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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6-06-11 21:23:53, Hit : 2431, Vote : 563
  토요 살롱 180회 " 시 차 "

오랜만에 20년 단골인 집에서 걸어 20분 거리의 40년 전통 바지락 손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돌아와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 게 오후 2시경이었다.

20년 사이 손칼국수 반죽하고 쓸고 바지락 끓이는 주인 겸 주방장은
할머니에서 그 딸로 전수되었고 할머니는 휘진 허리를 안고 홀 일만 거든다.
나에게는 무조건 한 그릇 가득 담아 주는데 그 양이 곱빼기도 넘어 3인분은 족히 된다.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후루룩 소리도 요란하게 국물까지 싹 다 비우고 트림을 하며 그제야 주인아줌마에게
멋쩍게 눈인사를 보내면 하얀 이를 다 드러내고 마주 웃어준다.
그럴 때면 나보다도 무게가 더 나갈 거 같은 드럼통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잽싸고 능란하게 칼질하는 모습이 애교스럽기조차 하다.

자판을 신나게 두드리고 있는데 바로 옆에 둔 스마트 폰이 요란하게 울려
발신자를 보니 지 두환이었다.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 어, 지박사, 토요일 오후에 또 애첩과 마주하고 있냐?”

“ 내가 말이야, 친구와 아닌 사이를 토요일 오후에 내 전화를 받느냐 안 받느냐로
  결정하기로 했어.  
  그걸 기준으로 하니까 확실한 친구는 송 종호, 이 수영 밖에 없지 뭐야. “

혀가 이미 꼬부러 졌다.

“ 우암 송 시열 선생이 가장 존경한 분이 청음 김 상헌이야.
  내가 지금 청음 김 상헌에 대해 쓰고 있는데 거의 다 썼어. 400페이지분량이거든.
  이번 방학 동안 보다 더 다듬어 500페이지로 만들어 8월 말에 완료하려고 해.
  그리고 지난 겨울방학 때 삼학사를 정리했는데 이것도 이번에 더 손질해
  방학 끝나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해. 그러면 8월 말에 책 두 권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거 출간하고 10월에 출간 기념으로 내가 한잔 쏘려는 거야.“

“ 이제 우암에 대한 편견은 많이 완화가 된 거 같아.
  대전 쪽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
  이제는 안동 김씨야. 내가 일방적으로 매도된 안동 김씨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고 해.
  이게 모두 일제가 조선 합방을 정당화하기위해 날조한 식민사관이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야.“

“ 어느 정도인지 알아? 내 제자들이 박사학위 논문을 내면 심사 위원들이 그 내용에 대해
  평을 하는 게 아니라 지 두환 저서 중 인용 부분을 지우라고 한다는 거야.
  이게 말이 돼냐? 한심하지 않냐?“

두환이는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혁명아다.

그런 두환이는 우리의 자랑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게 시차적응 인 거 같다.
특히 미국 동부와는 서머 타임 적용 시에는 13시간, 아닐 때는 14시간 차이다.
완전히 밤낮이 바뀐다.
거기 도착해 일주일 정도는 비몽사몽 빌빌거려야 한다.
밤낮이 바뀌니 평소의 생활습관이 그 쪽 시간에 맞게 적응하는데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 정도는 걸려야 된다.
나이나 체력하고도 관계가 없는 거 같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보다 훨씬 전인 20대 말이나 30대 시절 많은 해외 출장 중에
특별히 시차문제로 고생한 기억이 없어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경우가 다르다.
길어야 2,3일 간격으로 계속 비행하는 경우가 많아 뭐를 특별히 느낄 겨를이 없었고
빡빡한 스케줄에 따라 종일 미팅을 하고 만찬 후 술자리도 늦게까지 이어져
호텔로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고 부족한 잠은 비행기 속에서 때우곤 하여
시차고 뭐고 그런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었다.
모처럼 스케줄이 빌 때도 이 먼 곳을 언제 다시 오겠냐는 생각에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느라 호텔에 틀어박혀 있거나 어디서 졸고 있을 틈이 없었다.

지난 14년간 미국을 매년 두 번씩 거의 정기적으로 다녔지만
시차 적응하는 기간은 변함이 없다.
자주 다닌다고 적응기간이 짧아지는 거도 아닌 거 같다.
가서 일주일이다.

막내 대학 졸업식 참석하러 지난 달 25일 떠나기 일주일 전인 5월 18일 또 다시,
금년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우리 동기 부고가 공지되었다.
고인이 된 이 경하는 동기지만 나하고는 생면부지이다.
그러나 분당지역 동기들로부터 종종 이야기를 들어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우리기 어렸을 때 끼니를 굶지 않을 정도만 되었다면 누구나 먹고 자란
원기소 집안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서울 약대를 나왔고 같은 약사인 부인과 각기 다른 곳에서 약국을 운영했으나
얼마 전부터 통합 대형화하여 공동 운영하였는데 약대를 나온 둘째 아들이
대를 이었다고 한다.
김 훈이 이야기로는 학교 다닐 때부터 같이 검도를 꾸준히 연마하여 검도 공인 6단일 정도로
체력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하의 발병 소식은 3년 전 쯤 분당 친구들로부터 들었다.
본인이 약사인데다 검도 6단일 정도로 건강에 자신하다가 오히려 건강 검진 등을 소홀히 해
초기 진단 시 이미 폐암 말기였다 고 했다.
경과가 호전되었는지 지난 해 말 분당 모임 송년회에 참석하여 맥주 몇 잔도 마셨다고 하고
얼마 전에는 동신이에게 한방 치료에 대한 자문도 의뢰했다고 한다.
경하와 마지막까지 비교적 자주 교류한 철홍이에 의하면
건강한 몸으로 5년 만이라도 더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했다고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우리 동기 이 경하의 명복을 빌고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젖어 있을 부인과 아직 미혼인 두 아들에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삼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금년 들어 아직 상반기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우리 동기 중 세 명이나 고인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우리 동기 말고도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 중에  
최근에 병고로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 나에게 말 못할 슬픔과 회한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그 고통을 조금도 어떻게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데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스스로 핑계를 만들고 있는 사이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 몰랐기 때문이다.

“ 석가모니는 진정한 천재야. ‘생로병사’,
  모든 생명체의 일생을 이렇게 아주 간단명료하게 정의해버렸잖아?“

이 영석 영안실에서 조문 온 이 세민이가 한 말이다.
이게 석가모니가 직접 한 말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군더더기 없는
보편타당한 정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모두가 ‘생로병사’ 의 과정을 일률적으로 겪는 건 아니다.
많은 불치병과 여러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중간의 ‘로와 ’병’의 과정을 겪지 않는 경우도 있고 복 중의 복이라고도 할 수 있게
‘병’만 빼고 ‘로’에서 ‘사’ 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다.

30여 년 전 사업상 파트너 관계로 알게 되어 사적으로도 친분을 나누게 된
나보다 여덟 살 위인 스코틀랜드 출신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할아버지는 94세에
농장에서 트랙터를 몰고 종일 일하다 저녁 먹고 자다가 세상을 떠났고
자기 큰 아버지도 96세까지 멀쩡하게 일하다 저녁 먹고 자러 들어가 자연사 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라고 봐야 할 거 같다.

얼마 전에 부친상을 당한 진왕이에 의하면 진왕이 부친도 일요일 날 전 가족이 모여
가족 모임 식사를 하고 댁으로 들어가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향년 90세 셨고 아무 증상 없이 건강하셨다고 한다.
건강하시던 분이 다들 같이 식사 잘하고 잘 가라 잘 있어라 가벼운 작별인사가
귓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유족들이야 황망하기 그지없고
예고 없이 졸지에 아무 준비 없이 날벼락 맞은 거 같아 아쉬움과 슬픔이 배가 되겠지만
본인의 일생에서 ‘병’ 의 과정을 생략했으니 복 받으셨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하자 진왕이는 펄쩍 뛰며,

“ 밤에 주무시다가 돌아가시기까지 몇 시간일지 모르지만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셨을지 모르는 거 아니냐.“ 며

외아들인 본인이 임종을 못했다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오래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을 당해야하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비할 바가 안 된다.

기도와 수행으로 일생을 보낸 김 수환 추기경님도 말년에 병마에 시달릴 때

“ 주님, 저를 어서 데려가 주십시오. 이 육신의 고통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리고 기도한다며 본인이 직접 고백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병’의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인생은 ‘생로병사’ 이다.
특히 이미 ‘로’ 의 과정에 진입한 60대 중반의 우리 세대는 거의 모두가 죽기 전에
‘병’의 과정을 겪게 되어 있다.

“ 여러분, 인간의 인생이 별 거 아닙니다. 바로 각자에게 주어진 일정한 시간입니다.”

어느 목사님 말씀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일어나는 보편적인 사건을 연대 별로 나누자면
앞서 이야기 한 한국과 미국 간 식의 지역적 공간을 두고 일어나는  시차가 아니라
일반적 의미의 시간적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바로 ‘생로병사’ 이다.

멀쩡하다가 돌연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젊은 나이면 몰라도
우리 나이에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별 놀라울 일도 아니고
아쉬울 일도 아니다.
지금부터라면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야 하는 게 맞는 지도 모른다.
그런 희귀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어쨌든 대부분이 ‘병’ 의 과정을 겪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병들어 죽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무슨 이의나 토를 달 수 도 없고
누구나 겪는 일이니 실지로는 무슨 화제 거리나 관심거리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개개인 간의 차이가 있다면 약간의 시차다.
그 약간의 시차를 가지고 별별 의미를 부여하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행불행 까지 끌어다 대는 건 지나친 호들갑이 아닐까.
누구나 가는 길이기에 보다 담담히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대개의 경우 죽음에 초연하다가도 막상 죽음을 앞두고는 생에 집착한다고 한다.

“ 말기 환자들을 심방 기도를 가면 당사자나 가족들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적을 바라고 있어 난처할 때가 많거든.
  그러고 있는데 하나님 품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우리 동기 구 자경 목사가 언젠가 한 말이다.

‘생로병사’ 중 ‘병’ 이란 늙어 든 병으로 더 이상 회생이 불가한 병을 일 컷 는다.
이 과정에 진입하면 그 기간이 얼마나 되던지 일단 사자로 전환되기 위한
waiting list 에 올라 간 거로 보면 된다.
즉 산 자보다는 사자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산 자와의 이별은 이 때쯤, 즉 waiting list 에 올라갔을 때쯤에서 날 잡아
자기가 이 세상에서  Bye-Bye 하고 싶은 모든 이와 작별하고 그게 어려우면 글로 남기고
산 자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비슷한 처지의 waiting list 에 오른 사람들과 같이 보내며
마지막을 기다리는 거.

인간은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망각’ 도 쉽게 하지만 감정과 감성도 풍부해
아직도 멀쩡해 보이는 사람과 죽음을 두고 미리 이별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아직도 waiting list 에 올라가기에 한참 먼 사람이 같이 따라 가겠다고 우기는 일도
발생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하한 경우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각자만의 고유한 소중한 시간을
사자나 ‘유사 사자’ 때문에 단 얼마라도 허비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것도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인생과 시간을?

다음 주 토요일은 인천 동문회에서 일박 이일로 중국 청도에 다녀온다.
이번이 세 번째로 예전과 같이 우리 동기 심 장식이가 비행기 티케팅을 전액 부담하고
청도에 제조 공장이 있는 세계 제일 End-mill 제조 판매 회사,와이지원 공구 오너인
23회 송 호근 선배가 현지 비용을 풀 커버하고 우리 동기로는 장식이 외에
나와 최 영식이가 동참한다.
따라서 토요 살롱도 못 올리니 미리 동기들과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2016.06.12. 송 종 호.





토요 살롱 181회 " 마른 장마 "
토요 살롱 179회 " 야유회와 연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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