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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04-09 20:48:03, Hit : 2916, Vote : 577
  토요 살롱 176회 " 벚꽃이 지면 "

보스톤 마라톤은 올해로 120회를 맞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마라톤대회로 1897년에 첫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 1775년 미국 독립전쟁 첫 전투를 기념하는 날인  
Patriot's Day 에 열린다.
애국인의 날에 열리니까 미국인들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1947년 51회 대회 때 우리나라의 서 윤 복 선수가 참가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해
교과서에도 실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달달 외고 시험문제에도 나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유별난 대회다.
또 3년 전인 2013년 대회 때는 경기 도중에 결승전 부근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나 당사자인 미국은 물론 세계를 경악시킨 대회다.

금년에도 4월 셋째 주 월요일인 18일에 개최되는 데 이 유서 깊은 대회에 참가하러
우리 노익장의 호프 영문이가 16일 현지로 떠난다.

16일 출국하는 영문이는 금년에만 이미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다섯 번 완주하여
보스톤 대회가 금년에 여섯 번째이자 통산 84회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이라고 한다.
어림짐작으로 한 겨울인 1월에는 안 뛰었을 거고 2월부터 매달 2번씩 완주하고 있는 셈이다.
보스톤 대회를 참가하려면 연령별 기록 커트라인을 통과해야만 한다.
60세부터 64세까지의 커트라인이 공인된 국제대회에서 3시간 55분인데
지난해 영문이는 3시간 48분에 주파하여 참가 자격을 획득하고 참가 신청을 해 뒀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번에 전 연령별로 통 털어 50여명이 참가한다고 한다.
모두 아마추어들이다.

여행사를 통해 단체로 움직이는 가 본데 16일 출발하여 17일 하루 컨디션 조절하고
18일 뛰고 19일 하루 쉬고 20일 돌아오는 4박 5일 일정이란다.
영문이는 룸메이트가 나이가 우리보다는 좀 어린 50대 정도이기를 바랬다는데
정 반대로 76세 대 연장자가 배정되었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역으로 영문이의 76세 룸메이트는 소원이 이루어 진 게 아닐까.
어쨌든 76세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는 것만 하더라도 기죽이는 일이고
열 댓 시간씩 비행기 타고 며칠 만에 그냥 다녀오는 것만도 어지간한 건강체라도  
돌아와서 몸살 앓아야 되는 일인데 마라톤까지 뛰고 온다니 뭐라고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러고 보니 영문이가 마라톤 100회를 뛸 날이 머지않았다.
이 번에 뛰고 오면 16회 남는다.
지금 같이 한 달에 두 번씩 완주하는 조시라면 금년 안에 100회를 뛰게 된다.
조금 게으름을 부려도 내년 봄이다.
마라톤에 입문한 게 50이 넘어서 였다고 하니까 어릴 때부터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마라톤 시작한 지 10년 좀 되어 100번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 영문아, 100회 뛸 때 내가 우리 동기들 최소한 20명은 모아 응원단 구성하고
  대형 플래카드 들고 갈게. “

“ 하하, 시골 친구들이 해 준다고 했어. ”

“ 시골 친구들은 시골 친구들이 하는 거고 서울 친구들은 또 서울 친구들이 하는 거고.”

영문이는 경북 상주가 고향이다.
상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는 서울로 진학해 우리와 같이 다녔고
모두 알다시피 서울 법대를 졸업했다.
우리 동기로는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최고 권위자이며,
몇 년 전 서울 대 병원에서 강남 성모 병원으로 옮긴 성 숙환이와 상주 중학교 동창이다.
숙환이는 8년 전 서울 대 분당병원에서 용혁이의 수술을 직접 집도하기도 했었다.

영문이가 보스톤에서 달리는 그 주 토요일, 그러니까 4월 23일 잠실둔치에서
서울 동문 가족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금년이 벌써 7회째다.
종목이 5km, 10km, 하프니까 이름은 거창하게 마라톤 대회라고 붙였지만
동문 가족용 친목 성격이 훨씬 더 강한 야유회 수준이다.
기수 별로 밴드가 돌아가며 신나게 두들기고 지난해에는 어리고 예쁜 여가수까지 초청되었다.
점심 식사로 곰탕과 안주, 막걸리, 생맥주가 무제한으로 제공 되고 경품도 푸짐하다.

이번에도 하프를 신청했는데 현재까지 신청자 명단을 보니까
지지난해 하프를 같이 뛴 필구도 신청을 했고
지지난해 춘천에서 조선일보 마라톤 풀코스를 같이 완주 한 은대 부부도 신청을 했다.
지난해 같이 뛴 채인이가 3월 중에 올 거라고 해
이번 동문 마라톤에 하프를 같이 뛸 수 있을 거로 기대했는데 4월 말로 귀국이 늦어져
어쩌면 우리 동기로는 나 혼자 하프 뛰는 게 아닌가 우려했지만
같이 뛸 수 있는 동행을 기대해도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 개교 70년 동안 그야말로 대통령만 나오지 못했지 정, 관, 법, 학, 언론, 재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예술은 물론 그 외 다양한 작종에서 두각을 나타낸 동문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마라톤을 100번 완주한 동문은 없는 거 같다.
영문이가 처음이다.
앞으로도 대통령은 나올지 몰라도 절대 나오지 않을 기록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문이가 마라톤 풀코스 100회를 완주하게 되면  
범 동문 적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는 물론
우리 동문회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길이 남겨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4월 5일, 한식날, 예나 다름없이 이른 아침에 성묘 길에 올랐다.
아침저녁으로는 겨우 5,6도로 여전히 쌀쌀하고 한낮에는 20도를 넘나들어
일교차가 10도를 훨씬 넘고 있다.
감기 들기 딱 좋은 날씨에 옷차림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깜빡하고 평택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쳐 신갈 까지 가서 경부 고속도로를 타는 바람에
대전까지 가는데 3시간도 넘게 걸렸다.
남으로 내려가면서 이 좁은 땅 덩어리인데도 풍광이 바뀐다.
산자락에 노란 개나리가 밭을 이루고 있고
산등성이로는 듬성듬성 어디서 뜯어다 붙여놓은 거 같이
연분홍색 산 벚이 아직도 볼품없이 마른 나무 숲 사이 군데군데 확 들어나게 부분을 이루고
아른아른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대구를 지나자 벚꽃이 만개했다. 온통 연분홍색이다.
영천 톨게이트를 벗어나 포항으로 가는 길 양 연도는 가로수가 벚나무다.
흰색과 연분홍색이 아치를 이루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보면 어느새 나른한 졸음이 밀려온다.

차가 호국 원 입구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창성공방 아줌마가 손을 흔들며 달려 나온다.

“ 오셨능교? 멀리 오시느라 힘드시지예. 이렇게 한 해도 안 그르고 오시네예.
  안 그래도 오시나 안 오시나 기다렸십니더.
  동네 잔치가 있어서 아침에 가서 막걸리 한잔 얻어먹고 오실 시간이 돼서
  부리나케 와서 기다렸다 아입니꺼.
  얼굴도 빨갛고 술 냄새도 날긴데 이해해 주이소.
  그런데 얼굴 좋으시네예. 훤 해지셨습니더. 뭐 좋은 일 있으신가 보지예. “

“ 나이가 들고 점점 더 늙어 가는데 얼굴이 좋아질 리가 있겠습니까?  
  술김에 보니까 그럴 겁니다.
  술 깨 맨 정신 되기 전에 얼른 가야겠네요. “

“ 그렇십니꺼?”

낄낄 웃으며 예나 다름없이 꽃이며 술이며 안주며 돗자리까지 주섬주섬 챙겨준다.

내가 꼭 이 시간대에 호국원에 도착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대구 가서 성묘 마치고 숙소를 정하고 대식이, 남철이와 저녁 약속 시간 전에
잠깐 샤워라도 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점심으로 2천 원짜리 손칼국수를 먹기 위해서이다.

호국 원에서 영천 방향으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석계 손칼국수집.
더구나 이번에는 지난 해 9월 초 벌초하러 갔다 들렸을 때 주인아줌마가 몸져누워 있어
얼굴도 못 봤기 때문에 그 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 때문에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급하고 조마조마했었다.

유리 대신 비닐을 끼운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며 주방부터 살펴봤지만
주인아줌마는 보이지 않고 지난 해 벌초 때 뵈었던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난장이에 가까운 자그마한 아줌마를 주방 일이며 홀 서브며 잔소리 섞어 통솔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일이 아주 익숙해 보인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 주인아주머니는요?”

“ 저기 방에 누워 있습니더.”

“ 좀 어떠세요?”

“ 그냥 그렇십니더.”

순간 할머니의 입가가 씰룩거리고 얼른 젖은 눈가를 훔친다.

주인아줌마의 툭 한마디 내던지며 살짝 홀기 듯 짓던 눈웃음과
퉁퉁하던 몸집에 통 허리처럼 넉넉하던 미소가 그립도록 아쉬웠지만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고 다음 벌초 때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류산 모포부대 할머니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항상 네 다섯 명이 모여 있다.
서로 먼저 인사하고 아는 채 나서려고 다투어 바쁘다.

“ 기억하십니꺼. 내가 지난 번 벌초 때 같이 도와드렸어예. ”

“ 그럼요. 그 때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수월하게 벌초했습니다.”

돗자리를 깔아준 후 방해되지 않도록 소곤거리며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비켜 준다.

예년에는 이맘 때 두류산의 벚이 목련, 산수유와 함께 절정을 이루었다.
연분홍 벚, 탐스런 하얀 목련, 앙증맞은 노란 산수유.
그러나 이번은 아침저녁으로는 저온이라도 낮 기온이 높아서인지 목련은 이미 져버렸고
산수유도 노란색이 생기와 윤기를 잃어 시들시들하고
이미 꽃잎이 진 자리엔 초록색 새잎이 탁탁 튀어나오고 있고
벚은 꽃눈이 되어 바닥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며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수성 못 벚나무 가로수 산책 길,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해를 가리고 하늘을 뒤덮었다.
팔 장을 낀 젊은 연인들 중 여자아이들이 끼고 다니던 책으로 머리에 올려
떨어지는 꽃잎을 가리는 모습이 귀엽다.

대구 모임의 멤버들 중 이 번에는 용모도 못 오고 수영이도 못 왔다.
우리보다 4년 아래인 생고기 집 ‘거기’ 의 여사장은 여전한 미모에 여전한 몸매다.

“ 이젠 좀 늙을 때도 된 거 같은데 여전하시네요.”

“ 어마, 사장님도,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말인 줄 다 알고 있습니더.  
  저도 나이만큼 늙었어예. 사장님이야 말로 항상 그대로이십니더.“

“ 나야 이미 오래 전에 다 늙어놓아서 더 늙을 게 없으니까.”

“ 호호, 안 그래예.”

스탠트를 두 개나 박고도 여전한 줄담배에 술도 못 끊고 못 끊는 게 아니라 안 끊고
그나마 그래도 줄여 매일 마시되 청하나 복분자, 백세주 등 약한 술로 바꿨던 남철이가
신장결석 제거 수술을 한 후 소주체질로 다시 돌아왔다며 처음부터 소주를 마셔대고
맥주만 조심스럽게 마시던 대식이가 처음부터 소맥 폭탄주로 시작하기에 은근히 걱정했지만
그것도 잠시, 웃고 떠들며 끊임없이 따라주고 따라 받으며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자리를 옮겨
이차로 늘 가던 젊은이들 취향의 ‘스쿨’ 이란 칵테일 전문점에서 결국은 또 자정을 넘겼다.

다음 날 상경 길에 금강 휴게소에서 남철이와 대식이에게 전화를 했다.

“ 남철아, 오늘도 4시에 일어났냐?”

남철이는 몇 시에 잠자리에 들던 4시면 반드시 일어난다고 호언했었다.
대식이가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 뭐하냐고 물었더니 게임을 한다고 했다.
우리 나이에 게임을 한다는 거 자체도 희귀한 일인데 새벽에 일어나 게임을 한다니
‘남철이 답다.’고 할 수밖에 없고 ‘남철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 하하, 아니야. 이제 일어나 막 점심 먹었어. 아침은 거르고.”

대식이도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환자들 보느라 죽겠다고 했다.

“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내가 너무 기분이 풀렸던 모양이야.”

전날 저녁 생고기집 ‘거기’에서 나오는데 밤공기가 제법 찬 데도 팔장으로 가슴을 싸며
여사장이 배웅을 나와 주었다.

“ 벚꽃이 다 지네요.”

“ 어제 밤에 대구에 비가 좀 왔거던예.  바람도 많이 불고.
  그래서 벚꽃이 많이 떨어졌네예.”

“ 벚꽃이 지면..”
하고 머뭇거렸더니 여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받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 더워지고 여름이 옵니더.” 라며 마치 둘 만의 암호를 주고받는 공모자처럼
옆 눈 길로 살짝 쳐다본다.

‘벚꽃이 지면’
최근 어느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기획하여 방청객과 시청자의 투표로만
걸 그룹을 선발한 오디션 프로에서 최종 선발된 걸 그룹에 처음으로 주어진 곡명이다.
그리고 여사장의 대답이 그 곡 가사의 내용이다.

벚꽃이 그 화사하던 꽃잎이 그 화려한 모습에 제대로 적응되기도 전에
한 순간에 다 떨어지고 감쪽같이 사라지면
언제 폈던가 싶을 정도로 황당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꽃잎이 진 자리엔 겨우내 호시탐탐 움츠리고 있던 새파란 새 잎이 돋아난다.
그리고 비로소 대지에 골고루 따스한 온기가 돈다.
바야흐로 진정한 봄이 온 거다.
2016.04.09.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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