어려 대상이 안 되었으나
대신 충우는 35년 전 뇌수술 후 시신경 장애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어디가든 무료였다.
충우 덕에 주차료도 공짜였다.
해수욕장의 탈의실과 샤워도 시니어는 공짜였다.
물론 흥면이 집에서 기거를 하고 흥면이 부인 차를 공짜로 타고 다닐 수 있어
경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지만 4박 5일 동안 실컷 먹고 마시고 제주 일대를 훑고 다니며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쓸 데는 다 썼는데도
왕복 비행기료 포함해서 일인당 23만이란 터무니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은 데는 이 경로 우대 공짜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번에 애들 엄마와 둘이서 Yellow Stone 왕복 자동차여행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경로 우대 덕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왕창 할인 되었거나 그 지방에 무슨 이벤트가 있어 locked price 가 아닌 한
시니어는 숙박료가 10% 할인 되었다.
처음 장남 삼아 시니어 할인은 없냐고 물어볼 때 애들 엄마는 괜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핀잔을 주는 표정으로 창피해 하며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자기가 먼저 시니어 할인 안 되냐며 묻고 다녔다.
그러나 미국 국립공원 1호인 Yellow Stone 입장료는 할인이 없었다.
일주일간 들락거릴 수 있는 티켓이 차 한 대당 무조건 30불이었다.  

우리나라의 시니어 할인은 1980년 7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철도, 지하철, 고궁 등
8개 업종에 50% 할인을 시행하며 제도화되기 시작하여
1982년에는 65세 이상으로 대상이 확대되었고 적용 업종도 13개 업종으로 늘어났다.

이후 1984년 지하철 50% 할인을 아예 무임승차로 우대 폭을 확대했고
1996년부터는 국내 항공료 10% 할인을, 1997년부터 무궁화 호 30% 할인,
2004년부터는 새마을 열차 및 KTX 운임료 30% 할인을 시행하고 있다.
물론 박물관, 국공립 미술관, 고궁 등에도 무료입장 또는 50% 할인이 적용되고 있다.

이중 당장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와 닿는 것은 전철 무임승차, 국내 항공료 할인,
KTX 운임료 30% 할인 등이다.

그러나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전철의 경우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노인 무임승차가 전철 운영 만성적자의 주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경로 우대 전철 운임 공짜를 시행한 1984년에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 인구의 4%에 불과했으나 30년이 지난 현재 그 동안 수명이 늘어
노인 화 사회로 급속히 진행된 결과 그 비율이 14%가 되어 단순 숫자 비교만으로도
1984년 당시에 비해 65세 이상의 노인의 수가 500만 명 이상이 늘었다고 한다.

30년 전 65세 이상 노인의 무임승차 시행 시 인구 비율인 4%를 적용할 경우
지금은 76세 이상이라고 한다.
76세 이상이 현 인구의 4%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전철 무임승차 나이를 당초에 적용된 비율에 따라
76세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히 나올 수 있고
그 부담을 져야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주장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는 건 불가능 할 거 같다.

당장 혜택을 받고 있는 65세 이상 76세 미만의 수많은 노인들이 강력 반발 할 건 물론이고
노인들의 표가 절실한 정치인들 중 누구도 법 개정에 발 벗고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65세 이상 전철 무임승차는 이제 법 이전에 이미 단단히 굳어진 관행처럼 되었다고
보면 될 거 같다.

이렇게 전철이 공짜다 보니까 노인이라고 예전 같이 가만히 집에만 들어 앉아 있거나
기껏해야 경로당으로 출퇴근하거나 가까운 곳에 산책 정도만 다니지는 않게 되었다.
전철 노선도 확대되고 연장 되어 서울 외곽은 거의 다 연결되어 있다.
파주, 춘천, 천안, 온양, 원주 코앞인 용마 산 등,
예전 같으면 비용도 만만치 않아 자주는커녕 어쩌다 날 잡아 겨우 가 볼 수 있는 곳들이다.
춘천에는 이런 노인들을 대상으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일일 관광코스를 개발하여
절찬리 운영 중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노인들이 저렴하게 돌아다닐 수 있어 파고다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소주병 앞에 두고
무료하게 죽치는 수도 줄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다.
노인들이 이렇게 공짜로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 노인성 질병 발병 율도 현격히 줄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미국 우리 집 앞에 내가 늘 다니는 골프장이 시에서 운영하는 public 이다.
30 여 년 전쯤 시에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의 많은 노인들이 자원봉사를 하여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데도 만성적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적자보다 그 지역 노인들이 저렴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됨에 따라
노인성 질병 발병 율이 30% 이상 줄어 그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훨씬 줄었다고 한다.

비슷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경로우대 전철 운임 공짜를 포괄적으로 봐야지
단순히 경영적 측면으로만 봐서는 안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임승차를 거부하는 노인들도 많이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내가 무슨 노인이라고’ 자신이 아직 노인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며
노인 취급 받는 걸 분노하고 창피하게 여기는 경우와
경제력이 넉넉하여 전철 이용을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비록 대상이지만 아직은 국가로부터 그런 혜택을 받지 않아도 된다.’ 라고 하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내 주변에도 전철을 타 본 적이 없어 전철 노선은 물론 전철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또 버스는 타고 다니는데 전철은 절대 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철 프리패스가 무용지물이다.

전자의 경우는 할 말이 좀 있는 거 같다.
나이 많고 늙는 게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일일까?
어떻게든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고
자기보다 늙어 보이는 친구들을 조롱하며 위안을 삼고.

그러나 누가 뭐래도, 뭐 어떻게 처바르고 칠하고 덮어쓰고 심고 땜빵하고 갈고 벗겨도
연륜이 살만큼 산 6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만큼 살아온 표시를 들어내는 게 창피한 일일까?

다음 주 추석 연휴 중 주말에는 혜인이 부부와 여수에 다녀오기로 했고
14일에는 꼭 가 봐야 하는 결혼식이 있다. 그래서 토요 살롱도 두 주를 건너뛴다.

우리 동기 여러분들과 토요살롱 독자 여러분들 모두
즐겁고 풍성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기원하며.
2017.09.30.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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