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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5-10-17 21:04:05, Hit : 2953, Vote : 609
  토요 살롱 161회 " 취 미 "

보통 12월은 지나야 나타나던 미세먼지 주의보가 벌써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이틀 동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스모그가 뒤 덮은 장면이 보도 되었다.
지난 목요일 옛날 내가 경영하던 회사의 직원들과 회식이 늦게 끝나
어차피 다음날 운동은 할 수 없어 오히려 다행이랄 정도로 별 아쉬움은 없었지만
어제 하루 종일 햇빛을 가려 그 파랗던 하늘이 뿌옇게 흐리고
숨을 들이키는데 호흡기에 뭐가 걸리는 거 같아 내년 봄까지 앞으로 반년 이상이나
불시에 그리고 수시로 짙어질  미세먼지 농도에 짜증과 걱정이 앞선다.
금년에는 일찌감치 마스크를 장만해둬야 할 거 같다.

지난 월요일이다.
밤늦게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한성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 카카오톡 창에 들어가 봤니?
  재효가 방금 도착했대. “

10월 중에 잠깐 다녀갈 예정이 있다고 해서 일정이 잡히면 미리 알려달라고 했는데
사전 예고도 없이 서울 도착한 후에야 카카오톡 창에 올렸다.
일주일 일정이라고 해 서로 만날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았으나
재효가 지난여름 한성, 남환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 합창하며
눈물의 작별을 한 이후의 미주 유람기를 본인들로부터 직접 필히 듣고 싶다고 해
연락을 취하고 재효의 절친 충우가 합세하여 다행히 금요일인 어제
재효가 머무는 부모님 거처 지인 성산동과 가깝고
또 재효가 이왕이면 그 유명한 홍대 일대를 보고 싶다고 해서 길거리 구경도 할 겸
홍대 앞에서 저녁 시간 보다는 좀 일찌감치 만나기로 약속을 할 수 있었다.

늦은 오후에도 인천의 미세먼지 농도가 여전하고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도 영 찜찜해
안주로 삼겹살을 먹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행히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보통 수준으로 인천보다는 훨씬 양호했다.

저녁 메뉴를 정하기 전 잠시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홍대 거리를 좀 거닐었다.
모두가 이렇게 한가롭게 홍대 주변을 돌아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 맨해튼보다 더 번화한 거 같은데?”
남환이다.

“ 다섯 명 중 두 명은 외국인 인 거 같다. 특히 중국인. ”
깜짝 놀란 재효다.

가까운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댄다.
다음 날이면 무슨 이야기 했는지 죄다 까먹지만 수다가 끝이 없다.

우리가 자리 잡은 제법 널찍한 막걸리 전문 집이 빈자리 없을 정도로 꽉 찼고
우리를 제외한 손님들 대부분이 여학생들이거나 그 몇 살 위 정도의 젊은 여자들이었지만
아마 평균 연령으로 따지면 3배는 될 법한 압도적으로 최고령 손님이었을
우리 몇 명이 떠들어대는 볼륨이 여자들, 특히 그 많은 젊은 여자들을 압도하지 않았나 싶다.
비교적 소음이 덜 할 거 같은 맨 구석자리를 차지한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사방에서 조잘대는 젊은 여자들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2차로 충우가 좋아하는 독일 소시지 안주로 생맥주 한잔 하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음식점, 술집, 찻집,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점, 옷, 패션, 화장품 등 각종 소비재 상점들이
길 양 옆과 그 사이사이 좁은 골목을 빈틈없이 메운 홍대 거리는
아직 초저녁인양 휘황찬란한 각종 간판과 꺼질 줄 모르는 현란한 네온사인아래
파도처럼 휩쓸려 오는 인파로 조금만 걸음을 게을리 하면
부딪쳐 떠밀려 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더구나 금요일 밤이었다.
대부분이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라 늦은 밤인데도 표정들도 생생하고
걸음걸이도 씩씩하고 빠르다.
우리 외에 머리 허연 노인네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 미국에는 어느 대학이고 대학 주변이 황량한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장녀가 피츠버그의 명문 카네기 멜론을 졸업하고 마이크로 소프트 시애틀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재효가 얼굴을 찌푸린다.

“ 내가 여러나라를 다녀봤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대학 주변도
  이러지는 않은 거 같아. 옛날 우리들 아지트였던 명륜동 너희 집 주변도 주택은 다 헐리고
  대신 이런 식으로 상가들로 가득 찼더라. “

다음 주 토요일인 10월 24일은 오전 11시 서초 성당에서 임 진 규 장녀 혼례가 있다.
진규가 지난해부터 노심초사해 온 큰 딸 결혼식이다.
딸이 예비 신랑을 데리고 와 상견례를 하고도 정작 쉽게 마음을 정하지 않아
혹시 딸 마음이 완전히 돌아설까봐 진규가 들어내지 도 못하고 속을 많이 태웠었다.
신랑 될 친구가 너무 착한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니 진규 딸도 어지간한
아이인 거 같다.

“ 어떻하면 좋냐, 종호야, 신랑 될 아이가 착하기만 해 재미가 없을 거 같다고
  결혼 결정을 않고 있으니 강제로 끌어다 결혼시킬 수도 없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잘못되면 원망 바가지로 들을 테니 그럴 수도 없고,
  야, 못 된 놈 만나는 거 보다 백번 낫지 너무 착하다고 싫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착한 게 장점이 아니고 단점이라니 나는 마음에 꼭 드는데 말이야.
  나이는 차가고 정말 미치겠다. “

그렇게 속을 태우던 딸을 보내니 기쁘기도 하고 안도도 되겠지만
첫 애인데다 애지중지 키워 온 터라 가뜩이나 정 많은 진규가 딸 보내는 마음이
벌써부터 애잔한 모양이다.
명식이가 지난 해 딸 시집보내는 날 저녁에 우리끼리 뒤풀이 하는 데 나타나
기어코 3차 노래방까지 끌고 가서 애창곡 하얀 손수건을 부르며
종내 눈물을 흘리더라 라고 했더니,

“ 아마 나도 그럴 거 같애. ”

신랑이 삼성 전자에 다니고 우리 나이로 서른한 살 진규 딸과 동갑내기란다.
지금 트렌드로는 신랑은 좀 이른 결혼이고 신부는 적령기다.

진규는 우리 세대에 드물게 아이가 셋이다.
이번에 시집보내는 아이가 큰애고 그 밑에 의대 본과 3학년인 둘째 딸이 있고
6년제 수의대 4학년인 막내아들이 있다.
아이들이 모두 학업 기간이 길고 학비도 많이 들어가는 곳을 택해
그거 다 감당하느라 등어리가 휘었지만 둘째딸은 일 년 남았고 아들은 2년이면 마쳐
진규도 이제 한시름 덜고 고진감래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성당에서의 결혼식은 보통 한 시간씩 걸린다.
식 마치고 식사하고 시간이 되는 동기들과 차 한 잔하고 어쩌고 하면 한나절이 후딱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멀어 토요살롱 쓸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다음 주 토요 살롱은 부득이 휴무라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매달 둘째 주 화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 신우 회 모임 장소가 우리 동기 구 자 경 목사가
담임 목사로 재직 중이고 김 수 종 이가 장로로 봉헌하고 있는 신촌 창천 감리교회에서
교대 앞 충신 교회로 지난달부터 옮겼다.
회원 대다수의 거주지가 강남 이남이라 오가기 불편해 출석 율이 저조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구 자경 목사의 주선으로 교통이 편리한 교대 부근의 교회를 섭외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다른 일로 참석할 수 없었으나 이번에 참석했더니
참석 예정이던 고정 멤버 수종이 부부가 갑작스런 일로 오지 못했는데도
총무 신 갑 섭이가 고대하던 20명 이상 출석 목표를 딱 채웠다.
오랜만에 20명이 참석했다.

구 자 경 목사의 설교는 현실적이고 우리 세대가 처한 환경과 직결한 내용이라
마음에 와 닫고 또 재미가 있어 언제나 귀 담아 집중해서 듣게 된다.
이번 설교 제목은 모세 이야기에서 따왔지만 내용은 우리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마무리 할 거냐 였다.

“ 우리는 어차피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봐서는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훨씬 적게 남았습니다.
  그래도 평균으로 봤을 때 30년 정도를 더 산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우리 동기들 중에 이미 타계한 경우야 애석하지만
  너무 오래 사는 것도 불행일 거 같습니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아직 살아 있는 동기들이 반 정도는 남아 있고
  그래도 애도해 주는 동기들이 빈소를 채워 줄 수 있을 때
  그러니까 한 중간 정도에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가족 외에 본인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상가에 우리 동기가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

  제가 104세에 돌아가신 한 원로 장로님 상가에 간 적이 있는데
  상주가 이미 80대 중반으로 노쇠한데다 병색이 짙어 곧 돌아가시게 생겼더라구요.
  조문객 중에 당사자와 관련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고
  조문객 중에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잘 돌아가셨다고 축하를 하고 있으니
  조문객인지 하객들인지 여하튼 이렇게 오래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설교를 마치고 강 호 철 신우 회 회장이 단상에 올라가 친교 시간 사회를 보는 중에  

“ 캐나다에 거주하는 나하고 친한 한 선배는 거기는 노후 보장이 되어 있으니까
  은퇴 후에 계획을 세워 병원 등에 봉사활동을 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경이 그렇지 않잖아요?
  노후가 확실히 보장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가 어렵고  
  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느냐 인데
  그 일환으로 우리가 무슨 취미를 가지는 게 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복화술 전문가를 보고 흥미를 느껴 배워서
  내가 하고 있는 색소폰 연주와 더불어 어디 위문 공연도 다닐까 생각해봤는데
  복화술 배우기가 생각처럼 되지가 않더라구요.
  더구나 와이프가 나하고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부터는 우리 회원들이 예배 마치고 친교시간에 차례로  
  10분 정도씩 자기가 가진 취미생활을 좀 이야기 해 줬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내는 취미 생활을 알면 자기가 앞으로 어떤 취미 생활을 해야 할 지
  많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겨 하는 일을 말한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직업적이거나 돈 버는 거를 취미라고 할 수 없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 자신의 건강이나 도덕적 의무감, 책임감 등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도 취미라고 할 수 없다.
즐겨야 하니까 TV 채널을 수시로 돌리는 등 시간 때우기가 마땅치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뭘 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멍하게 아무렇게나 하는 걸 취미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전문적이지도 않고 좋아서 즐겨하는 것 중에
취미라고 하기에 곤란한 것도 있는 거 같다.
예를 들면 종교 생활 같은 거다.
교회나, 성당, 사원 찾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틈만 나면 성소를 찾아 기도를 하고 많은 시간을 종교 생활을 하며 보낸다.
그렇다고 교회 가고 성당 가고 절에 가는 신앙생활을 취미라고는 하지 않는다.

나로서는 아직은 하는 일이 있고 약속도 많고 해서
뭐가 좋아서 즐겨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시간이 남아돌고 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완전히 일에서 은퇴를 하고 나면
많은 시간을 내가 좋아서 즐겨할 수 있는 일에 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 현재로는 그게 뭔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 체력도 많이 떨어질 거니까 몸을 써서 하는 취미 생활은 한계가 있을 거 같다.
기억력이나 암기력도 급속히 나빠질 거라 두뇌가 필요한 취미도 적합하지 않을 거 같다.
과연 내가 나중에 사회에서 소외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은 어떤 게 있을까.
언젠가는 나도 신우 회에서 10분간 발표를 해야 할 텐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벌써부터 난감해 진다.
2015.10.17.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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