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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7-11-26 19:01:27, Hit : 2427, Vote : 607
  토요 살롱 224회 " 유 영상 부인이자 24회 준 회원인 양 세 희 씨를 추모합니다. "

11월 21일, 그러니까 지난 화요일 저녁에 용혁이가  

“ LA 거주 유 영상 부인 양 세희가  조금 전에 눈을 감았다네요.”
라는 부고를 알렸다.

부고와 함께 다음과 같은 절절한 추모사를 올렸다.

“ 떠났구나...

  어딜 가느라고.. 그리 떠났을까?
  어딜 간다고 알려는 주고
  간 거니?

  거기가 어디라고..거길 가느라고,
  그리 긴 긴 시간을.. 씨름을 하고,
  또 했던 거라고 하디?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고
  떠나디?
  그게 언제일 거라고 한 거니?

  거기가 그리 좋은 데라고 하디?

  얼마나 좋은 데 길래.. 이 밤 중에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채..
  혼자서만 그리 훌쩍 떠나야
  한다고 하디?

  꼭 붙잡았는데도 막 떠나디?
  더 꼭, 더 힘껏 잡아줄 스는
  없었니?
  그랬음에도 막무가내로 떠나디?

  정말로 좋은 곳인가 보다.
  영상아.. 눈물이 많이 흐른다.

  ..
  ..
  ..

  마음이
  따뜻했고
  고왔던 사람..

  그리고
  영민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알았던 사람..

  나 보고
  건강관리 잘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먼저 떠난
  사람...  “

영상이 부인 양 세희 씨는 경기 여중 시절부터 워낙이 서울고의 팬이었던 데다가
학창시절 문학 서클을 같이 한 용자들과 성별을 초월하여
평생 동성 간의 우정 이상의 우정을 이어가며
진작부터 LA 거주 동기들은 물론 24회 동기들과 교우 관계를 넓혀
졸업 30주년 기념 총회에서는 특별 공로상도 받고 우리 동기 준회원 자격도 부여받아
우리 동기들 사이에는 부군인 영상이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특히 LA를 한 번이라도 거쳐 간 우리 동기들 치고
세희 씨와의 추억이 없는 동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LA우리 동기들 사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구구절절 설명할 거도 없이
서울 고 24회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호의를 베풀었다고 하면 될 거 같다.

세희 씨가 공로상도 받고 준회원 자격증도 받은 2002년 졸업 30주년 기념 총회에
나는 피치 못할 일로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희 씨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다가
세희 씨를 처음 알게 된 건 2009년 쯤 우연히 용혁이를 통해
세희 씨가 쓴 2006년에 작고한 하마 정 성환이의 추모사를 읽으면서 였다.
쓰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즉시 상상으로 그려질 정도로
그간의 우정에 대한 그리움과 떠나간 사람에 대한 슬픔이 문장 하나하나에 절절이 배어있었고
솔직하기 그지없는 감정으로 아무 꾸밈없이 그냥 쏟아낸 내용이
읽는 사람의 가슴도 먹먹하게 메여오려고 했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용혁이로 부터 세희 씨와 용자들과의 만남과 그 동안의 역사,
우리 동기들과의 교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듣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6월, LA를 두 번째 방문하여 기우 네에서 기거를 하면서
기우 네에서 기르고 있던 셰퍼드 크기의 괴물 급 고양이 두 마리와 동침했는데
밤새 호흡곤란에 시달렸지만 과음 탓이겠거니 하고 자고나면 아침에는 괜찮겠지 했으나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 가슴이 조이고 숨이 막히는 고통에
똑 바로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마침 일요일이라 약방이고 병원이고 모두 문을 닫아 어디 응급처치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기우도 난간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영상이 부인 세희 씨가 종합 병동이라 별별 증상에 다 박식하고
별별 약을 다 비상용으로 구비하고 있으니
혹 모르겠다며 세희 씨에게 전화를 하여 상황을 이야기 하자
마침 그런데 잘 듣는 약 여분이 좀 있다며 부군인 영상이 편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그 약을 먹자 금방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와 위급에서 벗어날 수 있어
까딱 나 때문에 취소될 뻔 했던 동기들과 골프 모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동기들과 저녁에 술도 한 잔 같이 할 수 있었다.

이 때는 세희 씨가 심장 이식 수술 후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출입을 자제하고 있던 터라
만날 수 없어 떠나기 전 고맙다는 인사 전화밖에 할 수 없었다.
전화 통화 도중 토요 살롱 이야기가 나왔고 세희 씨가 읽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 후 얼마 안 있어 상호로부터 전화가 와 실실 웃으며 그러나 다급하게
LA 의 세희 씨로부터 송 종호를 LA 거주 동기들과 LA를 거쳐 간 동기들의
exclusive membership 카페인 'LA 사오정‘ 에 즉시 등록시키라는 엄명을 받았다며
등록 방법을 알려 주며 당장 가입하라고 했다.
그러나 등록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내 재주로는 등록할 수가 없어
상호와 여러 번 통화를 하고 결국에는 카페 개설자인 재문이의 가이드를 받아야만 했다.

이 당시의 이야기는 토요 살롱 43회 ‘ 40년 전 경희궁을 나서며 ’ 편과
토요 살롱 62회 ‘ LA June, 2011 " 편에 잠깐씩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는 카카오톡으로 신년 인사 정도 주고받는 정도 외에
어쩌다 용혁이로 부터 그냥 스쳐가듯이 소식을 들었을 뿐 세희 씨와 직접연락이 뜸하다가
2012년 졸업 40주년 기념으로 발간 된 문집에 세희 씨가 기고한 글을 읽게 되었다.
문집에 기고한 세희 씨의 글을 이어받아 토요 살롱 67회 ‘ 경희궁의 소년들 ’을 쓰게 됐다.

세희씨가 ‘에루에이 근사한 남자들과 30년’ 이란 제목으로 40주년 기념문집에 올린 글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면,

“ 그 파릇파릇 청 보리 같던 청년들이 머리숱이 빠지고 배는 나오고, 행동은 느려졌지만
  묵은 장맛 같은 정겨움이 있고 편안함이 있는 근사함,
  에루에이의 남자들과 30년을 같이 한 행운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 에나 나올 법한 병치레를 하고 건강해졌습니다.
  “아니, 폐도 이식해요?” 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걸  두 번이나 했고
  아주 건강해졌습니다. 물론 주변의 염려와, 기도와, 눈물의 위로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졸업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오신 여러분들의 노고와 수고를
  같이합니다.
  ‘경희궁의 소년들’,  앞으로도 늘 설레게 할 여러분들, 언제든 에루에이를 찾아주시면
  건강하고 밝게 맞이하겠습니다.
  에루에이의 근사한 남자들과 같이요. 우리 무수리들도요. “

세희 씨를 처음 만나게 된 건 2013년 초 세 번째 LA 방문 때였다.
예와 다름없이 워싱턴 집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쪽 사정에 맞춰 토요일에 워싱턴을 출발해
당일 저녁을 기우와 함께 하고 다음날인 일요일 동기부부들과 몇 팀 나누어 골프치고
저녁을 함께한 후 그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여전히 기우가 변함없는 탈 인류 급 거구로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었고
지난번에 고양이 때문에 혼이나 이번에는 코리아 타운 한 복판에 위치한 호텔로
숙소를 정해주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기우 부부 외에 병곤이 부부, 독신인 임 희, 그리고 양 세희 씨가
저녁을 함께할 거라고 했다.

‘ 세희가 니 글을 읽고 어떻게 생겼는지 대게 궁금해 하더라.
  엄청난 미남일 거라며 기대된다고 하던데?’

그러면서 힐끗 아래위로 훑어보며 낄낄 웃었다.

‘백발에 쭈글쭈글 노인네를 보면 기대와 너무 달라 실망이 어마어마할 텐데 갑자기 걱정되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용자들과 세희 씨는 아직도 서로 이름을 부르며
말을 터고 지내고 있었다.
세희씨가 부르는 호칭에 기우만 유일하게 기우 씨였고 나머지는 모두,
용혁이, 용모, 재복이었다.
기우의 터무니없는 거구가 함부로 야자를 못하게 하는 거 같았다.
그 정도로 세희 씨와 용자들 간에는 격의가 없었다.

그러나 숙소에 짐 풀고 좀 쉬고 저녁에 기우가 픽업하여 저녁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기대에 찬 세희 씨를 만날 생각에 은근슬쩍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긴장과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너무나 즐겁고 편안하고 유쾌한 저녁이었다.
술이 한 순배 돌기도 전에 초면의 어색함도 서먹서먹함도
줄곧 졸이고 있던 긴장도 말끔히 사라졌다.
다들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동안 세희 씨의 웃음소리도 그치질 않았다.
밤이 이슥해 음식점을 나와서 세희 씨와 영상이가 거처하는 수영장 달린 저택으로 몰려가
집에 설치 된 노래방 기기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사양만 할 수 없어
결국에는 음치 실력을 태평양 건너 LA 까지 드러내야만 했지만
분위기 탓인지 전혀 창피하지도 민망하지도 않았다.
내 마음대로 편곡, 개사를 하며 기기를 괴롭히는 중간 중간 세희 씨 눈치를 보니
측은해하면서도 시종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세희 씨가 스스럼없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희 씨는 다음 날 영상이와 함께 골프모임에도 참석하여 끝까지 게임을 즐겼다.
완전히 건강한 정상인이었다.

세희 씨를 마지막 본 건 지난해 봄 ‘화양 구곡 야유회’에서 였다.
부군인 영상이와 함께 왔었다.
너무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2013년 초보다 보기 좋을 정도로 살집도 좀 불었고 혈색도 붉은 기가 돌아
훨씬 더 건강해 보였다. 아니 아픈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영상이도 표정이 너무나 밝고 여유가 만만했다.
여전히 잘 생긴 얼굴에 슬쩍 비치던 쓸쓸함도
어쩌다 씩 짓는 미소에 섞여 있던 어두운 그림자 같은 거도 씻은 듯 사라지고
격의 없는 파안대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세희가 환갑이라도 넘겼으면 하는 게 소원’ 이라고 했고
‘세희가 환갑을 넘기다니’ 하고 감격해 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모습이었다.

부부가 함께 각각 다른 볼일을 보러 잠깐 한국에 들린 동안
마침 동기 야유회에 참석할 수 있는 짬이 생겼다고 했다.
이 당시의 상황은 토요 살롱 129회 ‘야유회와 연휴’ 에 상술한 바 있다.

부부와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 한 끼 할 시간을 부탁했으나 짧은 방한기간 동안
일정이 워낙 타이트하니 마침 용자들의 정기 모임 날 같이 보자고 하여
아쉽지만 그러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게 세희 씨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되고 말았다.
exclusive membership club 인 용자 들이 철저한 외부인사 출입 금지 원칙을 지켜
매달 첫 째 주 토요일의 부부동반 정기 모임에  나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인이 된 용찬이를 필두로 거의 대부분의 용자들 개개인과는
대단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그리고 세희 씨 부부에게 LA에서 신세를 져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 번이라도 더 자리를 같이하고 싶다는 간곡한 부탁에도 용자들은 아주 냉정했다.

그 이야기를 전화로 통해 들은 세희 씨 왈,

“ 참 웃기지도 않네. 용자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가?”

영상이도 딱했던지 ‘내가 한 번 부탁해 볼게.’

영상이의 노력도 허사였다.

그 이후 나는 용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지난 봄 용자의 일원인 덩어리 일현이의 아들 종원이 결혼식에도 미리 청첩장을 받았지만
사실 망설였었다.
그러나 절대 먼저 전화하지 않는 덩어리가 전화를 하여 아주 정중히 초대를 하고
또 종원이가 10년 전 쯤 뉴욕의 패션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버지니아의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애들 엄마와도 친분이 있었고 당시 마침 용자 멤버인 병우가 안식년으로 워싱턴에 와 있어
덩어리와 학창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인 재헌이와 셋이서 종원이를 불러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종원이와도 개인적인 만남이 있어
참석은 하였지만 썩 내키지는 않은 발걸음이었다.

세희씨가 이렇게 불현 듯 가고 보니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그때 영상이 부부와 한 끼 식사도 같이 못하게 거절한 용자들에 대한  괘씸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다음은 세희씨가 11년 전 용자 였던 하마 성환이를 보내고 쓴 성환이를 그리며 쓴 추모사다.
용혁이로부터 부고를 받고 용혁이에게 부탁해 글을 카카오톡으로 전달받았다.
용혁이가 11년 전 기록을 찾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세희 씨의 그 때 심정이 지금 세희 씨를 보낸 부군 영상이와 유족들,
그리고 용자들과 에루에이의 근사한 남자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성환씨를 보내고 쓴 편지]

성환씨,

무슨 말 부터 할까?....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자꾸만 하네...
우리집서 성경 공부 하던중 배가 살살 아프다며 , 가더니...
그밤에 입원 하고, 낼모레 퇴원 할거야 그러더니...투석하고...
기운이 읍서서 그렇지 괜찮아 , 아마 잠 못자서 그런가봐...그러더니...
그렇게 서둘러 가냐??
다~들 병원엔 얼씬도 못하게 하고...심지어 장례식도 못가게 하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나의 장례식에 와서 젤 많이 울어 줄 것 같더니...지가 먼저 가냐??
내 손을 잡고 , 너무 힘들게 고생 한다고. 이제 고만...가두 된다더니...지가 먼저가냐??
언제나 무슨 일에나...온전히 내편이 되어 줄거 같더니...
늘 전화 해선 하마 닷 컴 이야요...하더니
뭔지 모르게 횡설 수설 하면서 그 여린 마음을 늘~ 들키더니...
무엇에도 무슨일에도 지는 늘 뒷전이고 ..친구며 주변 사람만 챙기더니...
가슴이 미어 진다는게 뭔말인지...요즘처럼 실감 하기가...나이가 그런 가보네...
성환씨야
두아이 데리고 전전 긍긍 하며...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더니...
경희씨가 이뻐서 어쩔줄 모르고...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 하더니...
먼저 가신 어머니 자랑 스러워 하며...불효를 늘 서러워 하더니....
친구들 후의에 늘 미안해 하며...묵묵히 궂은일 자초 하더니.....벌써...가냐??
실은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성환씨를 떠올리면...편안하고 든든 했었어...
무슨 일이 생기면...언제나 더 깊이 고개 푹 숙이고 더 마음 아파 해줄 것 같앴어...
전후 좌우 안따지고....그냥...무조건
나 보다 내일에 더 마음 아파 해주고...그 곁에 있어 줄것만 같았어...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서도...더 뭘 해주고 싶어한 그 마음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자...아닐까??
내가 아는 그 누구 보다 착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마음에 의지가 되어 주었었구나...성환씨...
이렇게도 절절이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었었구나....성환씨..
.
둘이 같이 장기 새걸루 갈아 끼우구...낄낄 웃으며 살줄 알았더니....
같이 동지애를 누리며 살줄 알었더니....
술도 못먹게 되었으니...성경 공부나 하면서 재미 있자더니...
성경 공부가 많이 위안을 준다더니....
내 새벽 기도에 힘실어 주러 그 새벽에 달려와 주더니....
수줍게 생전 처음 왔으니...하나님이 좀 봐주시지 않을까??...이쁘게?...하더니..

경희씨 사랑에 목메어 하고...어리광처럼 매달리고...의지 하더니...
하나님 믿고 하나님 의지하고...평안을 알고 갔으니....정말 고마워...
요즘 며칠동안 집중적으루 성환씨 생각 했더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싶더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몸처럼 남을 사랑 하라 셨는데....
내몸 보다 남을 더 사랑 한거 같애...성환씨는..

우리 두세번 음악회 간적 있었지...그때 마나 얼마나 행복해 하고 감격 하는지...
온 몸의 세포가 다 열리는 느낌 이라고 ...했었어...
경희씨 눈치 보면서 칵테일 한잔에...행복해 하던
참 순수 하고 이쁜 사람 이었다....성환씨는

친구들과 재 작년에 하와이 여행....참 좋았지...
어린애처럼 흥분하고...좋아해서...거의 잠도 못자더라...
한컷 이라도 더 찍어 줄라고 그 무거운 카메라 들고 ...참 어쩔줄 모르더라....
밤중에도 일어나..뭐라도 하고 싶어 했어...몰래라도...
하와이의 그바람. 그 별빛.그 구름. 그 파도. 그 흥분.
다~~~ 기억 하고 있지?...성환씨야....

얼마나 경희씨를 자랑 스러워 하고 이뻐 했는지....사랑 했는지...
너무나 들여다 보였었어....아무리 의연한척 했어도...
쌀쌀 배가 아프다니까...경희씨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배를 쓸어 주는지...
엄마 손은 약손 이라더니 마누라 손이 약손이네..하며...
그 와중에도 행복해 하던 성환씨야....

행복해 하던 성환씨의 모습과 아름 다웠던 추억만 기억 할거야...
어짜피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것 뿐이므로...

너무나 아름 다웠던 사람아....성환씨야....잘가...
부디 다~~~잊고 ....여길랑 다~~~잊고...
잘가

내가 가진 나보다...
늘 더 좋게 보아주던 착한 성환씨야...잘가..
이제는 정말 고만 울려고해...고만 울께...잘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아름다운 그곳으로...잘가...

하마 닷 캄 에게...세희가...

2006-03-08

2017.11.26. 송 종 호.




토요 살롱 225회 " 유 영 록을 추모하며 "
토요 살롱 223회 " 1992년 12월 북한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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